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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Nov 03. 2023

남편이 매일 북한 이야기를 한다

수상한 남편이 가르쳐 준 것

남편을 만난 지는 약 3년 반, 우리가 결혼을 한 지는 2개월이 조금 넘었다. 약 1,200여 일 동안 내가 하루도 빠짐없이 들은 이야기는 바로 이웃나라 먼 나라 북한의 이야기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하고, 김정은이 푸틴을 만나는 등 매일 뉴스에서 쏟아지는 이야기로도 충분한데, 집에서까지 북한 이야기라니 도대체 이 남자는 무슨 일을 하는 걸까?


사귄 지 얼마 안 되어 남편의 집에 처음 놀러 갔을 때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책장 빼곡히 가득 차 있던 북한과 한국 전쟁에 대한 서적. ‘한국 전쟁사’, ‘김일성 전기’, ‘3층 암호실의 서기관’ 등. 백과사전보다 두꺼운 역사책을 비롯해 왠지 금서일 것만 같은 책들이 주는 위압감에 압도당해 이 남자를 만나도 되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이제는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 되었지만 말이다.


내 남편은 영국 사람이다. 한국에 있는 북한 전문 미디어 사에서 언론인으로 일하고 있다. 그가 한국에 온 지는 거진 10년이 되었다. 사귀기 시작한 지 얼마 안돼서 한국에 왜 왔냐고 물으니 북한 때문이란다. 버젓이 남한에서 10년째 즐겁게 살고 있는 남자가 북한 때문에 한국에 왔다니?


‘북한에 갈 수는 없으니, 북한과 가장 가까운 곳이 어딜까 생각하다가 남한으로 왔어.’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다가도, 그의 사연을 들으면 가슴이 웅장해진다.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유럽 밖을 벗어나 본 적이 없던 그는 대학을 졸업한 해에 진로에 대해 고민하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북한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다고 했다. 우연히 본 다큐멘터리 하나가 그의 인생을 송두리 바꿔 놓을 줄은 모른 채. 그 다큐멘터리는 북한 사람들의 삶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아직도 이 세상에 상상도 못 할 비인간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에 엄청난 충격과 슬픔을 느꼈다고 했다. 북한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에게 당연한 자유라는 가치는 물론,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해결하지 못해 굶주려 가는 사람들. 외부 세계와의 접근이 거의 봉쇄된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국가가 아직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을 그는 믿을 수 없었다고 했다.


“나는 영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잖아. 나에게는 당연한 것이 그 사람들에게는 당연하지 않아서 너무 슬펐어. 그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한 번뿐인 삶에서 어떤 역할을 다해야 할까 고민하던 그는 졸업 후 주저 없이 한국행을 택한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로의 이주를 과감하게 결정한 21살의 영국 남자는 원어민 영어 선생님으로 한국에 와서 일하며 돈을 모으고, 한국어 어학당을 다니고, 국내 대학원을 졸업 후 그렇게나 원하던 분야에 취업까지 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평생의 배우자인 한국인 아내를 만났으니, 다큐멘터리 한 편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이다. 물론, 그의 한국행으로 인해 나의 삶도 송두리 째 바뀌고 있지만 말이다. 그와 결혼한 덕분에 나는 장기적으로는 물론 당장 내년에 내가 어느 나라에 살지도 모르지만, 가장 큰 변화는 조금 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이타적인 사람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살면서 북한에 대한 정치적인 관심 외에, 북한 사람들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실 나는 북한 문제에 굉장히 무관심했다. 병역 의무를 지고 군대에 가는 것도 아니고, 북한에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닌 데다 더욱이 나 먹고살기도 바쁘기에 북한 사람들의 삶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온종일 나의 모든 관심은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을까?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에 향했으니까. 경제적 자유, 직장인 부업, 수익 인증 등 물질적인 성공에 대한 야심과 열망이 팽배한 사회에서, 내 마음을 지배한 것은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는 조바심뿐이었다. 그것을 쫓아갈 여유도 없는데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쏟을 자비로움은 내 마음에 싹조차 틔우지 못했다.


'도희는 통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도희는 북한 사람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들어? 그 사람들은 정말 절박하게 더 나은 삶을 위해 목숨을 걸어'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된 국가잖아. 한국의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아직 현재 진행형이라 생각해'
이 꼬꼬마는 자신이 9,000km 떨어진 곳에 살게 될지 알았을까

하지만 매일 우리 밥상을 오르내리는 북한 이야기 덕분에, 반 강제적으로 북한 사람들의 인권 문제나 통일,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정세와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거리감을 둬야만 할 것 같던 탈북민들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여정을 거쳐 탈북하는지, 북한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무자비한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통일이 한반도를 넘어 실제 우리 생활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지, 정치나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게 왜 중요한지 등등. 그리고 이러한 논의는 북한을 넘어 우리 주변의 지구촌 이웃과 나의 삶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치는 정치 및 사회 제도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었다. 이런 일들이 내 밥줄에 당장 도움이 되지도 않고, 내가 당장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문제에 관심을 두는 것 자체가 내 삶을 1도는 따뜻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나는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던 사람인지 뒤돌아보고, 현재 가진 것에 감사하며 타인과 나를 둘러싼 공동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게 됐으니까.  


8년에 한 번 발간되는 UN행복 보고서가 올해 발간됐다. 2023년 행복 보고서는 인간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로 '이타심'을 꼽는다. 인간은 무조건인 도움을 주고받을 때 더 행복하다고. 도움을 받은 사람은 누군가가 베푼 도움으로 인해 더 나은 삶을 살게 된다. 또한 한번 남의 도움을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타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쉽게 내밀고, 이로써 도움을 주고받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진다고 보고서는 말한다. 어떠한 형태로든 누군가를 위해 도움의 손길을 내민 적이 언제였던가. 내 삶이 엄청나게 안정된 것도 내가 부유한 것도 아니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인 한국에서 태어나 살면서 가지지 못한 것을 갖기 위해서만 달리고 있었던 건 또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 먹고살기 바쁘다고, 나를 둘러싼 공동체에 대해 너무 무관심한 건 아니었던지.


얼마 전 만난 지인은, 어떤 글로벌 통계를 인용하며(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국 부모들이 '우리 아이가 얼마나 이타적인 사람이 됐으면 좋겠는가?'라는 질문에 8% 정도만 그렇다고 답을 했다는 씁쓸한 통계를 전해주었다. 요지는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이 유일하게 '자녀의 이기적인 삶'을 추구하는 부모의 비율이 높았다는 것이었다. 애지중지 자녀를 잘 키우는 것이 이기적인 자녀로 키우는 것만은 아닐 텐데, 자기중심적으로 아이들이 우리 사회에 많아지면 우리 사회는 얼마나 더 경쟁적인 사회가 될까. 나 중심의 각자도생의 길로 향하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 모습에 씁쓸해지다, 별반 다르지 않았던 내 모습에 부끄러워진다. 남들과 협업하고 조화롭게 살아가기보다, 이기적으로 내 것만 챙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사회에서 나는 얼마나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이곳에서 아이를 행복하게, 따뜻하고 인간적인 사람으로 키울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삶의 가치를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가?


북한 관련 시작된 질문이 나 자신을 넘어 내가 살아가는 공동체에 대한 질문으로 커졌다. 조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자극을 준 남편에게 고마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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