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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Jun 28. 2021

가족에게 남자친구를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이유

다 때가 있다? 연인과 가족간의 만남엔 때란 없다.

많은 이성 친구를 만나본 것은 아니지만, 어릴 적 나는 늘 남자 친구를 만날 때 나는 굳이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데이트를 할 때는 친구를 만난다고 둘러대곤 했다. 이성을 만난다는 순간 엄마가 걱정할 게 불 보듯 뻔했으니까. '집에는 10시까진 들어가라'

집을 떠나 서울에서 자취를 하던 내겐 엄마는 통금 아닌 통금을 통보하곤 했다.

밤 12시를 넘기는 것도 안 되는데 남자 친구와의 여행은 입 밖에 꺼내지도 못했다. 엄마의 그 한 마디에는 여러 가지 걱정이 가득했다. 결혼도 하지 않은 남녀가 만나서 책임지질 못할 일이 벌어질까 봐에 대한 걱정이 컸으리라. 엄마 몰래 밤을 새고 놀거나 여행이라도 갈 때면, 착한 유교걸이었던 나는 엄마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거짓말을 했다.


엄마에게 공개 연애를 시작한 건 약 5년 전. 당시 남자 친구와 만난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나는 엄마에게 남자 친구를 소개해 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떳떳하고 싶었고, 내가 만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면 엄마가 걱정을 덜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더욱이 아빠가 돌아가신 후 가족 간에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며 느끼는 심리적인 연결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으면서 나는 내 삶의 중요한 변화를 공유하고 싶었다. 나는 남자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을 엄마에게 보내고, 내가 왜 이 사람을 좋아하고 어떻게 만나게 되었고, 지금 어떤 감정으로 만나고 있는지 소상히 이야기하며 나의 연애를 알리기 시작했다. 엄마는 한 동안 의아하고 황당해서 내 메시지에 답장도 하지 않았긴 했지만...


공개 연애가 쉽지만은 않았다. 엄마나 주변 사람들은 결혼할 사이도 아닌데 섣불리 소개하지도 말고 급하게 마음을 다 주는 게 아니며 항상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한다고 걱정 어린 핀잔을 주셨다. 하지만 스웨덴에서의 2년은 나의 연애관을 180도 바꿔 놓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일이 떳떳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으며, 성인으로서 나는 내가 책임질 행동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스웨덴에서 만난 많은 친구들은(대부분 서구권)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부모님께 결혼할 사람만 소개해준다는 말을 듣고 놀란 두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아니, 이 사람이 나와 결혼할 사람인지 아닌지 알고 싶으면 우리 가족과 잘 어울리는지 봐야지. 그래서 사귀는 동안 더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알아 가야지, 결혼할 때 다 돼서 한 두 번 만나서 알 수가 있어?'.


스웨덴에서 사는 2년 동안, 많은 외국인(대부분 서양에서 온) 친구들이 자신의 이성 친구를 부모님이나 가족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것을 보았다. 크리스마스와 같은 큰 명절이나 주말에 집으로 초대해 같이 식사를 하곤 했는데, 이 사소한 만남은 단순한 식사 자리를 넘어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인생은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가족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을 한 두 번 본다고 어떻게 그 사람이 누군지 다 알 수 있을까? 참으로 당연하고 합리적인 논리였다. 그들에겐 당연한 것들이 왜 우리에겐 어색하거나 불편하기만 한 걸까 의문이 듬과 동시에, 나는 내 일상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부러움과 내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 지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을 가지고. 친구들의 말이 일리있는 말이었지만,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이었기에.


지금의 남자 친구와 만난 지 1년, 옷깃만 스치고 지나갈 줄만 알았던 인연이 어느새 연인이 되었다. 연애 초 매일 그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여전히 엄마는 딸이 너무 쉽게 마음을 주는 건 아닌지... 결혼 전 아이라도 생기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나와 그의 관계에 떳떳하고 우리가 서로에 대해 얼마나 진심인지를 진정으로 엄마나 주변 사람들에게 공유했다. '엄마가 걱정하는 부분이 뭔지 너무 잘 알아. 하지만 나도 남자 친구도 그런 일이 없도록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하는 성인이야.'


영국인 남자 친구도 엄마의 걱정에, '어머니께 직접 인사라도 드리면 나에 대한 믿음이 생기시지 않을까?' 배려해주었는데, 우리는 상견례처럼 무거운 인사 자리가 아닌, 가볍게 밥 한 끼를 함께 하기도 했고, 명절 연휴에 그를 집으로 초대하기도 했고, 가끔 전화 너머로 인사를 주고받기도 한다. 나는 더 이상 엄마에게 거짓말하고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거나 여행을 가지 않는다. 남자 친구네 집에서 머무르게 되어도 거짓말하지 않는다. 대신 엄마가 걱정하는 부분을 이해하며, '엄마가 걱정하는 일 일어나지 않게 잘 처신해. 나도 나 스스로 책임질 일만 하니까 믿어줘.' 나는 책임감 있는 사람임을 터놓는다. 그리고 가끔 우리의 소소한 연애 일상을 공유하기도 한다. 함께 운동하는 모습, 브런치를 먹거나 요리하는 모습, 여행 중인 모습 등 소소한 사진을 타고 우리의 이야기와 서로에 대한 감정이 엄마에게 전달된다. 나의 이성 친구를 내 가족에게 소개하는 이 일은 굉장히 낯설고 조심스러운 일이었지만, 관계를 공표하니 나와 그의 연애는 더욱 떳떳하고, 자유롭고, 자연스러워졌다.


"스웨덴에서는 결혼을 전제하지 않더라도 파트너와 나의 가족이 만나는 경우는 흔해. 우리의 명절인 크리스마스나 미드 섬머, 또는 생일과 같이 특별한 날 만나기도 하고, 가족 식사에 초대하는 경우도 흔해. 이런 만남을 통해서 나의 가족과 내 파트너가 잘 어울리는지도 보고, 내 파트너도 나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 오랫동안 다른 삶을 살아온 우리가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거지" 스웨덴에 사는 동안 친구들의 연애를 지켜보면서 이성 친구를 가족에게 소개해주는 일이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임을 많이 느꼈다.


보수적인 유교사회에서 자라온 유교걸에게 친구들의 연애 형태는 새로움을 넘어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 새로움이 낯설거나 거부감이 들기보다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일은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일이며, 나와 상대의 만남은 개개인의 만남일 뿐만 아니라 가족이 확장되는 것이기도 했다. 때문에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하고도 가까운 사람을, 내 평생 가장 가까운 존재인 가족에게 소개해주는 일은 서로의 세계를 열고 더 깊이 탐구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두 번의 만남이나 상견례를 통해 어찌 우리가 화목한 가족이 될 수 있을지 알 수 있을까.


나는 아직 영국에 계신 남자 친구의 부모님을 직접 뵙진 못했지만, 영상으로 인사를 드린 적이 있다. 그의 부모님과 처음 통화를 하던 날, 너무 떨린다고 말하니 그의 어머니는 긴장하지 말라며, 내가 너를 만나게 돼서 더 떨린다며 웃으며 말씀을 건네셨다. 그리곤 남자 친구가 행복해서 당신 또한 기쁘다며 연신 고맙다고 하셨다. 8천 마일 떨어진 그의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가장 큰 우주로 한 발 다가섰다. 상대방의 가족을 만나는 일은 사랑하는 사람의 삶의 역사를 여행하며 한층 더 상대를 깊게 이해하는 일이자, 상처를 보듬어 주기도 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이해하기 위한 통로가 다. 나와 남자 친구는 올겨울 영국에서 그의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기 위해 휴가를 계획 중이다. 완전히 긴장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이런 만남이 연애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이며 파트너와 내가 연애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기회라 생각한다.


'결혼할 사이도 아닌데...', '괜히 부모님한테 소개해드렸다가...', '만나는 사람 없어요~' 공개 연애는 피곤할 것만 같다고 생각했던 나는 공개 연애 적극 지지자가 되었다. 가장 가까운 존재인 가족들에게 나의 가장 가까운 연인을 소개하는 일이 그렇게 두려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내 연애를 알리고, 남자 친구를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소개하며 내 삶의 엑기스를 나눌 것이다.


감추면 감출수록 일과 관계는 복잡해진다. 대신 투명하게 공개하고 내가 떳떳하다면 어떤 일이든 관계든 안정을 찾기 마련이다. 우리는 무엇이 그토록 겁나거나 불편한 걸까? 엄마는 어느새 내 선택을 존중해주고 믿어주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더욱 믿음이 생겼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신뢰와 사랑으로 관계를 쌓기 위해 노력하는 지금 가족들의 지지는 큰 힘이 되고 있다.




'안건' 작가님과 함께 국제 연애를 통해서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이야기 나누고 있습니다.


한국, 영국, 핀란드를 넘나들며 배운 세상 이야기, '두 개의 렌즈로 바로본 세계'  매거진은 매주 일요일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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