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앞둔 신랑신부가 상견례를 잡을 때 가장 걱정되는 건 뭘까? 식당 분위기, 음식의 맛, 위치, 가격을 세심하게 다 알아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 내겐 '상견례'라는 문화를 시댁과 남편에 이해시키는 것이 먼저였다. 남편은 영국에는 상견례라는 문화가 없다고 했다. 결혼식장에서 만나는 부모님도 있고, 결혼 전 부모님들이 몇 번 캐주얼한 모임에서 만나기도 하니까. 공식적으로 '상견례'라는 이름을 달고 가족들이 모이진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시댁이 한국에 계시는 동안 꼭 상견례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 어쩌면 양쪽 가족이 다 같이 만나는 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고, 공식적으로 이런 자리를 마련해서 우리 가족을 소개하고 따뜻한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다. 단 몇 시간이라도 이야기를 나누면 서로가 서로를 조금이라도 더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언어 장벽으로 이야기를 직접 나눌 수는 없겠지만..!
시부모님과 시동생들에게 한국의 상견례 문화에 대해 설명을 드리자 흔쾌히 받아들여주셨다. 엄마와 동생이 고향에서 올라오는 날에 맞춰 결혼식을 이틀 앞두고 상견례 일정을 잡았다. 나는 아버지가 안 계시기에 큰 외삼촌께 우리 집 대장으로 자리에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드렸다. 언제 만날 지 정하고 보니, 가장 어려운 건 상견례 장소를 찾는 것이었다. 단순히 맛이나 분위기의 문제가 아니었다. 양가의 다양한 식습관을 모두 커버할 수 있는 곳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시부모님 두 분 모두 매운 음식을 아예 못 드시는 데다, 시아버지와 시동생 한 명은 채식주의자다. 때문에 여기서 이미 선택지가 확 줄었다. 어떻게 고추장과 고기나 생선을 빼놓고 한국 음식을 논하겠는가. 그런데 우리 엄마는 고추장에 청양 고추까지 듬뿍 넣어 밥을 비벼먹을 정도로 얼큰한 것을 좋아하며, 외국 음식이라곤 입맛에 안 맞다며 손사래를 친다. 다른 아시아 국가와 유럽 여행을 할 때 엄마는 기내에서 주는 고추장 튜브와 집에서 가져온 김을 꼭 가지고 다녔다. 이렇게 극과 극인 두 가족의 식습관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음식을 찾아야 했기에 처음부터 근사한 한정식 집은 제외되었다. 한식의 다양한 맛을 시댁 식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나의 바람도 아쉽게도 꺼졌다.
고민에 고민을 거쳐 찾은 답은 바로 이탈리안 음식! 피자와 파스타 집에서 상견례라니... 내가 익히 알고 있던 상견례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아무렴 어떠한가. 매운 한국 음식과 어려운 젓가락질을 걱정하던 시부모님은 이탈리안 식당에서 상견례를 진행한다고 하자 진심으로 안도하셨다. 다행히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고, 서툰 젓가락 질로 사돈 앞에서 창피를 보이지 않아도 된다며.
'That's great!'
엄마가 피자를 즐겨 드시는 편은 아니기에 죄송했지만 엄마도 기꺼이 배려해 주셨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채식 피자가 있고, 시댁 식구들 호텔에서 멀지 않으며, 지방에서 올라오는 엄마와 동생도 쉽게 갈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드디어 상견례 당일, 반짝반짝 광이 나는 와인 잔과 커틀러리가 놓여 있고 하얀색 천으로 깔끔하게 덮인 긴 테이블에 양가 가족이 둘러앉았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식당을 찾아 안심하던 중, 주문을 앞두고 새로운 복병을 만났다. 메뉴를어떻게 무엇을 시킬 것인가? 한국에서는 흔히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가면 파스타, 피자, 샐러드 등 종류별로 음식을 여러 개 시켜서 가운데 두고 나눠 먹지 않나. 그런데 영국에서는 피자, 파스타, 스테이크 그 무엇이든 간에 1인 1 메뉴다. 사실 이런 문화 차이가 있을 때는 나눠 먹는 것보다는 각자의 메뉴를 시키는 게 더 편하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피자 한 판을 각자가 다 먹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새로운 룰을 정했다. 영국인은 영국인의 법을 따르고, 한국인은 한국인의 법을 따르기로.
유럽에서는 1인 1피자가 국룰이다
그렇게 시댁은 각자가 원하는 피자, 파스타, 스테이크로 1인 1 메뉴를 주문했다. 우리 가족은 피자 2판에 샐러드 2개, 파스타 1개를 시켜 나눠 먹었다. 레스토랑 직원 분들은 음식을 너무 많이 시키는 게 아니냐며 놀라 눈치였지만. 또 누구에게 어떤 메뉴를 줘야 할지도 헷갈려하시기도 했다.
'페퍼로니 피자 어디 놔 드릴까요?'에 대한 대답은 영국 가족에겐 '저요'이고, 한국 가족에겐 '중간에 놔주세요'이거나 사실 그 질문을 할 필요도 없으니까. 한 테이블에서 음식을 다른 방식으로 즐기던 그 광경은 내가 봐도 참 흥미로웠다. 우리가 살아온 세월과 한국과 영국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사소한 것이 달랐으니까. 하지만 다름은 다양성이고, 다양성은 다른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기회다. 식사 도중 엄마가 테이블 중간에 놔둔 샐러드를 시어머니께 권했다. 시어머니는 고맙다 하시며, 맛있게 샐러드를 덜어 드셨다. 어쩌면 별 것 아닌 행동이지만 엄마가 샐러드를 건네는 행동에는 상대를 챙기는 따뜻한 마음이 들어 있었고, 그걸 또 받는 시어머니의 행동에는 다른 문화를 마음 열고 받아들이는 배려였다.
음식을 주문하는 것조차 정신없고 혼란스러웠던 상견례. 하지만 카오스 속에서도 우리는 각 나라의 방식대로 서로를 배려하고, 문화를 나누며 조금씩 가까워졌다. 본 식사를 끝내고, 루프트탑으로 이동해 디저트를 먹었다. 메뉴는 팥빙수. 입은 10개였지만 팥빙수는 단 3개만 시켰다. 식사 후에 영국 가족들도 한국의 문화를 배우고 받아들였는지, 숟가락이 섞이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눈치다. 평생을 모르고 살아온 두 가족이 새하얀 눈처럼 소복이 쌓인 팥빙수를 중간에 두고 나눠 먹었다. 각자의 방식이나 문화만을 고집하지 않고 서로를 배려한 덕에 어떤 의미에서는 엉망진창 혼란의 상견례는 하하 호호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어쩌면, 이렇게 모든 가족 구성원이 다 모이는 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날, 말도 안 통하고 식습관도 에티켓도 다른 수많은 차이를 품고 우리는 가족의 연을 맺을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