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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Oct 27. 2023

3년 간 함께 산 동거인과 결혼을 했다.

[프롤로그] 결혼하면 달라지는 게 있냐 물으신다면...

남편과 나는 동거를 한 지 3년이 지나서야 결혼을 했다. 결혼 소식을 알리니, 많은 주변 사람들이 물었다.
“3년이나 같이 살고 결혼하면 뭐 달라지는 게 있어?”

사실 결혼 전엔 나도 궁금했다.

'결혼식을 올린다고 뭐가 다르기나 할까?'

우리가 결혼한 지 2개월이 됐다. 식을 올린다고 해서 우리 관계의 본질이 변하는 건 아니라 생각했는데, 마음, 마음이 참 다르다. 그리고 마음은 본질이다. 마음에는 사람과 사랑을 움직이는 힘이 있고, 우리 삶의 방향을 보여주고 이끄는 에너지니까.


내 심장은 하나인데, 결혼 후 내 심장이 10개는 더 생긴 것 같다. 그리고 각각의 심장에서 소중하고 매일 의식적으로 잘 보살펴 주고 싶은 예쁜 마음들이 피어났다. 남편을 바라보는 마음, 그의 이름을 부르는 마음, 나와 우리 둘의 일상을 대하는 마음, 내 몸과 마음을 챙기는 마음, 삶이라는 긴 여행을 대하는 마음. 나에게만 집중되었던 내 마음이, 우리 둘의 세계를 넘어 우리가 그리는 미래까지 뻗치더니, 각각의 순간을 지속가능하고 잘 살아낼 마음의 싹을 틔웠다.


얼마 전 혼인신고도 마쳤다. 이제 남편은 가족관계증명서에 무려 한글 이름으로 내 '배우자'로 나타난다. 배우자는 '나눌 배/짝 배'와 '짝 우'의 한자를 쓴다. 한 번뿐인 생에서 삶이 점지해 준 내 짝과 함께, 한 번뿐인 각자의 생을 서로 나눔으로써 두 배 더 풍요로운 인생을 사는 게 결혼의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풍요 속에 순수한 기쁨과 행복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알 수 없는 삶의 신비와 무질서 속의 질서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발견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풍요로운 인생일 것이다. 남편과 함께 등록된 깃털만큼 가벼운 종이 한 장이 주는 그 무게감과 기쁨이 내 작은 심장에 넘쳐흘렀다.


까다로운 혼인 신고를 성심성의 도와주신 구청 주무관님..ㅠ


결혼은 서류 위에 부부로 공식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넘어, 서로의 마음에 사랑, 책임, 신뢰를 약속하고, 삶이라는 우주를 함께 항해하기로 맹세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신중한 결의이자 판단이기에 책임이 따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국제커플인 우리의 경우 사는 곳도, 커리어 계획도, 아이를 어디에서 낳아 어디서 기를 것인지 모든 게 불확실하지만 한 배를 타고 망망대해 속 우리만의 좌표를 그려갈 수 있음에 감사한 매일이다. 삶의 불확실성은 삶의 신비와 선물이기도 하니까.


오늘 아침 출근길 남편에게 말했다.

"나 할 말이 있어! 내가 요즘 매일 잠들 기 전에 J얼굴 쳐다보면서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빤히 그의 얼굴을 쳐다본다는 내 말이 그는 괜히 섬뜩하다며 놀란 표정으로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래서... 무슨 생각해..?"

어떻게 나의 마음을 전할까 고민하다가 고마운 마음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말하기로 했다.

"미지의 삶이지만, 이 여행을 함께 할 수 있는 파트너가 있다는 사실에 매일 감사한 마음이 들어. 힘들 때 의지하고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받아들여주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잖아. 우리 무덤까지 손잡고 들어가자!"

오글거리고 갑작스럽지만 탕후루보다 달콤한 내 모닝 기습에 남편이 내 손을 꽉 잡으며 감동에 젖어들 무렵, 무덤까지 같이 들어가자는 말에 잡았던 두 손을 탁 놓으며 저 멀리 도망을 간다. 클래식한 그의 장난에 픽 웃다가, 우리 둘에게만 재밌는 장난을 주고받을 수 있는 짝, 배우자가 내 곁에 있음에 다시금 감사해졌다.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외롭고 고독한 싸움이다. 하지만 그 길 위에서 적어도 항상 내 편이 돼 줄 사람 단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본질은 수많은 오해와 이해를 거쳐 서로에 대한 신뢰와 배려를 바탕으로 관계를 단단히 쌓아 가는 일이기에, 굳이 결혼으로 연을 맺은 부부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나는 결혼식을 올리고 공식적으로 혼인 관계로 인정 받을 준비를 하며, 생에 대한 생생한 의지가 되살아 났다. 결혼을 겁내고 결혼식도 초호화스러운 낭비가 아닐까 생각했던 내게 일어난 큰 변화였다.


내 삶을 넘어 사랑하는 사람과 미래의 가족을 그리며 잘 살아내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더 단단해진다. 강해지는 것 같다. 앞으로의 인생에서 수없이 넘어지고 부딪히겠지만, 삶의 상처를 미리 겁내지 않기로 했다. 인간이란 소중한 다른 인간과 함께 사랑과 성장을 연료로 생을 살아 내는 자이기 때문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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