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컬쳐커넥터 김도희 Jun 24. 2024

호주의 한국 청년들이 한국에 돌아오지 않는 이유

고생길 뻔해도 호주에 살래요

태어나 처음으로 호주 땅을 밟았다. 그것도 호주 정부가 준 돈 900만 원을 가지고. 지난 10년 간 세계 여행을 하며 유일하게 밟아보지 못한 대륙이 오세아니아와 아프리카였는데, '지구상 마지막으로 남은 지상 낙원'이라는 호주가 나는 너무나 궁금했다. 한국인이 가장 이민 가고 싶은 나라 중 하나이자, 매년 수 만 명의 청년들이 워킹홀리데이를 떠나 정착까지 고려하는 곳. 그래서 직접 내 두 눈으로 확인해 보고자 떠났다. 떠나기 전까지는 2주 간의 여행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리라 생각지도 못했지만.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분위기를 지닌 곳, 시드니

캥거루, 코알라,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해변. 호주에 가기 전까지 내가 알던 호주의 모든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인구에 인도 태평양 외딴곳에 떨어져 다른 국가와는 큰 교류도 없고, 호주 사람들은 한적한 자연환경을 벗 삼아 그저 여유로운 삶을 살아갈 것 같았다. 은퇴해 살면 딱 좋을 것 같은 나라랄까? 이 때문에 글로벌 커리어 개발을 목표로 삼는 내게 호주는 매력 있는 선택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호주가 우리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기회의 땅'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로벌 커리어뿐만 아니라 각자가 원하는 행복을 쟁취할 수 있는 기회의 땅.


2주 간 호주에서 여러 한국 청년들을 만났다. 호주 대학교에 진학한 한인 유학생(그중엔 남매가 동반 유학 온 경우도 있었다), 16살에 호주로 이민 왔다가 한국으로 취업, 다시 호주 대학원에 진학 후 새로운 분야에서 커리어를 준비하고 있는 분,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왔다 10여 년의 호주 생활 후 영주권을 준비하는 분, 호주에 터를 잡고 자신의 이름을 내 건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석조 조각가로 활동하고 있는 분 등. 한국에서 나고 자라 호주에서 제2의 삶을 만들고 있는 청년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호주에서 자신의 빛나는 삶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오늘은 호주에서 각자의 행복을 위해 싸워나가고 있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더 불편하고 힘들지만, 호주에서 사는 이유

장강명 작가의 대표 소설 <한국이 싫어서>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20대 청년 '계나'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다. 좋은 대학 졸업장도, 번듯한 직장도, 부유한 부모도 없이 팍팍한 계약직 생활을 전전하던 계나는 20대의 끝자락에 워킹홀리데이 막차를 타고 호주로 떠난다. 학력, 직장, 재력, 외모 등의 사회적 족쇄를 벗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서. 계나에게서 스물 곱, 20대의 끝자락에서 무한 경쟁과 비교를 탈출하고자 북유럽 국가 스웨덴 이민을 고려했던 내 모습과, 워킹홀리데이, 유학 등 다양한 이유로 호주에 살고 있는 수십 만 명의 한인 청년들을 보았다.


어떤 이유로 호주에 왔든 한국에서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호주로 온 많은 청년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언어 장벽, 수많은 행정 절차와 정착 비용,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기 위한 수고로움을 감수하더라도 호주에서의 삶이 더 행복해요. 엇보다도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곳이거든요. 그 행복이 모든 힘든 경험을 상쇄시켜요. "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닐뿐더러 한 자리에서 만난 것도 아닌데, 내가 만난 모든 청년들의 공통된 생각에 놀라면서도 이내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한국은 나에게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곳이고, 소중한 가족이 있는 곳이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한국에서 가장 편치 않고 어딘가 모난 존재인 것만 같다. 사회가 소위 성공적이라고 정해 놓은 길이 너무 좁고, 거의 모두가 이 길 위에서 경쟁하다 보니 내 모습 그대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큰 포기와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인간은 모두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던가.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가 아니라 내가 나로서 온전히 인정받고 살아갈 수 있는 자유를 쟁취하는 것만큼 큰 성취와 행복이 어디 있을까? 

아름다운 개인주의의 상징인 레인보우 플래그 in 시드니

"저는 실용 음악 전공 후 호주에서 바리스타로 서비스 직에서 오래 일하다가 처음으로 서비스 분야의 사무직 일을 시작했어요. 어쩌면 한국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이직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면접을 본 호주 매니저는 제 서비스직 경력을 높게 쳐주었어요. 분야는 다르지만 고객과의 최접점에서 일한 경험과 직원들을 관리하며 쌓은 리더십이 새로운 업무를 수행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저의 과거 경력을 편견 없이 바라봐 준 매니저 덕분에 참 감사한 인터뷰였어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왔다 10년째 거주하고 있는 한 청년의 말이다. 그녀는 학력, 직업, 외모, 출신 등에 크게 상관없이 나의 경험과 실력으로 호주에서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아나갈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호주에서 45년 넘게 사신 교민 선생님은 호주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결혼 상대의 직업이 배관공이라고 말씀하셨다. 상상조차 못했던 직업이라 깜짝 놀라 그 이유를 여쭤봤더니, 수입이 좋고 업무 시간이 유연해서라고. 전문 기술직이라 시급도 높은 데다 회사에 9-5 얽매여 있을 필요가 없으니,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의 양도 내가 하기에 달린 것이다. 아무리 수입이 좋아도, 배우자를 배관공이라 자랑스럽게 소개할 한국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떤 일이든 사람이든 편견을 가지고 보지 않을 때 우리는 우리가 알아내고자 하는 본질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다. 구분하고 분류하는 것은 효율적인 일인지는 몰라도 존재나 사안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 나라는 존재의 본질에 사람들이 더 궁금해하고 인정받을 때, 인간은 근원적 외로움을 해소하고 타인과 내가 살아가는 사회에 마음을 활짝 연다.




우리 개개인은 고유하다
서호주 Perth에서 만난 Jina Lee

서호주에서 석조 조각가로 활동하고 있는 Jina님의 스튜디오를 방문한 날이 또렷이 기억난다. 서울에서 대학원까지 공부를 마치고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 호주에 정착한 그녀는 Jina Lee만의 이야기를 돌이라는 자연의 재료를 통해 풀어내고 있었다. 작품에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미적 요소도 담겨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동양적이지만은 않았다. 그녀의 작품은 한국에서 태어나 여러 여행을 여행하다 호주에 정착한 그녀의 인생이 담긴 '과정'에 관한 것이었다. 여러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I'라는 조각상이었는데, 호주로 이주하면서 한국인으로서 평생 지녀온 정체성의 일부를 싹둑 자르고 호주에서 자기만의 정체성을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를 나무를 옮겨 심는 것에 빗대어 표현했다. 그녀는 호주가 이민자의 나라인만큼, 호주로 온 사연이 각기 다르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숫자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Jina Lee <I>, 출처: jinaleearts.com

이런 점에서 어쩌면 '호주에서는 내 존재 자체에 대한 관심나의 고유한 이야기를 사람들이 더 흥미를 가지고 신뢰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단일 민족인 우리나라 사회의 특수 환경적인 문제만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저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인정하는 마음과, 다양함을 인정하는 유연함만 있으면 된다. 존재에 대한 관심은 한 사람의 생명수가 되기도 하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다양한 문화유산을 키우는 씨앗이 될 수도 있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저서 <당신이 옳다>에서 "존재 자체를 몸에 비유한다면 외모, 권력, 재력, 재능, 학벌 등은 몸을 감싼 여러 겹의 옷들이다"라고 말하며, 이런 것을 다 가진 사람이더라도 자기 존재에 대해 집중받지 못하면 모든 인간은 허기지다고 강조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는 존재 자체보다 우리가 가진 옷에 집중하는 경향이 만연하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무언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인정하는 다정함, 다양함을 인정하는 유연함만 있으면 된다. 아파트 브랜드나 임대/자가 여부로 어린이들까지 무리를 가르는 오늘날 너무 큰 바람인 걸까?...' 회의가 들다가도 나는 희망을 놓고 싶지 않다.


 '나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 공허한 말이 아니라, 가족조차 인정해주지 못하는 온전한 내가 나로서 받아들여지는 곳. 이런 의미에서 호주에서 많은 청년들이 각자의 몫을 해내며 더 행복한 것이 아닐까? 물질적으로 삶이 엄청 풍족하지 않거나 한국만큼 편리한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고, 이민자로서 수많은 난관을 헤쳐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가족도 못해 주는 일을 낯선 나라의 제도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해주는 덕분에, 고생길이 뻔하지만 많은 청년들이 호주에서 제2의 삶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장강명 작가의 원작소설 <한국이 싫어서>가 8월 드디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 포스터에 적힌 강렬한 카피가 호주에서 만난 청년들의 외침으로 다가왔다. "나는 새롭게 시작하기로 했다!"


-


 '한국인의 눈으로 본 호주' 프로젝트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매주 2~3회 업데이트되니, 구독하시고 놓치지 마세요!

브런치 작가로 9백만원 펀딩받은 이야기:

호주로 떠나기로 한 이유:

호주를 통해 바라본 한국:


호주 이야기 및 대만 생활을 나누고 있는 인스타그램입니다. 소통해요!

https://www.instagram.com/walk2theworld/


매거진의 이전글 해외 취업이나 이민, 가진 자만의 것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