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네이버 국어사전)이란다. '책임'이란 단어가 가슴에 꽂힌다.
스웨덴에 사는 동안 주변에서 일찍 어른이 된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나와 달리 많은 친구들은 물리적, 경제적, 심리적으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살고 있었다. 심지어 20대 초반 동거를 하거나 가족을 이룬 친구들도 꽤 있었다. '우리는 18살이 되면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성인이니까'. 부모의 품을 떠나 성인으로서 인생을 계획하고, 주도적으로 삶을 책임진 친구들의 모습은 누가 봐도 어른스러웠다.
사실 한국에서도 20세가 되면 법적으로 성인이 되지만, 부모로부터 독립해 사는 친구들은 많지 않다. 비싼 대학 등록금과 보증금 때문에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완전한 경제적 독립은 불가하다. 경제적 독립이 어려우니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완전히 독립이긴 어렵다. 하지만, 이를 차치하고라도 한국에서는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심리적으로도 의존하는 어른이 참 많다. 어떤 대학의 어떤 과를 쓸지, 어떤 회사를 선택할지, 결혼은 누구랑 할지, 돈은 어떻게 모을지 등 인생의 대소사에 부모님은 두 발 벗고 나선다. 그만 나설 때도 되셨는데...
스웨덴에서 한국에 돌아온 후 엄마와 1년 반 동안 함께 산 적이 있다. 스무 살에 대학을 서울로 오고, 교환학생과 스웨덴 유학까지 근 10년을 엄마와 떨어져 살아서 엄마와 함께 사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대화도 많이 나누고, 밥도 같이 먹고, 놀러도 다니고, 엄마와의 장밋빛 동거를 꿈꿨지만 기대가 컸던 것일까. 엄마와의 동거 생활이 항상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좁힐 수 없는 우리의 생각 차이를 확인할 때마다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화해했다를 반복하던 시간은 엄마가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막이 끝났다.
한국에 돌아온 2018년, 나는 29.5살이었다. 서른을 앞둔 그 해 친구들이 대리로 진급하고도 남을 시간에 나는 첫 취업을 준비했다. 게다가 직업도, 남자 친구도 없었으니 엄마 눈에 결혼은 얼마나 요원했으랴. 획일화된 한국 사회가 그려놓은 시간표에서 나는 모든 게 늦었고, 엄마는 엄친딸, 엄친아들의 쏟아지던 결혼 소식에 결혼식 참석으로 바빴다.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엄마 친구들의 '너희 딸은 뭐하니, 언제 가니?' 쏟아지던 질문 공세에 자존심 센 엄마는 대답을 골똘히 고민하느라 더 바빴겠지. 질문 레퍼토리에 맞게, 답변도 이미 일렬로 쫙 준비해놨을지도 모른다.
'취업은 어디로 쓰고 있니? 대기업 여러 군데 써봐라. 연애는 안 하니? 여자는 나이가 생명이다. 얼른 누구를 만나야 결혼을 하고 애를 낳지. 결혼 전에 동거는 절대 안 된다'
엄마와 내가 사사건건 부딪히던 때가 있었다. 엄마 입장에선 하나도 안정된 기반 없이 한국에 막 돌아온 딸이 남들 다 하는 대로 왜 살지 않았는지, 모든 한국 평균에서 벗어나는 딸이 잘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을 테다. 그렇다고 내가 엄마가 시키는 대로, 엄마의 말을 고분고분 듣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양육의 목적은 자녀의 독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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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의 뽀통령이자 정신의학박사인 오은영 박사의 말이다. 오 박사는 한 프로그램에서 탯줄이 끊어지는 순간부터 자녀는 부모로부터 독립적인 존재가 된다고 했다.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 역시 오래된 고전이자 대표적인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부모의 참된 사랑은 자식이 떠날 준비가 됐을 때 떠나보내 주는 것이라고 했다. 엄마의 자궁 속에서 열 달, 태어나서 모유 수유를 하는 동안 부모 자식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진정한 인간의 실존은 분리 불안을 극복하고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다. 즉, 독립인 것이다. 때문에 부모의 진정한 사랑은 자식이 세상을 혼자 힘으로 헤쳐나가는 모습을 지켜봐 주는 것이라 강조했다.
남자 친구는 스웨덴과 마찬가지로 영국에서도 18세가 되면 대부분의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독립을 한다고 했다. 부모와 함께 살던 집을 떠나는 것은 물리적인 독립뿐만 아니라 경제적, 심리적인 독립을 의미했다. 그리고 이는 자녀가 어른으로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남자 친구는 21살이 되던 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혼자 한 번도 온 적 없는 낯선 나라 한국에 왔다. 부모님은 한국이 너무 멀어 자주 못 본다는 마음에 아쉬워하셨지만,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떠나는 그를 응원해주셨다고 한다.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비자 발급부터 생활비, 보증금까지 스스로 다 해결했다. 당장 하고 싶은 일을 할 순 없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돈을 모으며 목표에 다가간 그는 지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매일 치열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한국에 살러 간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뭐라고 하셨어?
영국의 부모님은 혼전동거에 대해 뭐라고 하시진 않아?
부모님께 금전적인 도움은 일절 안 받아?
부모님은 네가 지금 하는 일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셔?'
내 질문 공세에 남자 친구는 'They don't think it's their business(부모님은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라고 대답하며, 18세 이후에 삶의 결정은 스스로 내리고 책임지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다만 부모님은 언제나 그의 곁에 묵묵히 계신다. 'Let me know if you need any help(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렴)'.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할 땐 SOS를 요청할 수도 있으니까.교환학생과 유학 생활을 위해 외국에 갈 때 엄마와 천척들의 도움을 당연하게 여기던 내 모습과 사사건건 엄마와 부딪히던 그 시간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진정으로 좋은 부모 자식 간의 관계는 뭘까?
Credit: Unsplash/Heike Mintel
나는 그 힌트를 (남자)친구들과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찾았다. 친구들이 독립적인 만큼 부모님과 정서적으로 교류할 기회가 많지 않을까 염려했던 것과 달리, (남자)친구들은 부모님과 우리보다 훨씬 더 가까웠다. 그들은 대등한 어른으로서 진로, 결혼, 이주 등 인생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 부모와 터놓고 이야기를 나눈다. 독립적인 결정이 독단적인 결정만은 아닌 것이다. 부모는 잘 들어주되 왈가왈부 간섭하거나 통제하지 않는다. 남자 친구의 부모님은 남자 친구가 어떤 일을 하든 자신이 가진 재능과 흥미를 살려 경제 활동을 하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했다.
언뜻 자식의 삶에 부모가 참으로 무심하다고 들릴지도 모르지만, 자식에 대한 부모의 내리사랑은 국적을 불문한다. 부모가 자식을 성숙한 한 개인으로 인정해주고 자주적인 선택을 존중해주는 게 핵심이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어릴 때부터 기른 독립심과 개인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는 모두가 각자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동력이 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때문에 부모 역시 자식이 성인이 된 이후 보다 자유로웠다.
나는 앞으로 어떤 자식으로 그리고 부모로 성장하고 싶은가?
내가 자식으로서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더 이상 엄마에게 기대지 않되, 엄마와 솔직하게 더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언젠가 엄마가 되었을 때 아이가 사소한 것이라도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기다려줘야지. 스스로 해낸 작은 성취들을 통해 인간은 성장하고, 정서적 교류를 통해 관계는 진정성 있게 발전한다.
'엄마는 혼전 동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실제로 스웨덴에서 돌아온 이후 나는 엄마에게 직업, 연애, 동거 등 내 삶에서 지금 중요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누려 노력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없어서일까, 처음에 엄마는 껄끄러운 이야기를 잘도 꺼낸다며 나에게 유별나다고 했지만, 수많은 어색한 정적과 감정의 줄다리기를 거치며 엄마도 나도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였다.
'이제 니 알아서 해라.'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무심한 듯 말하는 엄마지만 그 한 마디에는 많은 것이 담겨있음을 안다. 나에 대한 신뢰와 사랑 그리고 존중. 덕분에 우리는 더욱 독립적인 성인이 되었고, 그만큼 더 가까워졌다. 나는 나의 선택에 대해 왜 이런 선택을 내리고자 하는지, 얼마나 할 건지, 대안은 뭔지 엄마에게 소상히 말한다. 대화하기 쉬운 주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항상 엄마의 생각을 먼저 들어주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다.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부모와 자식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다.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이야 말로 건강한 관계의 기반인 것이다.
나는 매일 엄마와 통화를 한다. 통화 시간은 길지 않지만 그날 하루 있었던 중요한 일이나 나누고 싶은 생각들을 공유한다. 엄마의 걱정 어린 잔소리가 100% 사라졌다면 거짓말이다. 엄마의 잔소리도 존중받아 마땅하다. 나에 대한 걱정이니까. 엄마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은 후 내 생각을 차분히 나눈다.
'니 알아서 해라' 우리의 대화는 오늘도 이렇게 끝난다. 나도 엄마도 어떤 선택에 대한 결괏값은 모르지만, 스스로 내 길을 찾아왔듯이 앞으로도 난 부딪히며 결국 헤쳐갈 것이고, 엄마에게 보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