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컬쳐커넥터 김도희 Oct 23. 2021

다르지만 결코 다르지 않은 내 남자친구

살색이 뭐가 그렇게 중요해?

너는 왜 외국인만 만나? 한국 남자는 싫어해?


영국, 미국, 브라질, 한국. 백인과 흑인 그리고 한국인(우리는 우리를 피부색으로 정의해 황인이라 부르지 않지 않나). 나의 현재 및 전 남자 친구들의 국적과 피부색이다. 스물셋에 첫 연애를 했다. 연애 횟수가 많진 않지만 어쩌다 보니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났다. 첫 남자 친구를 빼고 지금까지 만난 상대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친구들은 가끔  '너는 한국 남자는 싫어해?'라고 농담을 던진다. 국적이나 피부색을 따지고 만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마음이 통한 사람이 다른 나라 사람인 걸 어찌하나. 살색이 뭐가 중헌가. 모든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왔다.


단일 민족인 데다 집단주의가 강해서일까? 한국 사회는 피부색이나 인종,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게 배타적이다. 머리와 눈동자는 까맣고, 피부는 노르스름하며, 한국어를 쓰는 종족에게 우리는 친밀감을 느끼고 한국인으로 인정한다. 반면, 한국에서 태어나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고, 한국 교육을 받고 살아가는 백인 또는 흑인이 있다고 하자. 아직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한국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마 우린 그런 사람을 보면 먼저 영어로 'Hello'라고 인사할 것이다. 모델 한현민이 토종 한국인인 걸 몰랐던 것처럼.


다양한 인종이 모여 국가를 이룬 미국에 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가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또는 프랑스 사람인지 신경 쓰지 않는다(단, 소수의 인종 차별주의자를 빼고는). 스웨덴에 사는 동안 항상 스웨덴 사람들은 나를 보면 스웨덴어로 인사하고 대화를 시작했다. 내가 스웨덴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내가 스웨덴어를 못한다고 고백해야만, 그들은 유창한 영어로 대화를 다시 시작한다. 스웨덴은 미국만큼 인종이 다양하진 않다. 하지만 평등을 중시하는 스웨덴에서는 겉모습만으로 누군가에게 영어(만국 공통어니까)로 인사를 건네면 차별이라 생각한다. 외국에 나가면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외국인'이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사실 아무도 그렇게 생각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깨달은 순간. 누군가를 다르다고 구분을 짓는 순간, 우리는 상대를 특정한 틀 안에 가두고 규정하게 된다.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을 떼기도 전에 멀어지는 것이다.



인종이란 없다, 인류 그리고 개인만 있을 뿐이다.


'남자 친구 어느 나라 사람이야?'

내가 만나는 사람이 외국인이라고 하면, 흥미롭게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국적에 관심이 많다. 국가 간의 교류가 확대되고, 여행이 쉬워지면서 우리나라에도 국제 커플이 많이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국제 연애는 낯설기도 하다. 더군다나 국적에 따라 사람들의 반응이 다르고, 국제 커플을 칭하는 용어가 다르다. 한국인과 결혼한 내 우즈베키스탄 친구는 다문화가정, 국제결혼, 국제연애, 국제커플 등 일맥상통하는 용어가 국적에 따라 다르게 쓰인다고 했다. 다 같은 말이지만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를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더욱이 피부색이나 생김새가 확연히 차이나는 파트너를 두고 있다면 거리에서 쏟아지는 시선이 느껴진다. 나의 전 남자 친구는 흑인이었는데, 그는 길을 걸을 때마다 사람들이 그가 아닌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져 부담스럽다고 했다. 자기 자신 때문에 내가 낯선 사람들의 쏟아지는 시선을 받는 게 신경 쓰였으리라.


지금의 남자 친구를 만난 건 작년, 우리는 러닝 클럽에서 만났다. 처음엔 그의 국적도 몰랐다. 달리기 전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지만 이름만 말할 뿐, 어느 나라에서 왔는몇 살인지 묻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 없다. 그게 중요하지 않으니까. 러닝 후 식사를 함께 하는 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영국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세 번째 데이트를 할 때까지 나는 그의 나이도 몰랐다. 몇 주 뒤로 다가온 내 생일 때문에 서로의 나이를 알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겐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매년 생일을 축하할 때만 등장할 뿐이다. 우리는 나이와 한국인 또는 영국인이라는 맥락 안에 우리를 가두지 않는다. 한 사람으로서 바라볼 뿐이다. 그의 가족과 친구에게도 내가 한국인이라는 건 크게 중요치 않다. 대신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관심이 더 크다.


영어와 한국어, 하얀 피부와 황갈색의 피부. 금빛과 갈색빛이 오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그의 머리카락, 검은 내 머리카락.  대신 빵, 빵 대신 밥. 인사는 포옹으로, 인사는 목례로. 그에게 가장 큰 명절은 크리스마스, 나에게는 설과 추석. 언어, 생김새, 먹는 음식부터 일상의 작은 습관까지 영국인 남자 친구와 한국 토박인인 나는 다른 점 투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변하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는 아프리카를 건넌 호모 사피엔스고, 비슷한 감정을 나누는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남자 친구와 퓰리처상 사진전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전쟁, 자연재해 등의 참혹한 역사적인 사건부터 생명의 탄생, 올림픽 우승 등을 기록한 환희의 순간까지,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기록한 사진이 가득했다. 전장으로 나간 아빠의 생사를 모른 채 6년 만에 아빠를 만난 미국 가족. 아빠를 6년 만에 만난 어린 딸의 표정에는 기쁨에 슬픔, 약간의 원망이 섞인 다면적인 감정이 가득했다. 그들의 환희에 찬 순간 앞에서 우리는 한참을 서 있었다. 가족의 생사를 모르고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건 어떤 느낌일까...


5살 난 어린 두 딸과 함께 목숨을 걸고 수류탄이 사방팔방에서 터지는 멕시코-미국 국경을 넘는 온두라스 출신의 어머니, 이념, 종교의 차이로 서로에게 무시무시한 총과 날카로운 칼을 겨누는 사람들, 예기치 못한 테러로 눈앞에서 가족과 친구를 잃은 어린 소녀, 건물이 활활 타오르는 큰 화재 속에서 간신히 구출한 아기에게 인공호흡을 하는 소방관. 어떤 이들은 그들의 다름 때문에 서로 칼과 창을 겨누거나 폭탄을 던지고, 어떤 이들은 다름에 상관없이 인간의 자비로움, 용기, 사랑을 베풀었다. 양면적인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진들 앞에서 남자 친구와 나는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때로는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입술을 깨물기도 하며 두 손을 꽉 잡았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시간들. 평생을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지만, 우리가 인간으로서 느끼는 감정의 본질은 다르지 않았다. 삶의 희로애락은 모든 인류에게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남자 친구와 한국 영화를 보러 갔을 때, 울음소리를 숨죽이며 꺼이꺼이 가져온 휴지가 모자랄 정도로 우는 그를 보고 속으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가 함께 본 영화는 '담보'였다. 빚 때문에 엄마와 생이별을 하고, 사채업자에게 담보로 맡겨진 어린 승이와 낯선 아저씨 둘과의 좌충우돌 동거 생활을 그린 영화. 영화를 보기 전 사실 나는 그가 한국적인 정서를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참 어리석었다는 생각과 함께 어쩌면 내가 차별적인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자각에 남자 친구 옆에 있기가 너무 미안했다. 그는 나를 한 사람으로 받아들이는데 나는 또 그를 외국인으로 규정지었구나. 남자 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는 '국제 시장'이다. 지구 상 어디에 살든 사는 모습은 다를지라도, 삶에 관한 모든 것은 인간의, 인간을 위한, 인간에 관한 것이기에 우리 삶은 결코 다르지 않고, 삶을 마주하는 우리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남자 친구와 남아공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미국 대법관의 일생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며, 한국, 영국, 미국 사회 및 우리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다른 나라, 언어, 문화, 어느 하나 공통된 것이 없어 보이는 주제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모두 같은 선상에 있는 주제다. 영국인 남자 친구도, 남아공 식문화도, 미국인 연방 대법관도, 한국, 영국의 사회 문제도, 동시대의 한 순간을 살아내고 있는 인간에 관한 것이다. '인종이 아닌 인류만 있을 뿐'이라는 프랑스 사회학자 타하르 벤 젤룬의 말이 가슴 깊이 와닿는다.



그럼에도 차이점을 이해하는 게 중요한 이유
그와 함께 완주한 제주도 2020.05

그와 만난 지 1년하고 4개월, 우리는 우리가 마주한 수많은 차이점을 넘어 더 많은 공통점을 발견했다. 우리가 인류라는 사실 외에 다른 나라에 대한 호기심, 좋아하는 아웃도어 액티비티, 꿈꾸는 가정과 라이프 스타일 등, 우리가 좋아하는 것과 추구하고 싶은 가치에 대해서 매일 이야기를 나눈다. 사랑한다는 것은 같은 곳을 바라보고 걷는 것이라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일 수많은 차이점도 발견한다. 아침식사 메뉴부터 보는 뉴스, 듣는 노래, 쓰는 언어, 유머 코드, 좋아하는 음식 등 사소한 모든 것이 다르다. 하지만 이 이질적인 것들은 우리의 동질감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다. 때문에 사소한 모든 차이점은 상대방의 세계를 여행하는 문이다. 호기심이 가득 찬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우리는 매일 상대의 세계를 여행한다. 다른 것에 대해 질문이 생기고, 다른 것을 이해하기 위해 대화는 끊기지 않는다. 덕분에 평생을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우리 사이의 시공간적 거리감은 순식간에 조금씩 0으로 수렴하고, 우리는 다양한 각도에서 삶을 바라볼 기회를 얻고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인간이 단 한 가지라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다양한 관점에서 사물을 둘러보고,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 외의 방법으로 진리를 얻은 현인도 없을뿐더러, 지성의 특성상 인간은 이외의 방법으로 현명해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각자의 프레임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다른 프레임을 가진 사람을 만났을 때 나는 내가 보지 못했던 세상의 부분을 본다. 초콜릿 맛인 줄 알았던 것이 김치 맛인 줄도 알게 되고, 길이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길을 찾기도 한다. 나와 다르지 않지만 너무 다른 남자 친구 덕분에 매일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볼 기회를 얻는다. 두 개의 프레임으로 하나의 세계를 바라보며, 우리만의 프레임으로 우리만의 우주를 조금씩 만들어나가고 있다.

  

25 년을 모국어도, 생김새도, 먹는 음식도, 살아온 환경도 많이 다른 남자 친구와 보내는 매일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다. 나의 반쪽 덕분에 나는 잃어버렸던 세상의 반쪽을 채워나가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