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의 나침반과 속도계가 있나요?

10년이 지나도 변치 않은 것

by 국경 없는 펜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는데, 졸업이 늦어질까 봐 너무 불안해요. 뒤처지는 것 같아서요.'
얼마 전 우리 팀 막내인 인턴 친구 둘과 점심을 먹을 때였다. 자신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는데, 주변 친구들은 벌써 취업에 성공했다며 뒤처질까 봐 불안하다 말했다. 이제 스물셋네 살인 친구들은 충분히 세상을 탐험하며, 무수한 가능성과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잠시 멈추는 것을 두려워했다. 친구들의 모습에 10여 년 전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10년이 지나도 고민하는 건 똑같구나.

우리는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이유로 앞만 보고 달려왔다. 평생 끝나지 않는 레이스와 획일적인 삶의 압박. 한국 사회에는 대부분의 인생의 대소사에 '적령기'가 정해져 있지만, 이에 그 누구도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여자는 스물셋, 남자는 스물여섯 즈음에 대학을 졸업하고 칼 취업해서 결혼 자금을 모은 후, 스물아홉, 서른 쯤 결혼을 해야 한다. 결혼 후에는 또 돈을 열심히 모아서 30대 후반에 내 소유의 아파트가 있으면 이상적인 삶이다. 그 아파트는 임대 아파트면 안 되고, 이름 있는 브랜드 아파트면 더 좋다. 연령대에 상관없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고민하는 3가지가 바로 시간, 돈, 나이라고 하니, 사회의 평균 속도를 내가 쫓아가느냐 못하느냐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는 모두 개별적 존재이자 다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살아가는데, 어떻게 모두에게 획일적인 타임라인을 적용할 수 있을까?


밥을 먹다 한 친구가 대뜸 물었다.

'D님은 외국에 나가 살아보는 것을 추천하세요?".

그 친구는 대학생활의 대부분을 팬데믹 기간에 보내서 여행이든 교환학생이든 외국에 나갈 생각을 해보지 못했는데, 회사에서 다양한 해외 경험을 한 동료들을 만나며 해외 생활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망설일 새도 없이 나는 확신에 차 답했다.

"네, 저는 무조건 나가보는 것을 추천해요!"

해외에서 오래 산 건 아니지만, 누군가 같은 질문을 한다면 한치도 고민하지 않고 똑같이 말할 것이다. 기회가 없다면, 스스로 만들어서라도 꼭 나가보라고.


여행은 남들보다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감과 남들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모순적인 동기에서 비롯됐지만, 여행 덕분에 남들과 나를 비교하는 게 의미가 없음을 깨우쳤다. 세상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삶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각자가 바라는 삶을 향해 각자의 방식대로 나아가는 데 있었으니까. 늘 내가 불안하고 불행했던 이유는 내 것이 아니기에 결코 채워지지 않을 타인의 욕망을 좇기 때문이라는 걸, 모두가 같은 목표를 향해 전력 질주하는 한국에서는 알 길이 없었다.


"하나도 늦지 않았어요. 속도보다 방향을 잘 잡아 나가는 게 중요하다 생각해요. 앞만 보고 달려온 만큼 잠시 쉬어가는 것도 필요해요. 우리는 늘 사회가 시키는 대로 달려왔잖아요. 휴학이든, 여행이든 자기 자신을 위해 멈추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길 바라요. 멈춰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인턴 친구들이 나보다는 덜 헤매길 바라는 마음에, 조심스레 조언을 건넸다. 스물셋, 여권도 없던 소녀에서 스웨덴에서 돌아온 29살 그해가 되어서야 느리지만 천천히 더 자유롭고 내가 그리는 행복에 가까워졌다. 여권을 출입국 도장으로 하나씩 채우며, 여행지에서 술잔과 달이 기운 횟수만큼, 다양한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기회를 얻었다.


'이렇게 살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구나. 돈을 벌 수 있구나.'. 내가 알고 있던 성공과 행복의 기준이 와르르 무너짐과 동시에,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던 날들. 조금이라도 일찍 나만의 속도와 방향을 찾았다면 좋았을 텐데. 리어, 연봉, 저축한 돈 등 한국 사회 기준으로 보면 나는 31살 여자 평균에 못 미칠 것이다. 또래에 비해 크게 이뤄놓은 것은 없지만,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임을 알기에 더 이상 불안하지 않다. 가끔 아주 가끔 초라해질 때가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럴 땐 진정으로 내가 꿈꾸던 일을 이루고, 지금을 돌아보는 상상을 한다. 미래의 어느 날, 삶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내 나름대로의 성공에 대한 갈망을 그리워하며, 희미하게 웃을지도.


오랜만에 친한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만나는 내내 한숨을 푹푹 쉬었다. 무슨 일 있냐는 질문에 친구는 일도 삶도 재미가 없어 우울하다고 했다. 인 서울 대학 칼 졸업, 대기업 근무, 자가 아파트 소유에 결혼까지 - 소위 나름 성공적인 삶을 사는 친구가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 쉬고 싶은데, 이제는 책임질 게 많아 쉬지도 못하겠어. 너무 늦은 것 같아.' 그녀에게도 쉼이 필요해 보였다.


20대든, 30대든 속도만 좇다 보면 어느새 방향을 잃고 멈춰 설 때가 온다. 하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어렵고 막막할 뿐이다. 때문에 우리에겐 일상에서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경험하고 삶의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게 필요하다. 친구가 멈출 용기를 내고, 자신의 답을 찾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꼭 안아 주었다. 답을 못 찾으면 어떤가, 시도하는 것 자체로 의미 있는 변화를 우리는 만들어낼 수 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있다. 어릴 적 나는 정 맞을까 봐 타인의 모범이 되며,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바른생활 아이로 살아왔다. 태어나고 자란 환경도, 타고난 성향도 모두 다른 우리는 서로 다른 욕망을 품을 수밖에 없는데, 모난 돌이 정 맞을까 왜 나는 항상 두려웠을까. 그러고 보니 정 맞을까를 두려워하는 것도 잘못됐지만 애초에 모난 돌이라는 표현 자체가 모순이다. 네모난 사람은 네모난대로, 세모난 사람은 세모난대로, 동그란 사람은 동그란대로, 누구나 모난 대로 살 수 있는 용기를 가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