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컬쳐커넥터 김도희 Aug 13. 2019

엄마, 원래 우리는 유별난 존재야.

나는 스웨덴인 흉내 내는 유별난 딸이 아니었다.

작년 스웨덴에서 귀국 후, 나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엄마와의 장밋빛 동거를 꿈꿨던 나의 상상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나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스웨덴에서 유학하는 동안 10여 년을 엄마와 떨어져 살았다. 오래 떨어져 사는 동안 서로에 대한 애틋함과 소중함이 커진 덕분에 엄마와 함께 사는 일이 달콤할 줄만 알았다. 더군다나 스웨덴에서 가족에게 내 감정을 잘 표현하고 생각을 나누는 일이 가족 간에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기 때문에, 엄마와의 동거는 기대가 많이 됐다. 그런데 이게 웬일. 엄마와 함께 사는 매일은 장밋빛은 커녕, 피 튀기는 붉은빛으로 변할 때가 더 많았다. 엄마와 나의 생각의 지도가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더욱이, 스웨덴에서 지내던 2년 동안 나와 엄마의 물리적 거리만큼, 생각의 거리도 너무나도 멀어져 있었다. 먼 것을 넘어 서로를 등지고 반대로 향하고 있었다.


스웨덴에서의 2년은 삶에 대한 내 가치관을 전반적으로 바꿔놓았다. 결혼하지 않겠다던 나는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고, 사회에 대한 불평불만만 하던 나는 사소한 것에서 희망을 찾게 되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프레임에 무작정 나를 맞추기보다, 내 행복을 찾고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주체적인 삶을 위한 첫 걸음이라 생각하기에. 예를 들면, 한국에서 금기시된 동거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이렇게 꺼내면, '엄마, 나는 결혼하기 전에 동거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 스웨덴에서 살다 보니 많은 친구들이 동거를 하면서 상대방에 대해 알아가더라고. 특히 같이 살면서 부딪히는 부분이 많은데, 이 갈등을 같이 살면서 싸우고 해결하며 둘 만의 세상을 꾸려나가더라고. 결혼 전 함께 살아보는 건 더 현명한 결혼 생활에 도움이 된다 생각해' 라고 말을 마치자마자 엄마는 아래와 같이 받아치신다. '동거는 무슨! 여자가 동거에 대해 그렇게 쉽게 말하면 안 되지. 결혼 전에 같이 살면 남들이 뭐라 생각하겠노. 만약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고 그 사람이랑 헤어지면 또 어떡하고'


늘 이런 셈이었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엄마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하며, 일어날 거란 예정되지도 않은 문제를 걱정하고 계셨다. 특히 엄마는 '엄마, 스웨덴에서는~' 이라고 말이라도 하면, '너는 한국인인데, 네가 다른 문화를 존중하는 만큼 한국의 관습을 존중해줘야지'라고 방패를 들곤 했다. 그러면 나는 '나는 한국인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야.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나의 중요한 일부이지만, 나는 개인으로서 내 행복을 찾아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내 행복을 침해하는 관습은 관습을 위한 관습일 뿐이라고 생각해'라고 다시 창을 내 들었다. 좁히고 싶었던 거리는 좁혀질 수 없을 만큼 멀어지고 있었다. 한국인이 아닌 스웨덴인 흉내를 내던 내게 엄마는 유별나다고 했다. 나는 스웨덴인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닌, 한 개인의 합리성을 바탕으로 행복을 찾아가고 싶을 뿐이었는데...





유별난 내 운명


'엄마와 나의 거리는 결코 좁힐 수 없는 걸까?, 내가 틀린 걸까?'. 빠득빠득 엄마에게 달려들다 보니 서로 감정의 골만 깊어질 뿐이었다. 엄마와의 장밋빛 동거를 꿈꿨던 내가 바란 그림은 아니었다. 다른 전략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전략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바로 '틀림을 다름과 혼동하면 안 된다'는 학창 시절의 배움이자, 내가 스웨덴에서 배운 것이었다. 더군다나 지식은 실천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것도 배웠기에, 나는 더욱 적극적으로 나의 유별남을 엄마에게 나누기 시작했다. 엄마의 생각도 잘 듣고 인정하려고 노력하면서.

'엄마 내 생각은 이래~ 지금은 이런 계획을 가지고 있어', 원대해 보이는 미래의 계획부터 '내가 생각하는 연애와 결혼이란 말이야... 내 남자 친구 B는 이런 사람이야' 소소한 이야기까지. 이야기의 경중에 상관없이 내 생각을 열고, 적극적으로 나누자 엄마는 비로소 내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엄마의 귀를 두드리자, 엄마는 귀를 열었고 결국 나를 조금씩 믿어주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내 편에 서주셨다. 내 선택을 지지해주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불안한 미래를 막연하게 걱정하기보다 응원해주기 시작했다. 엄마와 나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중앙선만 있는 줄 알았는데, 처음으로 서로의 차선으로 넘어갈 수 있는 유턴 공간이 생겼다. 덕분에 우리는 상대의 삶의 차선에 서볼 기회를 얻었고, 각자가 바라보는 삶의 전경이 다름을 잠시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

                                                                                                                                                                         

여전히 엄마는 내가 유별나다고 하지만, 나는 더이상 크게 상처 받지 않는다. 상처가 난 곳에 계속 후시딘을 덧대어 바르고 낫다 보니, 어느새 상처가 다시 나도 크게 개의치 않게 되었다. 새살은 금새 돋으니까. 한편, 곰곰이 생각해보니 엄마가 정답이었다. 모든 사람은 유별나게 태어났다. 자라온 환경도, 경험한 것도, 성격도 다 다른 개인은 유별날 수밖에 없고, 다르기에 상호 존중하고 합의해야 한다. 나는 유별나다고 해서 상대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짓밟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스웨덴에서 배웠다. 상대의 유별성을 존중해줄 때 비로소 나의 유별함도 존중받는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엄마는 다시 당신의 차선에서 보이는 표지판만이 옳은 길이라 인도한다. 순간 숨이 턱턱 막힐뻔한 나는 화를 못참고 클락션을 울릴 뻔 하다가, 침착히 내가 달리는 차선 중앙선 너머의 표지판은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라고 엄마를 설득한다. 내가 가야 할 길은 바로 내 앞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많은 사람들이 택하지 않는, 반대의 차선에서 혼자 달리는 나를 보며 또 불안해하실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는 내가 닿고자 하는 목적지를 분명히 하고, 목적지에 닿기 위한 도로를 정비하며, 엄마와 내가 건널 수 있는 유턴 구간을 많이 마련해두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적어도, 엄마는 내가 가는 길에서 내가 가고자 하는 세상을 잠시 여행할 수 있을테다. 이 길도 사람들이 오가는, 생명이 살아 숨쉬는 길 임을 알곤 덜  불안해하시겠지.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달래며, 나는 오늘도 세상의 망치질로부터 아무 이유없이 동그래지지 않으려 버티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동하는 봄 초입에서 만난 생각의 조각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