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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Jun 09. 2024

쭈쭈바 심부름


 매일 산책길에 사랑하는 반려인에게 쭈쭈바를 사다 준다. 몸에 열이 많은 그에게 여름은 수난의 계절이다. 그런데 왜 쭈쭈바냐고? 아이스크림은 시원한 느낌이 덜하니 꼭 쭈쭈바로 사달라는 간청 덕분에.


 자외선이 약해진 오후 4시가 넘어야 문을 나선다. 물로만 세안하고 아무것도 바르지 않으니 자외선차단크림을 바르는 건 무리라서. 바르고 씻으려면 비누 같은 계면활성제가 필요한데 번거로운 일들을 더하고 싶지 않다. 다행히 아직은 "피부 너무 좋아요!"는 말을 종종 들으며 살고 있고.


 아이스크림 가게까지 가는 골목에서 눈여겨보는 가게들이 있다. 특히 먼저 기웃거리는 곳은 배달만 운영하는 작은 요식업가게. 몇 달 전 동네의 예쁜 치즈 냥이가 새끼를 낳았는데 그곳에서 그들을 같이 돌본다. 운 좋으면 철 모르는 아깽이들이 마구 뛰놀고 뒹구는 모습을 볼 수 있기도! 얼마 전 그런 광경을 구경하며 혼자 귀여워하는데, 근처 초등학생들이 몰려와 큰 소리로 꺅꺅대는 통에 도망친 적도 있다.


가게에서 젖먹는 새끼고양이들과 엄마고양이.

 

 거기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두어 달 전 생긴 신상 카페가 보인다. 인테리어에 많이 투자하신 것 같은데 아직 손님은 많지 않은. 구도심의 조용한 학원가 특성상(특히 주말에는) 일부러 찾아와야 하는 입지인데 어떻게 꾸려가실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식사할 수 있는 가게가 들어오길 바랐지만, 오래 비어있던 장소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조금 더 걸어내려가면 프랜차이즈 카페 하나가 나온다. 메뉴가 100종쯤 되고 가격이 상당히 저렴한데(ex. 아메리카노 2000원), 몇 마디 나눠본 사장님 내외분이 건물주다. 언젠가는 우리도 소유한 건물에서 일할 수 있겠지? 10년, 아니 3년 전만 해도 비건베이커리를 열거나 평택에 오리라고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건물주에게 임차료를 내는 사람은 해당 건물을 소유할 능력을 최고로 많이 가졌다(<돈의 속성>/김승호 저)고, 어느 회장님도 그러던데.


 네일숍과 편의점, 마지막으로 코너에 있는 또 하나의 커피숍이 보이면 그 맞은편이 목적지인 ‘아이스크림 할인점‘. 무인 운영인데 얼마 전 도난사고가 있었는지 내부가 소송 내용으로 도배된 적이 있다. 그땐 아이스크림에 신경 쓸 여력이 없으셨는지 냉장고가 텅 빈 날들이 있어 안타까웠는데 지금은 맨 위까지 꽉꽉 채워두셨다. 안에서 소리 나는 닭인형을 든 어린이가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며 뭘 고를지 방황하고 있기에, 처음 보는 무설탕 쭈쭈바 하나를 골라 재빨리 계산하고 나왔다. 그런데 난 뭘 먹어야 가슴속이 뻥 뚫리듯 시원해지지?

 

 내게 쭈쭈바처럼 달콤하고 시원한 그것은 꽁꽁 얼어있는 사고를 주무르고 녹이며 지금처럼 글을 쓰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하던 일을 멈추고 남편이 쭈쭈바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머리 아닌 가슴에서 글감을 꺼내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과 물건들의 감사함을 조금씩 더 알아차리는 능력이었으면 좋겠다. 생업에 과열된 몸과 마음의 열기를 식히고 평화로운 의식의 온도를 유지하며 살 수 있도록.


 다음 주부터 30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시작된다는데 벌써부터 매장은 손님이 줄고 음료 배달이 늘어나는 추세. 더운 날, 어떤 사람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쭈쭈바처럼 더위를 이길 가벼운 필살기 하나씩 준비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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