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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Apr 11. 2021

아무거나를 외치는 무색무취인은 이제 그만

개인의 취향 발견하기

나로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남과 비교하지 않는 삶과 반복되는 일상에서 얼마나 자주 내 취향을 발견하고 존중하는 시간을 만드는지에서 그 의미를 발견한다. 나만의 속도를 지키고자 의식적으로 되새기며(정신 승리라고 해야할까), 매일 가던 장소나 길 대신 다른 장소와 길을 선택하는 것, 경험해 보지 않은 음식을 먹거나 운동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반복되는 일상에서 작은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익숙하거나 애매한 것들에 한 발 짝 떨어져 나와 한 뼘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스웨덴에는 얀테의 법칙(Jante's law)이라는 게 있다. 스웨덴뿐만 아니라 덴마크,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핀란드 사회에 깔려있는 행동 양식. 1933년 덴마크 소설가 Askel Sandemose의 소설 'A Fugitive Crosses His Tracks (En Flyktning Krysser Sitt Spor)'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개념인데, 얀테의 법칙의 핵심은 나를 뽐내지 말고 특별하다 여기지도 말며, 다른 사람이 나를 신경 쓴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나는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사람이니까. 평등한 사회의 공동의 선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생긴 개념은 오늘날 스웨덴 사람들이 남들에게 신경을 쓰지도 자신을 크게 뽐내지도 않는 문화적 뿌리가 되었다. 개인의 브랜딩이 중요한 시대에 대치되는 문화이기도 하지만 명예욕과 과시욕이 심한 사회에서 자란 나에게는 참 신선했다. 덕분에 스웨덴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보낸 2년은 나를 정의하고 있던 무겁고 거추장스럽기만 했던 타이틀은 다 떼어버리고, 매 순간 그냥 나로서 살 수 있던 시간이었다. 내 욕구에 집중하는 법을 훈련한 시간.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조금씩 들여다보게 되었다고나 할까. 나는 춤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 줄 알았는데 줌바에 무아지경 빠져버린 나를 발견하기도 했고, 리듬감은 꽝인 줄 알았는데 평균 이상은 하는 사람이구나 자신감도 얻었다. 해보지 않아서 또 남의 눈치를 보느라 몰입한 적이 없었으니 모를 수밖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영어로 발표해야 할 때 열등감과 부끄러움에 휩싸여 눈물을 흘리던 내가 지금은 발음이나 문법이 완벽하지 않아도 사람들과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영어를 잘하고 못 하고를 떠나 언어는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이라는 본질을 깨닫게 된 이후로. 식습관의 자기다움도 생겼다. 완전한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붉은 고기인 소고기와 돼지고기는 굳이 찾아 먹지 않는다. 또 요리를 잘하지는 못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요리하는 것이 너무 즐겁고 음식을 나눠먹으며 상대에 대해 알아가는 일이 참 좋다.


반면에, 혼자 있는 것은 좋아하지만 집에서 하루 종일 혼자 있는 것은 싫어한다. 적당한 군중 속의 고독, 분리되어 있지만 분리되어 있지 않는 듯한. 엿들으려 의도하진 않지만 우연히 사람들의 삶을 전해 듣고 다들 생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구나 하고 괜한 동질감과 연민을 느낀다. 한편, 차가운 물을 좋아하지 않아서 물을 냉장고에 넣지 않거나 항상 물을 데워먹는다. 편의점에 가면 상온의 물을 찾고 여름에도 따듯한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반복되는 것들보다는 변화하는 것들이 더 좋다. 반복에서 오는 안정감보다 복잡해 보이지만 일련의 규칙 속에서 변화하는 것들에 마음이 당긴다. 매일 똑같이 걷는 길이라도 꼭 한 골목은 돌아가 다른 곳을 탐험하고, 무수히 반복해야 하는 운동보다 동작 동작이 변하는 운동이 더 매력적이다. 춤은 규칙적이지만 동작과 노래가 계속 변하고, 자전거를 탈 때면 달리는 곳에 따라 내가 보는 풍경이 달라져서 재밌다.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뭔지 몰라도 이것저것 해보다 보면 배우는 법이다.


취향을 알아가다 보니 혼자 있길 불안해하던 사람이었던 내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법을 조금씩 배우게 되었다. 어릴 적 나는 무얼 해야 할지 몰라서 남과 시간을 함께 보내며 어떤 것이라도 한다는 사실로 불안함을 떨치려고 했음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내가 무얼 하고 싶은지 모르니 남들의 취향을 내 취향 인양 필터링 없이 흡수했다. 남들이 엄청난 자기 탐구를 거쳐 찾은 취향과 자기다움을 내 것인 마냥 가져와 옷을 입었으니 맞을 리가 있었을까. 그러다 보니 참 많은 시간 동안 방황을 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거대한 질문 앞에서 헤매기보다 눈치 보지 말고 뭐라도 해볼 걸.


풍덩 빠져보면 바다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그녀와 아버지는 바닷가에 함께 있었다. 아버지는 그녀에게 바닷물의 온도가 괜찮은지 알아보라고 했다. 다섯 살인 그녀는 아버지를 도울 수 있다는 게 신이 나, 바닷물에 다가가 두 발을 담가보았다. "발을 집어넣어봤는데 차가워요."
아버지에게 돌아온 브리다가 말했다. 아버지는 그녀를 번쩍 안아 올려 바닷물까지 데리고 가더니, 아무 말 없이 물속에 풍덩 집어넣었다. 그녀는 깜짝 놀랐지만, 곧 이것이 아버지의 장난이라는 걸 알고 재미있어했다.
"물이 어떠니?" 아버지가 물었다.
"좋아요." 그녀가 대답했다.
"그래, 이제 앞으로 뭔가를 알고 싶으면 그 안에 푹 빠져보도록 해."

                                                                                            -파울루 코엘료, 브리다 발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파울루 코엘료의 '브리다'는 21살의 브리다가 자신의 소울메이트를 찾기 위해 마법을 배우는 이야기다. 브리다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의 깔린 어둠 속을 뚜벅뚜벅 걸어가며 자신의 소울메이트와 자아를 찾아간다. 아무도 없는 어둠 속에서 이 길이 자신의 길인지 확신과 불확신 사이에서 자기 회의가 들 때마다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두려움을 극복한다. 24살에 브리다를 만났지만, 브리다에게서 배운 것을 실천하기까지는 참으로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이제는 배운 것을 실천해 보는 담대한 용기가 생겼다. 현재 주어지는 것에 감사하고 푹 빠져볼 정도로 최선을 다하며 행동하는 것만이 나를 알아가는 길이고 나로서 살 수 있는 기회임 매일 되새긴다. 수백 번의 자기 회의를 달래며.


오프라 윈프리는 한 인터뷰에서 종교에 상관없이 누구나 영성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너무나도 동의했다. 내가 타인과 우주의 많은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것. 때문에 내 마음과 나를 둘러싼 환경을 알아차리고, 타인과의 상호작용에서 일어나는 내 감정을 관조하는 것도 중요하다. 직관적으로. 마치 좋아요와 싫어요의 신호라고나 할까. 아인슈타인은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 중 직관만큼 신성한 것도 없다고 했다. 다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이성적인 판단만을 명예롭게 여길 뿐. 우리의 많은 행동과 사고가 무의식에 지배 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잊어버린 직관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일상에서 좋아요 싫어요의 신호에 귀 기울이며 내 마음과 감정을 뾰족하게 매일 세우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


나는 취향이 뚜렷한 사람에게서 매력을 느낀다. 취향은 결국 자기다움이 녹아있는 거니까. 자기다움, 참 막연하기도 하지만 나로서 존재하고 나의 애정이 기울거나 나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고 내 심장을 설레게 하는 것들에 마음을 쓰는 일이 쉽지는 않다. 나이, 성별, 집안에서의 내 역할, 사회적 관습 및 규범 등 대부분 내가 원하지는 않았지만 부여된 것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가 쉽지 않으니까. 모든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적 요인에만 신경을 쓰다 보면 취향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욱 취향이 분명한 사람이 되기를 우리 모두 갈망한다.


나는 누군가 나에게 '뭐 좋아해? 뭐 먹을래? 뭐 할래?'라고 물을 때 '아무거나'와 같은 애매한 대답을 하곤 했다. '아무거나'라는 대답이 상대에 대한 배려라고도 생각했기 때문에. 하지만 더 이상 '아무거나'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취향을 공유한다는 것은 너와 나의 고유성을 인정하고 공통점을 발견고자 하는 노력이고, 나와 상대의 취향을 모두 존중하고 배려할 때 우리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더 나은 선택지를 찾을 수 있다.


하루하루 취향을 발견해 가는 것이 나로서 산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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