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컬쳐커넥터 김도희 Jul 12. 2021

디어 마이 엄마, 디어 마이 라이프

부모 자식 모두 각자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방법

평소에 드라마를 잘 보진 않지만, 최근 푹 빠진 드라마가 있다. 바로 2016년 방영된 '디어 마이 프렌즈'. 윤여정, 나문희, 김희자, 고두심, 박원숙, 김영옥, 주현, 신구, 고현정 그리고 조인성 등 대배우들이 한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 자체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드라마의 진짜 마력은 밤잠을 이겨가며 16회를 며칠 만에 정주행 하게 만드는 이야기에 있었다. 스펙터클한 액션 씬도, 엄청난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드라마에는 우리네 인생이 있었다. 우정, 사랑, 갈등, 오해와 화해, 그리고 죽음. 우리가 살아가며 매일 마주하는 수많은 감정뿐만 아니라 필연적이지만 주로 잊곤 하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까지.


우리네 삶이 타인과의 관계를 맺고 잘 유지하는 과정이듯, 극 중에서도 주인공들은 친구, 가족, 이성, 직장 관계 등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그중 내가 가장 공감이 많이 갔던 관계는 바로 고두심(장난희)과 고현정(박완)의 극 중 모녀관계다. 두 모녀는 친구처럼 가깝기도 하지만, 사사건건 부딪히며 다투는 게 일상이다. 40이 다 된 딸은 60대의 어머니가 어른이 된 이후에도 자신의 진로뿐만 아니라 생활 방식이나 연애에도 간섭하는 게 영 못마땅하다. 꼭 두 모녀의 모습이 나와 엄마의 관계를 비추는 것만 같아 나는 이 드라마에 그렇게 감정 이입된 걸까.


스웨덴에서 한국에 돌아온 후 엄마와 1년 반 동안 함께 산 적이 있다. 29살에 첫 취업을 준비하는 데다 엄마의 기준으로 혼기가 꽉 찬 딸을 보며 엄마는 나의 취업부터, 연애, 그리고 결혼까지 나의 모든 일상에 엄마만의 답을 제시해 주었다. 엄마가 하는 걱정들은 내가 여러모로 불안정하고 남들과 비교해 모든 것이 늦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엄마는 항상 서른이 넘은 딸 걱정 투성이다.

'평균적으로 지금쯤 너 나이대면 이미 결혼했거나, 결혼을 준비하는 친구도 많지 않나? 지금 남자 친구랑은 언제 결혼할 거니? 결혼하기 전에 동거는 안된다'

하지만 평균은 평균일 뿐 개개인의 삶을 대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나는 엄마의 평균 이론에 악을 쓰듯 반박한다. 

'사람마다 각자의 속도와 방향이 있다고 생각해. 또 혼전동거가 부정적이지만은 않아. 같이 살면 내 파트너가 어떤 사람인지, 서로 생활 방식이 잘 맞는지, 갈등은 어떻게 조절하는지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생각해, 엄마. 대한민국의 평균에 벗어난다고 해서 잘못 살고 있는 것은 아니잖아!'


그러자 엄마는 엄마의 말에 반박하는 것이 너무 늘었다고 했다. 한국인이니까, 나이가 있으니까, 여자니까 등 엄마가 나를 규정하는 여러 기준들이 나를 옥죌 때마다 답답함만 차오른다.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누고 이해하고자 시작한 대화는 크나큰 의견 차이만 더욱 명확히 확인하고, 서로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고 끝날뿐이다. 부모에겐 자식은 평생 어른이 될 수 없는 걸까? 어른,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책임'이란 단어가 가슴에 꽂힌다. 나는 어른일까?


스웨덴에 사는 동안 주변에서 일찍 어른이 된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대학에서 만난 많은 친구들은 나보다 조금 더 일찍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살고 있었다. 만 18세 집을 떠나 독립해 살면서 생활비를 스스로 충당하는 친구들. 심지어 20대 초반 동거를 하거나 가족을 이룬 친구들도 꽤 있었다. 일찍이 부모로부터 독립해 주도적으로 삶을 책임진 친구들의 모습은 누가 봐도 어른스러웠다.


남자 친구는 영국에서도 18세가 되면 대부분의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독립을 한다고 했다. 부모와 함께 살던 집을 떠나는 것은 물리적인 독립뿐만 아니라 경제적, 심리적인 독립을 의미했다. 그리고 이는 자녀가 어른으로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나보다 3살이 어린 남자 친구는 21살(우리나라 나이로 22살)이 되던 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혼자 한국으로 왔다. 낯선 타지에서 남자친구는 비자부터 생활비 보증금까지 스스로 다 해결했다.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돈을 벌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갔다. 나는 교환학생 시절이나 스웨덴 유학 시절, 학생이라는 이유로 부모님이나 친척들의 금전적인 도움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한국에 살러 간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뭐라고 하셨어? 우리 엄마는 절대 동거는 안 된다고 하셔. 영국의 부모님은 혼전동거에 대해 뭐라고 하시진 않아? 부모님께 금전적인 도움은 안 받아? 부모님은 네가 지금 하는 일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셔?'라는 내 질문 공세에 남자 친구는 'They think it's not their business(부모님은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라고 대답하며, 18세 이후에 대부분의 삶의 결정은 스스로 내리는고 책임지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부모의 도움은 필요할 때 요청할 수 있지만.


하지만 이 말이 부모와 아무런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삶을 설계한다는 것은 아니다. 자식 역시 진로, 결혼, 이주 등 각자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 부모 이야기를 나누지만, 이 결정에 대해 부모가 왈가왈부 간섭하거나 통제하지 않는다. 남자 친구의 부모님은 남자 친구가 어떤 일을 하든 자신이 가진 재능과 흥미를 살려 경제 활동을 하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했다. 언뜻 자식의 삶에 부모가 참으로 무심하다고 들리는 이 말은 오히려 부모가 성인이 된 자식이 서로를 한 개인으로서 인정해주고 자주적인 선택을 존중해주는 게 핵심이었다. 남자 친구의 부모님은 다 큰 아이들을 두고, 부모로서가 아닌 한 개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설계해 나가고 계신다.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부모의 참된 사랑은 자식이 떠날 준비가 됐을 때 떠나보내 주는 것이다. 엄마의 자궁 속에서 열 달, 태어나서 모유 수유를 하는 동안 부모 자식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진정한 인간의 실존은 분리 불안을 극복하고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다. 때문에 자식이 세상을 혼자 힘으로 헤쳐나가는 모습을 지켜봐 주는 것이 프롬은 진정한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출처: tvN 디어마이 프렌즈 공식 홈페이지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고두심(장난희)은 긴 갈등과 화해의 반복 끝에 딸 고현정(박완)을 마침내 자신의 품에서 놓아준다. 자신이 마뜩치 않게 여기던 사람과 살고 싶은 곳에서 사랑하며 살 수 있도록 딸을 보내주고, 당신은 당신만의 사랑을 찾고 여생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그제야 엄마도 딸도 각자의 진짜 행복을 찾아 자기 자신만의 삶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내가 남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고, 자기 자신이 행복해지는 길은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다. 다만 그 길 위에서 만나는 소중한 인연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여전히 드라마는 내 안에서 숨 쉬고 있다. 앞으로의 인생에서 나는 엄마와 어떤 관계를 맺고 싶은가, 내가 평생 받아온 사랑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내가 평생에 걸쳐 받기만 한 부모의 사랑을 나는 평생 다 갚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부모의 은혜에 진정으로 보답하는 길은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삶을 책임지며 진짜 나만의 행복을 찾아 나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 사이가 멀어지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적당한 거리를 두더라도 함께 있을 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 나와 부모 그 누구도 각자의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응원해주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