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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를 부탁해

생각의 뜀틀

by Yujin


유명인들의 냉장고를 통째로 가져와 그 속의 재료로 원하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프로그램,

시즌2로 돌아온 <냉장고를 부탁해>(이하 '냉부')를 즐겁게 시청 중이다.


15분 안에 하나의 요리를 완성하는 짜릿함과

셰프 대 셰프의 배틀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매회 긴장감을 유지하는 축.

특히 마무리가 채 몇 분 남지 않았을 때 사회자가 출동해 맛을 보고 질문하는 타임은 이 프로그램의 백미로, 손을 달달 떨면서도 침착을 유지하는 셰프들을 볼 때면 경외심과 안쓰러움(?)을 동시에 느낀다.


베이글 반죽 하나 겨우 끝낼 시간이 15분이다.

빨리 만들 수 있는 스콘조차 15분 안에 오븐에 밀어 넣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생면을 뽑고, 3코스 요리까지 뚝딱 만들어내는 금손들을 매주 보니

평소 오전 베이킹 시간이 부족할 땐 집중하는 그들의 모습을 자꾸 소환하게 된다.

'빨리빨리! 할 수 있다..!'


달라지는 게스트, 즉 냉장고 주인의 입맛에 대한 토크와 주관적인 심사는

삶의 다양성과, 다양한 1등의 가능성에 대한 사고의 확장을 촉구하기도 한다.

아몬드와 무김치를 함께 먹으면 맛있다며 편견을 깨기 좋아한다는 하지원 배우의 말에 자극받아

다음날 평소라면 함께 쓰지 않을 재료들을 결합한 반찬을 만들기도 했으니까.


10여 년 전 시즌 1을 보던 시기의 나를 떠올려보니

냉장고에 굴러다니던 레몬으로 당시 잘 알려져 있지 않던 '레몬커드'를 만들던 때다.

주변의 권유로 온라인 댄스 커뮤니티에 판매해 작은 성공을 거뒀고

그때 냉부 양희은 씨 편 냉장고에서 나온 '장미잼'이 궁금해서 꼭 만들겠다며 연구하느라

잼 몇십 kg를 만들고 버린 기억이...

(결국 성공했지만 치과를 더욱 자주 다니게 된)


그때와 거의 같은 포맷을 유지하는 냉부 두 번째 시즌은

두 MC와 셰프들(40~60대)의 연륜이 더해지면서 전보다 더 서로를 놀리고, 방해하며

또 협조하는 분위기 속에 유쾌하게 진행된다.

요리 중 자신을 위해 1분의 시간을 더 쓰거나, 상대방을 1분 멈출 수 있는 베네핏이 생기면서

짐짓 여유 부리거나 당황하는 셰프들의 모습도 더 자주 감상할 수 있다.




언제 어디에 쓸지 몰라 굴러다니는 냉장고 속 수많은 식재료 속에는

냉장고 주인에 대한 다양한 힌트와, 처음 보는 무언가가 될 가능성들이 잠들어 있다.

깊고 복잡한 우리 내면의 재료들 또한 충분히 익었을 때

이전과 다른 형태로 탈바꿈시켜야 한층 의미 있고, 맛있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매일 스스로 요리할 책임이 있는 삶을 살아가지만

문득 상상해 본 적 없는 혹은 창조할 수 있는 나의 최대치가 궁금할 때,

생각의 틀을 뛰어넘고 싶을 때면 누군가의 손이나 시선을 빌리고 싶다.

가슴 깊은 곳까지 활짝 열어 가진 재료들을 다 보여주고 파인다이닝 디쉬를 요청한 다음

설레는 눈빛으로 쇼를 직관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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