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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Nov 19. 2023

결혼의 진정한 의미는 포기하는 데 있다

세 번째 퇴사를 했다. 그리고 남편은 어김없이 이번에도 나의 퇴사를 지지해 줬다. 이제 막 신혼인 우리, 안정적인 수입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도 모자랄 판에 퇴사라니? 사실 결혼한 지 두 달째 내가 퇴사를 결정한 데는 '남편과 함께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시작이었다. 막연하지만 반드시 답을 해야만 하는 이 질문. 스스로도 답하기 어려운 질문인데, 두 사람이 각자가 바라는 삶의 모습과 커리어 목표를 실현하고, 함께 꿈꾸는 가정의 모습을 맞춰야 하니 답을 내리기가 더 어려워졌다. 결혼 후 삶은 함께 하는 삶이기도 하지만, 결혼을 했다고 해서 개인의 삶을 포기하는 건 건강하지 못한 관계니까. 남편과 나 둘 다 결혼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길 바란다.


남편과 나는 연애 시절부터 각자가 어떤 삶을 꿈꾸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나눴다. 당시에 우리가 결혼할 거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함께하고 싶은 현재의 마음에 충실하고 서로가 생각하는 삶의 모습에 대해 진실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우리는 살아온 환경이 다른만큼 꿈꾸는 삶의 모습이 다를 수 있기에, 3년 간 연애를 하면서 각자가 삶에서 이루고 싶은 게 뭔지, 어떤 가정을 꾸리고 싶은지, 어떤 환경에서 살고 아이를 키우고 싶은지 등 세세하게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덕분에 이 사람이 나와 평생을 함께 살 수 있는 사람일지, 나와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인지, 얼마만큼 삶에 진심이고 자기가 하는 분야에 가능성을 가진 사람인지 배우게 됐다. 발을 맞춰 걷다 스럽게 결혼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은 물론, 결혼 후 동시에 퇴사하고 다음 챕터를 준비하는 게 갑작스럽진 않았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한국, 영국을 넘어 제3국에서의 삶까지 많은 시나리오를 같이 그려봤다. 그리고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왔을 뿐이다.


남편은 나보다 커리어 목표가 분명한 사람이다. 북한, 북미관계, 동북아 역사와 같은 굉장히 흔치 않은 분야에 전문성과 열정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분명한 사람이다. 그와 달리, 나는 아직 커리어 목표가 상대적으로 분명하지 않은 사람이고, 어떤 곳에 속해서 전문성을 척척 쌓아가기보다 손수 내 것을 만들어 가고 싶은 사람이다. 언제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무엇보다도 결혼을 하고 남편을 만나면서 나는 내 소중한 남편의 커리어를 전폭지지해 주고 싶은 사람이라는 걸 깨닫고 있다. 참 이상하다! 20대의 나는 멋진 커리어 우먼이 되는 것이 목표였고, 아이를 돌보거나 집안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나와 맞지 않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 후의 나는 내가 멋들어진 커리어를 쌓는 것보다 가정을 잘 보살피고 남편이 하고 싶은 일을 지지해 주고, 남편이 그걸 달성할 수 있도록 어떤 방법이든 찾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걸 많이 깨닫고 있다. 맹자의 부모가 아들의 교육을 위해 세번 이사했다는 일화처럼, 나는 남편의 교육이나 일을 위해 어디든 이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참 신기하다. 그렇게 사회적인 성취에 욕심 많던 내가 남편을 위해 꿈꾸던 많은 것을 포기할 수 있다니. 아니, 다른 형태로 이루고 싶은게 많이 생긴 거랄까? 나를 변하게 한 것이 사랑의 위대함인지, 결혼과 동시에 가족을 꾸리면 겪은 당연한 변화인지는 모르겠지만, 결혼을 하면서 삶의 많은 것들이 이기적인 나를 넘어 나의 가장 소중한 공동체로 향하는 느낌이다.


퇴사하고 충분한 수입도 없는 상황에서 조금은 불안하면서도 우리의 선택을 믿는 이유는, 우리가 부부이자 하나의 개인으로서 서로의 가능성을 믿기 때문이다. 결혼 생활을 오래 해본 건 아니지만, 내가 내린 결혼의 의미는 이렇다. 두 사람이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며 보폭과 속도를 맞춰, 유한한 삶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하는 일. 평생을 다르게 산 두 개의 소우주가 개별적으로 존재하면서도 공동의 우주를 만들어 가는 일은 그 어떤 모험 보다고 짜릿하고 보람차다. 때로는 의지하고 서로 도와주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 아이도 가정도 직업도, 그것이 부부의 연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


결혼과 함께 퇴사를 했다. 남편은 그런 나를 지지해 줬다. 사실 남편의 미래도 불확실하다. 경제적으로도 평생직장도 없는 우리의 선택이 무모한 짓으로 비칠지 모르는 우리의 선택이 무모하다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각자와 우리로서의 삶에 대해 치열하게 논의했고, 그 치열함 속에서 발견한 서로의 가능성을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둘이었던 우리는 둘에서 하나가 되었고, 하나가 된 이후에도 둘로서 존재한다. 이 방법이야말로 남편과 내가 각자의 삶은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시너지를 내는 유일한 방법임을 나는 믿는다. 그것이 또 진정한 결혼의 의미가 아닐까.



'넌 한국인이면서 왜 그렇게 외국인 흉내를 내니?''왜 굳이 남들이 안 하는 일을 사서 벌려서 하니?'
극한의 모범생에서 유별난 애로 찍힌 지난 10년. 내가 사랑하는 조국이, 나를 힘들게만 하는 것 같아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에 살든 한 번뿐인 삶에서 우리가 인간으로서 바라는 삶의 모습은 다르지 않다고, 길 위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알려주었거든요. 그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었어요. 그래서 책을 썼습니다.

한국에도, 외국에도 정답이 있는 건 아니더군요. 그렇지만 그것이 희망이었던 까닭은 저만의 답을 써 내려갈 수 있는 사고의 확장과 마음의 여유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속 성장하고 질문하며 사랑하며 살아가는 그곳, 두 발을 딛고 서서 살아가는 현재의 어느 곳이든 자신만의 ‘나나랜드’ 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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