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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Dec 03. 2023

시시콜콜했던 남편의 빅픽쳐..

밥상머리 이야기 덕분에 말입니다

1월 초 결혼하는 친구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을 만났다. 그 친구만 결혼하면 모두 유부녀 유부남이 된다. 우리 넷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친구는 벌써 어여쁜 4살 아이의 엄마다. 결혼이라는 인생의 큰 변화를 앞두고 있거나 이미 겪은 우리들이지만, 예비 유부와 신혼 그리고 육아 4년 차 친구가 느끼는 삶의 변화에 대한 온도차는 매우 컸다. 약 30여 년을 혼자 살다 가정을 꾸리는 것도 삶의 크나큰 변화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 3개월 차인 나는 이제야 어른으로서의 삶을 조금 맛보고 있는 것 같다.

 

결혼 직후 나와 남편이 함께 만들어 가는 '우리' 삶에 큰 변화가 다가오고 있다. 이 변화는 '어디에서 살 것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됐다. 함께 살 집을 찾고, 결혼식을 준비하고, 수 십장의 서류를 챙기며 행정 처리를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제1막이었다면, 한국에서의 삶을 마무리하고 지구 어디선가의 인생 제2막을 준비하고 있다. '어디서 살 것인가?'에 대해 남들보다는 적어도 한 가지 선택지가 더 있다는 사실은 누군가에게 부러운 사실이기도 하지만, 부부 중 한쪽이 가족, 친구 등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주의 자유가 늘 반갑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마냥 두렵게만은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이제는 혼자가 아닌 둘이기 때문이고, 부부로서 어떠한 일도 함께 헤쳐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연애 초반의 설렘을 뛰어넘는 전우애가 진정한 부부의 사랑을 대변하는 감정이 아닐까?


데이트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은 자주 내게 물었다.

'너는 어떤 삶을 살고 싶어? 너는 뭘 하고 싶어? 다른 나라에 대해 사는 건 어떻게 생각해?'

그리고 먼 훗날 자신이 하고 싶은 일, 그 일을 하고 싶은 나라에 대해서도 자주 들려줬다. 당시에는 이 사람과 결혼할지도 몰랐고 너무 먼 얘기여서 실감이 나진 않았지만, 남편이 그린 빅픽쳐 덕에 언젠가 이 사람과 결혼을 하면 내가 익숙한 것들을 모두 뒤로 하고, 어딘가 멀리 이주를 해야 될 수도 있겠구나 마음의 준비를 한 것 같다. 그렇게 가고 싶던 한국에 와서 빛나는 청춘의 20대를 다 보낸 남편과, 20대의 대부분을 늘 한국 밖에서의 삶을 동경하며, 한국 밖에서의 삶을 꿈꿨던 나.


너무나 다른 방향을 향해 걷던 20대의 우리 둘이 만난 한국에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미지의 세계에서의 삶이 어떤 모습일지 모른 채 이주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하지만 삶에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위험을 품어야 하는 것이 필연적이다. 다만 중요한 의사 결정을 내리기까지 지난한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기회비용, 여러 가지 가능성, 장점과 단점을 철저히 따져가며 지금으로서 최선의 선택을 내려야 하니까. 정답이 없는 삶에서, 지금 당장 우리에게 가장 나은 선택지를 찾아야 할 뿐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부간의 사소한 대화가 아닐까?그래서 밥상머리 이야기가 나에겐 너무나 소중하다.


부부가 함께 좋은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은 각자가 바라는 삶에 대해 자주 말하고, 각자가 속에 담고 있는 생각과 판단의 근거를 허물없이 상대에게 알려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인과 결혼을 하든 외국인과 결혼을 하든, 부부가 삶을 함께 만들어 나가다 보면 한쪽이 포기해야 하는 게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좋은 관계는 이 포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를 서로가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그 기회가 실현될 수 있도록 절충안을 마련하는 관계가 아닐까. 그래야 삶의 큰 변화 앞에서 상대의 포기나 희생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부부로서 둘이 함께 탄 배가 흔들릴지언정 적어도 같은 방향으로 열심히 노를 젓고, 파도에 뒤집히지 않도록 균형을 맞춰나가는 힘은 사소한 대화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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