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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Jul 27. 2021

우리 둘의 시간은 두 배 더 느리게 간다.

국제 연애의 차이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누군가와 사랑을 할 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꼽으라면, 나는 '기다림'을 꼽겠다. 두 사람이 만나 서로만의 우주를 만들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기다림의 순간을 지난다. 연애 시작 전 조심스레 호감을 나누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때까지 상대의 카톡을 기다리고, 데이트 신청을 기다리고, 데이트 신청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것도 기다림이다. 관계의 열매를 맺을 때까지 모든 순간이 기다림의 연속이다. 사랑의 불꽃은 자연스럽게 타올랐을지라도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은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다.


연애 시작 전에 수백 번의 기다림이 있다면,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는 수만 번의 기다림이 존재한다. 수십 년 간 가꾸어 오던 나만의 우주에 상대를 초대하고 나면, 모든 일상에 상대가 들어온다. 수 십 년 간 몰랐던 상대의 과거를 여행하고 지금의 그를 이해하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법이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씨앗을 고 나면 정성스레 그 씨앗이 열매를 맺도록 시간과 마음을 쓴다. 그리고 이 시간과 마음은 기다림과 배려다.


평생을 다른 문화권에서 자란 우리가 만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영국과 한국의 거리, 그리고 각자가 다르게 살아온 시간이 무색할 만큼 우리는 짧은 기간 동안 충분히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거의 매일 함께 밥을 먹고, 아침을 맞이하고, 달리기를 하거나 자전거를 타며 짧지만 밀도 있게 보낸 무수한 시간을 되돌아보다, 우리가 함께한 많은 시간이 기다림의 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우리의 시간은 두 배 더 느리게 간다.

국제 연애를 하는 우리는 맞춰 가야 할 점이 참 많다. 그리고 맞춰 가는 모든 시간이 기다림의 순간이다. 매일 식사 메뉴를 정하는 것에서부터 동거와 같이 혼자 결정할 수 없는 문제까지.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동거를 제안했다. 나 역시도 같이 사는 것만큼 상대를 면밀히 파악할 수 있는 기회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동거에 찬성이지만, 부모님이나 주변의 친척까진 설득하기가 어려웠다. 나의 국제 연애를 마음을 열고 다 받아 들인 줄 알았던 엄마는 동거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단호하다. '동거하려면 결혼을 약속이라도 하고 해!'. 그의 나라에서는 당연하고 이상하지 않은 일들이 아직 한국에서는 당연하지 않다. 그의 제안에 솔직한 마음을 어렵사리 털어놓던 날 그는 내 말에 귀 기울여 들어주었고, 내 상황을 너무나도 잘 이해한다며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는 나를 기다려 주고 있다. 우리는 1주일의 대부분을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같이 살진 않는다. 이 애매한 상황에 생활하는 데 불편하거나 불완전한 면도 많지만 우리는 나름대로 우리의 생활을 그에 잘 맞춰나가고 있다. 언젠가 우리가 원하는 나는 이것이 가능한 이유가 그의 기다림과 배려 때문임을 안다.


그는 항상 기다려주었다. 거북이 속도로 자전거를 타거나 달리는 나를 기다려주었고, 매일 식사 메뉴를 정하는 것에서부터 우리가 결정해야 하는 많은 일들에 관해서까지 그는 늘 양보하고 기다려 주고 있다. 내가 밥을 좋아하는 만큼 그는 빵을 좋아한다. 그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빵과 치즈를 먹고 자란 반면, 나는 밥과 김치를 먹고 자랐다. 누군가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데 있어 8할이 함께 맛있는 것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인데, 그는 그 8할 중 대부분의 시간에 나를 위해 메뉴 선택권을 양보한다.  


'나는 아무거나 괜찮아, D가 먹고 싶은 거 먹자'.

건강 및 윤리적인 이유로 치즈나 빵 고기를 잘 안 먹는 나를 배려하는 그의 마음 덕분에 우리의 식사 주간은 대부분 한식 또는 아시아 음식으로 채워진다. 그러다 어느 날 그의 집에서 피자박스와 빵 봉지를 발견할 때면 괜스레 미안해진다. 내가 집에 없을  먹고 싶던 음식을 먹는 그의 모습에,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하는 마음에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차올랐다. 나를 많이 생각해주고 있구나.


그와 사랑을 하며 기다림과 상대에 대한 배려가 관계의 핵심임을 배운다. 함께 한다는 것은 같은 방향을 향해 같은 속도로 걷는 것이라 생각한다. 각자만의 속도로 살아오던 두 사람은 매 순간 둘 만의 속도를 맞춰 나가야 한다. 밥을 먹고, 출근을 하고, 운동을 하는 등 반복되는 일상에서 뿐만 아니라 사소한 대화를 나누는 매 순간 그리고 작고 큰 결정을 해야 하는 모든 순간순간에. 비슷한 문화권에서 자라도 개개인의 가치관과 삶의 속도가 다른데, 평생을 다른 문화권에서 자란 우리는 그 차이가 더 크다. 어쩌면 우리 관계의 장애물이 되었을 지도 모를 사소하지만 중요한 문제들에 대응하는 법은 솔직한 대화와 기다림이다. 그리고 대부분 이 기다림은 속도가 빠르거나 선택의 자유가 있는 사람의 배려에서 시작한다.



감정의 교차로를 함께 건너는 법

내 속도도 모른 채 전력 질주하던 연애가 있었다. 지난 인연은 내 속도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매 순간 최대한 나답게 마음먹고 최선을 다해 사랑하려 하다보니, 나 혼자 결정한 작고 큰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내 속도를 내는데만 몰두하는 바람에 그의 감정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결국 속도가 벌어진 우리는 감정의 교차로를 함께 넘지 못했다.


항상 왜 상대는 내 속도를 못 따라오는 건지 속상해하거나, 네가 잘 못 생각하는 거라며 설득하기 바빴는데, 남자 친구와 함께하며 나는 상대와 함께 걷는 법을 배우고 있다. 둘 만의 적당한 속도를 찾아 나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속도에 맞춰주는 것이 아닐까. 한 사람만 맞추면 균형이 깨지고, 갈등이 발생한다. 때문에 말하지 않아도 상대를 관찰하며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그 속도가 빠르든 느리든 간에 맞춰주는 것은 기다림이다. 서로가 서로의 속도를 배려해 발맞출 때, 우리는 서로에게 한발 더 다가가고, 우리만의 우주는 조금씩 확장되며 견고해진다.


'오늘 저녁은 뭐 먹고 싶어? J'라는 나의 물음에 그는 오늘도  '한식도 좋아'라고 말했지만, 나는 오늘은 한식 말고 서양 음식먹자고, 고기와 빵을 먹고 싶다고 했다. 장난스레 오늘은 서양인 패치를 붙였다는 나의 농담을 애피타이저 삼아 우리는 햄버거집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먹는 햄버거는 맛있게 먹는 그의 모습을 담고 내 마음에 더  맛있게 스며들었다.


안건' 작가님과 함께 국제 연애를 통해서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이야기 나누고 있습니다.한국, 영국, 핀란드를 넘나들며 배운 세상 이야기, '두 개의 렌즈로 바로본 세계'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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