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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Sep 25. 2017

스웨덴의 실패박물관을 아세요?

실패는 성공의 위대한 어머니임을 입증하기 위한 재미있는 탐구

    ‘스웨덴에서 무슨 공부를 하세요?’라고 많은 사람들이 묻는 질문에 나는 가끔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관광학’이요..라고 대답하곤 한다. 이 경우 대부분 사람들의 반응은 관광학이라는 어쩌면 생소(라 읽고 비인기)한 분야에 그냥 ‘아~’하고 반응을 위한 반응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관광학에 대해 공부를 해 봤거나 관심 있는 사람들은 수긍의 의미보다는 ‘스웨덴에서 관광이요?’라고 되물으며 의아해하는 경우가 많다. 디즈니월드, 유니버설 스튜디오, 호화스러운 각종 호텔, 리조트, 대규모 컨벤션 센터 등 세계를 주도하는  환대 산업체들의 집결지인 미국이라면 모를까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 명소가 많은 것도 아니고, 지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도 관광객들로부터 먼 스웨덴에서 관광에 대해 공부할 것이 있느냐는 반응일 것이다. 그럼 나는 지금 머나먼 땅 스웨덴에서 뻘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고백하건대, 사실 지난 석사 1년을 마친 5월까지는 1년간 이 곳에서 관광을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웨덴 관광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쩌면 뻘 짓을 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관광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실제로 산업 현장에서 내가 책에서 배운 지식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인사이트를 얻는 것이 굉장히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또는 혼자 가기 두렵다는 핑계로 스웨덴에서 관광업을 탐구할 기회를 차일피일 미뤘기 때문이다. 아까운 시간을 흘러가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법. 지난 6월, 3개월이라는 기나긴 여름방학을 맞이하며 나는 스웨덴 관광의 유전자를 찾아 떠나기로 했다.

 


파리에 루브르가 있다면, 스웨덴에는..?

ⓒ헤이스웨덴(2013)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영국의 내셔널 뮤지엄, 뉴욕의 MOMA 현대미술관 등 각 나라 또는 도시의 특색 있는 박물관은 관광객들의 여행 목록에서 항상 빠지지 않는 코스이다. 도시에 대한 매력을 충분히 발견하지 못한 상태에서 박물관 자체가 관광객들을 유인하는 매력적인 장소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스웨덴을 대표하는 박물관은 무엇이 있을까? 물론 스웨덴 내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수도 스톡홀름에는 스웨덴을 대표하는 팝 그룹 아바 박물관, 노벨상의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 노벨 박물관, 스웨덴의 역사적인 전투함이지만 결국 물속으로 가라앉고만  바사(배) 박물관 등 굵직굵직한 다양한 박물관이 있다. 하지만 내 여행의 목적은 숨겨진 스웨덴의 유전자를 찾는 것이었던 만큼 나는 관광객들에게 이미 잘 알려진 박물관이 아닌 아직은 생소하지만 최근 이목을 끌고 있는 박물관을 찾고 싶었고, 수도가 아닌 다른 지역에 숨겨진 진주를 방문하고 싶었다. 그러다 스웨덴과 박물관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에 검색을 거듭하다 우연히 스웨덴 남부 헬싱보리(Helsingbor)에 위치한 ‘실패 박물관(Museum of Failure)’이라는 곳을 발견했다.  실패 박물관이라니... 대부분 성공한 위대한 업적이나 족적을 남길만한 역사를 전시하는 곳이 박물관인 줄 알았는데  무엇을 전시하길래 실패 박물관인 걸까? 방문 전 검색을 통해 실패 박물관의 콘셉트는 기업들이 혁신이라고 내놓은 제품들 중 대부분 실패한 사례들을 모아 전시해 놓은 Case Study(사례 연구) 박물관임을 알게 되었다. 6월 초 개관을 앞두고 온라인 미디어 상에서 기존에는 없던 혁신적인 박물관이 생겼다며 치켜세우기에 실패 박물관이 역설적으로 얼마나 성공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나는 6월 헬싱보리로 향했다.



성공한 실패 박물관?

ⓒdesign week

    실패 박물관은 헬싱보리 중앙역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지만 생각보다 박물관을 찾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박물관이라 함은 루브르 박물관이나 적어도 한국의 서울 현대 미술관 정도를 기대했던 나였는데 실패 박물관의 외관은 Kim 기자님의 촌철살인과 같은 비유대로 흡사 주민센터 같았기 때문이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흰색 시트지로 조그맣게 Museum of Failure라고 적힌 덕분에 간신히 지나치지 않을 수 있었다. 박물관보다는 갤러리로 칭하는 게 나을 정도로 박물관 치고는 생각보다 작은 규모에 조금은 실망은 했지만, 혁신적인 박물관을 그것도 개관초에 방문한다는 기대감은 여전히 컸다. 입장료는 많은 박물관들이 학생가를 제안하는 것과 달리 일반 성인과 마찬가지로 100크로나(한화 14,000원)! 무려 100크로나를 지불하고 간 실패 박물관은 과연 성공적이었을까? 자세한 전시품 이야기는 Kim 기자(클릭)님의 기자를 참고하길 바라며, 이 글에서는 실패 박물관의 성공 포인트와 실패 포인트를 분석해보았다.


>>실패 박물관, 이 점은 성공했다!

 1. 실패, 숨기지 말고 고해성사하게.

    실패 박물관의 시작은 관람객들의 고해성사 코너로 시작했다. 한 벽면을 뒤덮은 전 세계에서 온 방문객들의 고해성사가 적힌 형형색색의 포스트잍들은 각자 저마다의 실패 사연을 속삭이고 있었다. ‘빵을 굽다 온도를 잘 못 맞춰 태워버렸다’, ‘ 설탕을 부어야 하는데 소금을 들이 불어버렸다’는 소소한 실패담에서부터 ‘출판 계약 시 초반 출판사가 제안한 거금에 눈이 멀어 나머지 인세를 포기했는데, 자신의 책이 아시아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웃픈 실패담까지..  부끄러워 숨기기에만 급급한 것이 실패일 줄 알았는데 전 세계 각지에서 도착한 실패 고해성사 앞에서는 웃음이 픽픽 나왔다. 내가 저지른 수많은 실수담들을 떠올리며 나도 살며시 실패 고해성사를 하고 나왔다… 나의 치부 아닌 치부를 고백하게끔 만든 첫 실패 박물관의 시작은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기에 ‘성공적’이다 싶었다!


2)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는 실패작들 그리고 세세한 뒷이야기

     실패 박물관의 전시품들은 다양한 분야를 망라했다. 지방 0% 판매 대박을 꿈꿨으나 몸에 좋지 않은 물질을 함유해 시장에서 퇴출되고 만 프링글스에서부터 이케아 달팽이 인형, 트럼프 브루마블, 세그웨이 그리고 구글 글라스까지 식품 산업에서부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를 획 그은 획기적이 아이템까지 전시범위가 다양해 다양한 비즈니스 실패담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긴 했다. 또한 개별 실패작들이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결국 실패하게 되었는지 흥미로운 뒷 이야기들을 자세히 설명해 놓고, 비즈니스 혁신을 연구하는 큐레이터의 비평을 덧붙여 놓아 실패작들이 각자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읽는 재미가 있었다.


3) 실패 사례를 다루는 세계 유일의 박물관

ⓒthelocal.se/ Samuel West

     실패만을 취급하는 박물관은 아마 이 곳이 최초일 것이다. 누구도 가지 않는 길을 개척해낸 혁신적인 박물관이라는 점에서는 성공적이다. 비즈니스 혁신을 전공한 박사 출신의 큐레이터 Samuel West는 수년간의 연구를 통해 역사적으로 대부분 비즈니스의 실패가 시장의 반응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기업의 아이디어만을 실행하는 비슷한 실패의 오류를 범한다는 데서 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래서 이 사례들을 모아 전시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이로부터 교훈을 얻고 동일한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며 실패 박물관을 개관했다고 했다. 개인이 발품을 팔아 전 세계 실패사례들을 모아 전시를 개최하기까지 그 여정이 만만치는 않았음을 알기에 실패 박물관의 시작은 성공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 박물관은 실패했다?


 1. 다양성을 가장한 중구난방의 전시  

    앞서 실패 박물관의 실패 사례들이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고는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실패 사례들이 주제 의식 없이 중구난방으로 전시되어 있다고 느꼈다. 70여 점의 전시물의 카테고리도 나눠져 있지 않은 채 그저 ‘전시를 위한 전시’가 되어 있어 각 사례별로 케이스 스터디를 하기는 좋았지만 비즈니스 타입이라던가 유사한 실패담을 공통 카테고리로 묶어 전시를 했다면 좀 더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큐레이터가 ‘혁신’이라는 박물관의 성격보다 전시를 조직적으로 구성하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박물관’의 기본적인 속성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도 필요한 듯하다.


2) 억지스러운 실패담

 전 세계 성공한 기업들의 실패 사례를 수집하는 매의 눈을 가진 큐레이터의 레이더망을 스웨덴의 대표 기업 이케아도 피해갈 수는 없는 법. 이케아의 실패 사례를 찾기 위해 이케아에 직접 컨택을 했던 그였지만, 이케아는 자신들의 이미지가 손상될까 염려되어 꽁꽁 숨겨진 실패사례를 선뜻 건네주지 않았다.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그는 이케아의 본거지, Almhult의 이케아 박물관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는 지루하기 그지없는 이케아 박물관 전체가 실패작이라고 생각했지만(개인적으로 이케아 박물관을 방문 후 실패 박물관을 방문한 나로서는 이마저도 억지스러웠다) 박물관 전체를 가져올 수는 없었는데,  결국 이케아의 명성에 오점을 남길 실패작을 기어코 찾고야 말았다. 그것은 바로 달팽이 모양의 인형. 큐레이터는 이 인형이 홍길동이 홍길동으로 태어나 홍길동으로 못 불리는 것처럼, 달팽이로 태어났지만 달팽이로 보이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며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똥 모양에 더 가깝기에 이케아의 실패작이라고 주장한다. 이 달팽이 모양의 인형 앞에서 나는 생택쥐베리의 어린 왕자 동화가 떠 올랐다. 코끼리를 잡아먹은 보아뱀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모자로 여겨버리는 어른들의 모습에 실패 박물관의 큐레이터 모습이 겹쳐 보였다. 이케아의 실패 사례를 꼭 가져오고 말아야겠다는 억지로 전시한 이케아 달팽이 인형은 전시를 위한 전시품이 아니었는지 되묻고 싶었다.


3) 일방적인 보여주기 식 전시의 한계

     박물관의 주된 목적이 전시이기는 하나, 실패담 고해성사를 빼고는 실패 박물관에서는 관람객이 참여 또는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부족했다. 이케아 박물관에서처럼 직접 내가 에코백이나 앞치마를 만드는 것과 같은 적극적인 참여형 프로그램은 실패라는 주제에 적합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전시물을 단순히 전시해놓는 것이 아닌 관련된 뒷 이야기들이 담긴 영상이나 미디어 자료들을 활용했다면 어떨까? 70 여점의 전시물과 이와 관련된 내용들은 내가 텍스트를 읽는 일방적인 소통이었기에 시간이 지나자 금세 지루해졌는데, 오디오나 영상을 활용한 소개가 많았다면 관람객은 박물관에서 좀 더 적극적인 소통을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스웨덴의, 스웨덴에 의한, 스웨덴을 위한 관광을 찾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만난 실패 박물관. 자칫하면 부정적으로 흐를 수 있는 실패라는 소재를 가지고 때로는 유머스럽게, 때로는 무서운 비평을 쏟아내며 실패를 성공의 어머니로 기를 수 있도록 관람객들을 안내했다. 맨땅에 헤딩하는 정신으로 발품을 팔아가며 세상에도 존재하지 않던 실패 박물관을 만든 큐레이터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며 나는 박물관을 나왔다. 작은 규모의 전시로 시작한 박물관이지만 올 후반기에는 헬싱보리 시와 협의하여 더 큰 장소로 옮긴다고 하는데, 옮기는 김에 전시 물품도 늘어날 뿐만 아니라  더 다이내믹하고 다양한 소통의 통로를 제공하는 전시가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전 세계 도시를 돌아다니며 관련 워크숍도 연다고 하니 이제 성공으로의 여정을 시작한 실패 박물관의  미래가 더 궁금하다. 아직은 실패 박물관만을 방문하기 위해 헬싱보리를 여행지로 선택하는 관광객들은 드물지만, 질 좋은 전시가 자리 잡히고 전시 콘텐츠가 계속적으로 업그레이드 된다면, 실패 박물관이 헬싱보리의 랜드마크로 자리잡 하는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이 작은 박물관이 스웨덴의 루브르 박물관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이노베이션, 참 쉽죠잉? :Kim기자 브런치 https://brunch.co.kr/@swordf/21

*직접 찍은 사진이 든 디스크가 포맷되어 Kim기자님의 사진(출처없는 것)을 허락을 맡고 빌려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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