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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Oct 22. 2021

동거 선전 포고: 엄마, 나 동거할거야

윈윈으로 끝난 엄마와 나의 동거대첩

혼전 동거는 정말 미친 짓일까?

'여자애가 조신하게 살아야지!'라는 국룰을 깨뜨린 지 1년 하고 3개월.


남자 친구와 나는 만난 지 2~3개월 차에 동거를 시작했다. 미혼 여성으로 혼전 동거 중인 나는 한국에서 대역죄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동거를 시작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게 뻔하다. 남자 친구와의 동거는 우리 관계가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토양이 되었다. 매일 사소한 일과를 같이 보내고, 상대의 취향과 생활 습관을 면밀히 들여다보면서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생활비와 집안일을 분담하고 우리가 꿈꾸는 미래를 함께 그리며 진솔한 대화를 나눈 시간들. 이 시간들이 쌓여 우리는 연리지처럼 혼자라는 뿌리에서 우리라는 나무로 함께 성장하며 열매를 맺을 준비를 하고 있다.


뼛속부터 유교걸이었던 내가 결혼 전 동거를 결심한 건 스웨덴에서 동거를 하는 수많은 친구들을 만나면서부터다. 등학교 때 동거를 시작해 20대 초결혼은 하지 않은 채 부모가 된 스웨덴 친구 커플, 7년 차 연애 중인 독일 친구 커플, 그리고 20대 초반에 우크라이나를 떠나 스웨덴 남자 친구와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타니아까지. 


'스웨덴에18세(우리나라 19세 또는 20세)가 되면 자연스레 대부분의 학생들이 독립을 시작해. 많은 학생들이 파트너가 있을 경우 함께 살아. 경제적으로 집 값을 나눠내기 때문에 아낄 수 있기도 하지만, 사실 그 보다도 함께 살면서 서로를 더 알아가고 이해하기 위한 단계로 생각하는 거지. 단순히 데이트하는 거랑 함께 살면서 겪는 문제는 다르잖아.'


보다 훨씬 어린 친구들은 나보다 훨씬 더 성숙한 어른이었다. 거 장인인 친구들의 낯선 삶이 처음엔 문화 충격으로 다가왔다가, 어느새 부러움으로 변했다. 스웨덴 친구 이다는 가족들의 축복 속에 남자 친구와의 관계에서 예쁜 아가를 낳았다. 육아를 병행하며 학업도 끝까지 마쳤다. 남자 친구와 독일에서 스웨덴으로 유학 온 아네트네 집에 놀러 갔을 때는 둘이 함께 사는 집에 놀러 온 아네트의 엄마도 만났다. 내가 알고 있는 결혼,연애, 출산에 대한 기존의 관념이 와장창 깨지던 순간들.



동거가 당연한 나라들
Unsplash

남자 친구의 고향인 영국과 내가 살던 스웨덴에서는 혼전 동거가 합리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가 비슷한 문화를 공유한다. 우선, 서구 사회에서는 18세가 되면 성인으로 인정을 받고, 장성한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독립해 자기 삶을 책임지고 꾸려나간다. 동거는 개인이 선택이지 부모의 허락이 필요 없다. 많은 사람들이 혼전 동거가 합리적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와 관계의 발전을 위함이다. 파트너와 함께 집세, 공과금, 생활비 등 모든 비용을 나눠 내면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함께 살면서 서로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고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사소한 식습관 또는 생활 습관부터 갈등 해결 방법까지. 성향도 성격도 다르고 평생을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서로 합을 맞춰가며 배려와 이해심을 배우는 시간. 이보다 인간에 대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어디 있을까?


남자 친구의 어머니는 결혼을 하고 싶은 상대가 있다면, 꼭 같이 살아보고 여행을 함께 가봐야 한다고 조언하셨다고 한다. 반복되는 일상과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인간은 가꾸지 않은 진짜 자기 모습을 내보인다. 한국에서는 혼전 동거가 눈총을 받는 일지만, 영국과 유럽에서는 이 일이 굉장히 자연스럽고, 인생에 꼭 필요한 단계이자, 경제적으로도 합리적인 일이었다. 특히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하는 결혼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꼭 필요하다.


어떤 도덕적 잣대도 없이 실리적인 이유를 들어 동거 오히려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 낯선 관점은 오히려 거부감이 들기보다 합당하다 느껴졌동거를 바라보는 새로운 프레임은 스스로 동거를 정의  평가할 수 있는 주도권을 주었다. 정의하지 않으면 정의당하는 삶에서 자유에 한 발 가까워진 느낌.


누군가를 만난다는 일은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일이수십 년을 남남으로 살아온 서로가 만남을 지속하기 위해 각자의 가치관부터 사소한 생활 방식까지 궁합을 보는 것은 당연했다. 함께 사는 것은 서로를 가장 가까이서 경험하는 일이 '공동의 우주'를 디자인해나가는 일이다.



엄마와의 동거 대첩

사실 나와 남자 친구의 동거는 엄마와 친척들 몰래 시작되었다. 그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연애 2~3개월 차에 동거를 제안했다. 하지만, 당시 나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자 친구와의 동거 허락을 엄마로부터 받아낼 자신은 없었다. 그런 나를 남자 친구는 고맙게도 이해해 주었다. 대신 우리가 합의를 본 것은 그의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나는 2~3일은 남자 친구네 집에서, 4~5일은 우리 집에서 보내며 두 집 살림을 시작했다. 하지만 관계가 발전하면서 자연스레 그의 집에서 보내는 날들이 늘어났다. 어느새 그의 집은 우리 집이 되있었다. 그의 집에서 우리 집까지는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환승해 약 1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출근도 해야 했으니 집에 가야할 때마다 옷, 속옷, 화장품, 노트북 등 가방 한 가득 짐을 가지고 왔다 갔다 하는 생활도 힘들었지만, 나는 거짓말로 남자 친구와 엄마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내 연애에 대해 떳떳하고 싶었다. 용기를 가지고 엄마에게 혼전 동거 선언을 결심한 날이 다가왔다.


'엄마, J랑 동거를 하려고 해. 동거하면서 서로에 대해서도 더 잘 알 수 있고, 우리 관계에 대한 책임감도 더 커질 거야... 블라블라'

역시나. 딸의 갑작스러운 동거 선언에 엄마는 내 말을 단 칼에 자르며, 전화기를 뚫을 듯한 목소리로 역정을 냈다.

'결혼도 안 한 여자애가 함부로 입에 그런 말을 담지 말라며, 빨리 집에 안 가나!' 그리곤 한 마디 덧붙였다.

'결혼도 하기 전에 어디서 동거를 해! 그럼 약혼이라도 하고 해'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약혼은 너무 앞서 나가는 것 아닌가...어니. 아니, 이게 그렇게까지 화를 낼 일인가?


하긴, 보수적인 유교사회에서 평생을 자라온 엄마의 걱정이 이해도 갔다. 분명 동거하다가 헤어지거나, 결혼 전에 아이를 임신할 가능성을 걱정하시는 거겠지. 혹여라도 헤어지는 경우 '내가 시집은 갈 수 있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거다. 미래의 배우자나 시댁에서 쏟아지는 눈치를 어떻게 견디랴. 실제로 2019년 보건사회 연구원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위의 이유들로 미혼여성 절반 이상은 결혼을 전제 않은 혼전 동거에 반대한다고 했다.

'아니 관계란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이 아닌가. 또 결혼 전에 동거를 안 한다고 임신할 가능성이 적다는 논리는 맞는 걸까? 현실을 너무 모르시네. 그리고 여성에게만 사회적 눈초리가 쏟아지는 건 21세기에 무슨 성 차별인가!' 여전히 내 머릿속에는 물음표 투성이었지만, 21세기에도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동거는 터부시 되었다.


'엄마, 스웨덴이나 독일 등 내 친구들은 다 동거를 해. 실제로 부모님도 동거하는 집에 놀러 오시기도 하고...'

그럼에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내 눈으로 직접 동거가 연인 관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지 배웠기 때문에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더욱이 엄마와 나 사이에 신뢰를 쌓고 싶지, 거짓말도 엄마와의 관계를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내 주변 "친구"들의 현실 동거 사례를 들며 엄마 설득 작전에 들어갔지만 엄마는 뿌리 뽑히지 않는 고목처럼 완고했다.

'니는 한국인이지 외국인이가? 한국인으로 한국에서 태어나 여기 살면 한국의 전통과 관습을 존중해야지!'

경상도 보수엄마와 유별난 딸의 팽팽한 줄다리기. 는 여전히 남자 친구네 집에서 대부분을 보냈지만, 1주일에 한 두 번 정도는 우리 집에 가며 엄마의 분노가 다스리질 때까지 눈치 껏 동거를 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그의 집에서 우리가 같이 요리하고 밥을 먹는 모습, 함께 운동하는 모습 등 소상한 일상을 카톡으로 공유했다. 동거는 엄마가 걱정하는만큼 이상한 것이 아니며, 우리 관계의 진실된 모습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진심이 전달된 걸까. '동거는 절대 안 된다!' 몇 번을 두드려도 부술 수 없는 대화의 벽을 세웠던 엄마의 분노는 '니 알아서 해라'로 수그러 들었다가 '이제는 거기가 너네 집이다' 수용의 단계까지 발전했다. 나의 진심이 엄마의 안심으로 바뀌자 비로소 엄마와의 동거 대첩은 막이 내렸다. 

남자 친구를 엄마에게 소개하고, 우리의 관계가 무르익을수록 엄마는 오히려 우리의 관계를 신뢰해 주었다. 엄마에게 물어보진 않았지만, 동거를 한다고 해서 엄마가 걱정하는 그 일(아기가 생기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도 깨달으신 듯하다. 이제 엄마는 손수 만든 반찬을 한 상자 꽉꽉 채워 우리가 함께 사는 집으로 보낸다. 엄마의 사랑과 신뢰 그리고 응원으로 조물조물 양념된 음식.



그와 함께 살며 배운 것들
그는 가끔 이벤트 성으로 요리를 한다

지난 1년 우리는 매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의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했다. 밥을 먹는 시간은 서로의 역사와 꿈꾸는 미래를 탐구하는 시간이었다. 청소, 빨래, 설거지, 요리 등 때로는 귀찮은 집안일도 자연스레 역할을 분담하게 됐다. 요리를 좋아하는 나는 매 끼니마다 요리사를 자청한다. 정기적으로 장을 보며 장바구니 물가도 배우고, 좋은 과일과 채소를 고르는 법도 조금씩 배우고 있다. 남자 친구는 설거지 담당. 뛰어나진 않지만 소박한 내 음식에 남자 친구는 늘 고맙다고 표현해 주고, 남김없이 맛있게 먹어 준다. 남자 친구가 맛있게 먹는 것만 봐도 정말 배가 부르다.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거나 못 먹는 음식이 뭔지, 하나하나 신경 쓰며 재료를 고르고 요리하는 과정이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는 과정이다.


코로나로 재택하는 날이 늘면서 24시간 붙어 있는 날도 많지만, 우리는 눈치껏 각자의 시간을 존중해 주는 법도 배웠다. 지금도 그는 거실에서 혼자 책을 읽고, 나는 방에서 글을 쓴다. 단 한 마디도 섞지 않고 서로의 고요한 순간을 존중해 준다. 같이 있는 시간이 소중한 만큼 혼자 만의 시간이 소중함을 알기 때문이다. 각자의 시간이 확보돼야 우리의 관계가 더욱 건강하고 단단해짐을 알고 있다. 고맙게도 그는 나를 위한 공간들을 만들어 주었다.


한편, 나는 생활비도 같이 분담하기 시작했다. 돈에 관한 문제는 연인 사이에서도 늘 껄끄럽고 어렵다. 하지만 불편한 이야기도 솔직히 털어놔야 서로 합의를 볼 수 있다. 우리는 경제 능력에 따라 생활비를 분담한다. 서로의 재정 상태를 공개하고, 생활비 분담과 지출 리 등 돈 이야기를 나누던 그 순간은 남자 친구도 나도 불편하고 어색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마친 후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워졌다. 친구와 비밀을 공유하면 훨씬 가까워지는 것처럼.


감정 표현을 더 자주 하고 말을 예쁘게 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도 동거의 장점이다. 사소한 일에도 그가 'Thank you, 고마워'라고 표현하는 그 덕분에, 나도 고마움을 아낌없이 표현한다. 혹여나 짜증이 올라오려 할 때는 한 번 더 내뱉을 말에 대해 생각해본다. 사소한 말 한마디가 내는 상처는 생각보다 깊으니까.  '요리해 줘서 고마워'라는 말엔 '맛있게 먹어 줘서 고마워'. '설거지해 줘서 고마워', '이걸 옮겨 줘서 고마워', '쓰레기를 버려 줘서 고마워'. 집안일이 오래 걸리진 않아도 귀찮기 마련인데, 고맙다는 말 한마디 덕분에 스멀스멀 올라오는 귀차니즘과 짜증도 눈 녹 듯 사라진다.


'J, 너는 나랑 함께 살면서 제일 좋은 점이 뭐야?'

동거 소감을 묻는 나에게 그는 퇴근 후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을 상대가 있는 것이라 했다. 데이트를 위해 따로 시간 내지 않아도 매 순간이 데이트다. 때로는 편하게, 때로는 밖에서 격식 있게 원하는 대로 데트도 꾸릴 수 있다. 200% 공감하는 대답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밥을 먹는 이 순간, 바쁘고 여기저기 치아는 일상에서 이보다 따뜻하고 편안한 순간이 있을까. 1년을 함께 사는 동안 우리는 서로를 더욱 편하고, 진실되게 대하고 배려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 덕분에 우리는 우리 관계의 다음 단계를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그를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다. 같이 살지 않았다면  한참 늦어지거나 몰랐을 테고 함께 만들어 나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약 1년이 넘는 동거 생활은 나뿐만 아니라 남자 친구와 나의 관계가 성숙하는 시간이었다. 책임감과 상대에 대한 배려심을 키우고, 현실과 이상 속에서 함께 미래를 그려나가던 시간. 전통과 관습에 어긋나고, 손가락질당할까 봐 무서워 동거를 해보지 않았다면, 나는 이 성장 기회를 놓치고 말았겠지. 그리고 우리 사회가 동거를 바라보는 시각이 불합리하다고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내 생애 최초의 동거 덕분에 나는 새로운 프레임을 통해 삶에서 중요한 관계들을 맺게 되었다. 나 자신과의 관계에선 나는 조금 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고, 엄마와 나의 관계는 한층 더 두터운 신뢰를 쌓았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금기시 또는 당연시되는 많은 것들에 질문게 되었다.


동거 자체는 중립적이다. 모든 게 그렇듯 동거에도 장단점이 있다. 필요하다 생각하면 취하면 되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안 하면 된다. 다만 동거가 남녀칠세부동석의 관습 아래 무작정 터부시 되는 것은 잘 못됐다고 생각한다. 이는 동거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해친다.


먼저 우리가 가진 동거에 대한 편견을 들여다 보자. 동거는 나쁜 것이 아니다. 책임 있는 결정이 되어야 할 뿐이다. 누가 뭐라든 간에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책임감 있고 최선의 선택을 내린다고 나는 믿는다. 언젠간 한국에서도 동거한단 사실 자체가 별 일이 아닌 날이 오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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