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속에 잠수하는 법

넷플릭스 영화, <대홍수>

by Yujin


※ 이 글에는 영화 <대홍수>의 주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꿈에서도, 깨어서도 작은 생각들이 자꾸 올라오는 영화.


어제 보고 나서 바로 짧은 기록을 남겼는데,

안에서 다 내려놓지 못한 무언가가 많은지

오랜만에 좀 더 긴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크리스마스에 이런 재난물을 봐도 되나?'

반신반의하며 혼자서 보기 시작했고

부드럽게 마지막까지 완주했지만 예상과는 사뭇 다른 작품이었다.


먼저 이 영화는,

인간이 창조한 시뮬레이션과 현실 혹은

AI와 인간의 경계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는다.


동시에 논리(많은 대사)보다는

시각적, 감각적으로 보여주는 형식을 택하고 있어

개인이 보다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부분과

즐거운 해석의 여지를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1.

소행성 충돌로 인해 인류는 멸망하고,

신인류를 만드는 데 필요한 엄마와 아이(AI)가 설정된다.


아이가 먼저 만들어지고,

엄마는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아이를 버리지 않을 때까지

수많은 고난의 시뮬레이션을 경험하며 인간의 감정을 완성해 간다.


마치 인간이 여러 삶의 반복 - 윤회, 카르마 등- 을 경험하며

더욱 고차원적인 존재, 혹은 참나(참된 자신)로 나아가는 것처럼.


2.

수천, 수만 번의 시뮬레이션을 거듭하는 도중

엄마는 문득 묘한 기시감을 느낀다.

또한 체험의 배경인 시뮬레이션 또한 자신과 함께

끊임없이 경험하며 진화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빠르게 물이 차오르는 상황에서 굳게 닫힌 엘리베이터를

처음에는 열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적극적으로 열어 지수라는 아이를 구하고

지수의 할머니에게서 약 대신 필요한 오렌지주스를 먼저 받기도 한다.


3.

영화는 시뮬레이션을 변화시켜 가는 주체가 엄마, 즉 우리 자신임을 일깨운다.

넓게 펼쳐진 시뮬레이션은 미완성된 존재의 반영이자 그 자체이고

모든 배경과 등장인물들은 존재의 완성을 위해 각자의 의무와 고통을 감당한다.


이 정도의 이야기라면, 결국 감독이 의도하는 건

'우리는 왜 이 세상에서 이런 경험들을 하는 것일까?

모두가 우리인 곳에서?'

라는 신적인 관점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4.

영화 속 존재들은 대체로 치열해 보이지만,

마지막까지 줄곧 쫓기던 엄마와 아이는

어느 순간 더 이상 생존에 집착하거나 애쓰지 않는 단계에 도달한다.


"엄마랑 수영할까?"

"우리 잠수하자."


수영은 물을 거스르지 않고 몸을 맡기는 행위,

잠수는 숨을 쥐고 있던 힘을 내려놓는 것.


시간과 공간, 또는 주어진 사회적 정체성과 역할 등에 얽매임 없이

경계를 넘나들며 사랑 엄마와 아이만이

결국 시뮬레이션에 의해 운명 지어지지 않는 존재가 된다.




평소 나는 물리적으로 수없이 나눠져 보이는 현실이

비이원성을 향해 가도록 하기 위한 신(참나)의 의도적 장치라고 생각해 왔다.

어떤 상황에서도 너와 나를 구분 짓지 않는 것이 사랑이며

그것을 가장 연습하기 좋게 만든 훈련장이 이 세상이라고.


정말 깊이 사랑할 때 우리는 단지 "사랑한다."라고 말할 뿐,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고 하지 않는다.

지금이 몇 시 몇 분이고 이곳이 어디인지

나와 당신의 직업이나 나이, 성별이나 재산의 정도는 어떤지 확인하지 않는다.


이 글을 쓰다가 매일의 산책길에 만나는 가로수들이 떠오른 건 왜일까?

말없이 새로운 잎과 꽃을 피우고 떨어뜨리기를 반복하다가

언젠가 자연으로 돌아갈 나무들도 나를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다른 존재의 배경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동시에

매일 바뀌는 환경과 자신 사이에 아무런 구분이 없음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우주이자,

우주 이전의 무엇인 자기 자신으로 다시 가라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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