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의 마음에도 도수가 있다

첫 번째 퇴사가 데낄라 샷이라면, 두 번째 퇴사는 발렌타인이다.

by 국경 없는 펜

퇴사하겠습니다.

팀장님과의 20여 분의 짧은 미팅이 끝나자마자, 내 두 번째 퇴사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다.

퇴사를 한 달 앞두고 있다. 서른한 살, 남들보다 훨씬 늦게 설렘을 안고 시작한 나의 첫 제대로 된 직장 생활. 긴장감이 역력했던 출근 첫날의 모습이 이렇게나 생생하게 그려지는데, 벌써 그 끝도 손에 잡힐 듯 보인다.

1년 반의 회사 생활이 20분 안에 정리가 된다니 기분이 참 묘하다. 인생의 끝에서 내 지난 삶을 돌아봤을 때도 이런 기분일까...

회사 조직 변경으로 안 그래도 팀원들의 업무가 많은데, 후임이 뽑힐 때까지 인수인계받은 업무를 해내야 하는 동료들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정말 크다.


어떻게 퇴사 이야기를 팀장님께 전달해야 할까.

며칠 내내 고민하며 긴장했던 것과 달리, 나의 팀장님은 생각보다 퇴사 소식에 쿨하셨다.

'많이 아쉽지만 회사보다 D의 인생과 커리어가 먼저지. 아직 30대면 뭘 해도 이른 나이야! 언제든 추천서가 필요하면 연락하고 응원할게'.

괜한 걱정과 달리 순조롭게 마무리 지을 수 있어 감사한 마음과, 아쉬운 마음,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향한 설렘에 내 마음은 오늘 갈 길을 잃었다. 붕 뜬 채 마음은 감정의 바다를 유영 중이다.


스물아홉, 그리고 서른둘


스물아홉에 첫 회사에 입사, 수습기간을 끝내고 정규직 전환을 앞둔 4개월 만에 퇴사를 결심했다. 조직 문화가 나랑 맞지 않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막연한 열망 때문이었다. 첫 직장에서 퇴사를 결심하던 내 마음을 몰래 들여다보면 참 부끄럽다. 함부로 회사를 판단하기도 했고, 생각이 오만했고, 자의식도 너무 넘쳤으며 현실에서는 두 발을 뗀 채 이상만 좇았다. 그러다 보니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고, 구체적인 목표도 없었다. 그렇게 6개월이 흐르고 성과도 없이 불안감만 커졌다. 혼자 정체된 느낌에 결국 다시 회사로 돌아가기로 했다.


작년 5월, 8개월 만에 어렵사리 '직장'이라 느끼는 곳에 몸을 담았다. 서른한 살에 팀의 막내가 되었다. 낯선 산업, 전무한 실무 및 협업 경험 때문에 한동안 방황과 좌절의 쓴 맛을 맛봤다. 그래도 좋은 사람들 덕분에 한 기업이 다양한 시장에서 어떻게 협업을 하는지 많이 배우다 보니 회사도 편안한 곳이 되었다. 하지만 어느새 이 편안함이 더 이상 편안하지 않게 다가왔다. 다양한 배경의 동료들, 인간적인 조직 문화, 좌절할 때도 많았지만 무난히 맞았던 직무, 안전하고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뒤로하고 떠나기로 했다. '무난히' 잘 맞는 일보다 나의 천직을 찾기 위해 한 번 더 도전하기로 했다. 또 어디에 살든 유연하게 해낼 수 있고, 자립할 기반을 마련하고, 내 재능을 살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심장마비에 걸린 것만 같은 내 가슴이 두근두근 대던 게 언제였나, 기억의 맥박이 희미해져 간다.


불안함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퇴사에 대한 확신이 서고 나서도 하루에도 몇 번씩 '잘하는 선택일까?' 고민하고, 친구들에게 두려움을 고백한다. 잘 해낼 수 있을까, 최악의 경우 어떤 곳도 취업 못하면 어떡하지. 퇴사가 확정된 지금도 설렘과 두려움이 섞인 물감처럼 내 마음속에서 응어리져있다. 때로는 두려움이 설렘을 잡아먹는 날도 있고, 설렘이 벅차오를 때도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럴 때마다 책 속에서 만난 수많은 스승들을 떠 올리며,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자 다짐한다. 그리고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시간도 없다.

다른 회사로 옮기든,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하든, 커리어 변곡점의 순간에서 당신은 기존의 정체성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뿐더러 틀림없이 용기도 필요할 것이다. -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 (앤드루 S. 그루브)



퇴사의 마음에도 도수가 있다

두 번째 퇴사를 앞둔 내 마음 상태는 첫 번째 퇴사를 결심했을 때와 참 다르다. 첫 퇴사 때 무엇이든 스스로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던 믿음은 퇴사 후 거만함으로 미성숙하게 컸다. 뚜렷한 방향성도 없이 그저 패기롭게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회사는 나를 구속하는 곳이었고, 더 큰 세상에서 나는 무조건 내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술을 잘 마시진 않지만, 당시 퇴사를 하던 내 마음을 술에 비유하자면 가볍게 마실 수 있는 데낄라 샷 같달까. 작은 잔에 맛있기까지 하니, 계속 마시다 어느새 기분이 업되어 꽃밭에서 춤을 춘다. 퇴사를 대하는 내 마음도 비슷했다. 퇴사는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고, 퇴사 후 자유는 달콤하기 그지없을 것이며, 나는 꽃길만 걸을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퇴사는 30년 산 발렌타인을 대하는 것 같다. 발렌타인을 마셔보진 않았지만. 꼭꼭 아껴 놨다 중요한 손님이 왔을 때 꺼내 술에 깃든 시간과 정성을 천천히 음미하며 씁쓸하고 달콤한 그 맛을 홀짝홀짝 마시는 것처럼, 퇴사 결심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 고민하고 인생의 중요한 시점에 변곡점을 찾아 결정했다. 또, 매일매일 퇴사 후 찾아오는 자유와 함께 굴곡진 시간을 즐기고, 엄습하는 두려움을 품고 결과를 만들어 가고자 마음먹는다.


두 번째 퇴사를 앞둔 지금, 나는 겸손함과 자기 성찰을 잊지 않으려 한다. 무엇이든 내가 잘하는 것은 잘 살리고, 부족한 점은 보완해야 함을 안다. 포기하는 게 낫다면 포기하거나. 그리고 결과에 대해 조급해하지도, 큰 기대를 하지도 않는다. 진심과 죽을힘을 다해 목표를 향해 묵묵히 가다 보면 말하는 대로 이뤄질 거라 믿을 뿐, 결과가 금세 날 거라는 기대는 버리기로 했다. 무수히 부딪히고 깨지며 마주하는 좌절에 굴복하지 않고 그저 '말하는 대로' 이루기 위해 꾸준히 해야겠다는 마음뿐이다. 믿음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 나가는 과정을 즐겨야지, 유재석이 말하는 대로.


그리고 2년 전과 달리 다행히 나의 선택을 믿어주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난 네가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뭘 하든 100% 서포트할게'

나의 선택에 무한한 지지를 보내주는 남자 친구는 때론 현실성 없는 내 계획이나 터무니없는 생각에 날카로운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덕분에 현실에 두 발을 붙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엄마.

'너는 하나도 왜 제대로 하는 게 없니?' 늘 핀잔을 주던 엄마는 '이제 니 인생 니 알아서 해라. 잘하겠지' 라며 믿음을 보여준다. 엄마는 자포자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ㅎㅎ).


붕 뜬 내 기분처럼, 내 생각도 방향을 잃은 걸까. 1시간 30분째 키보드 위에서 무언가를 써 내려가고 있지만 감정이 유영하듯 생각도 정리되지 않는다. 부끄럽게도, 아무 말 대잔치 중임을 안다. 고백건대 내 마음을 뱉어내고, 나눌 곳이 필요했다. 누군가는 나와 같이 퇴사를 준비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절실하게 입사를 준비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다른 고민을 하고 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든 이야기를 나눌 사람을 찾고 있을 수 있으니.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어떤 관계로 만나든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기적인 마음을 이타적으로 포장하는 걸 수도 있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다. 무얼 하든 힘내요 우리.


'지금 바로 내 마음속에서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다고 될 수 있다고 그대 믿는다면....

맘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 도전은 무한히 인생은 영원히 말하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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