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지 않아도 흔들리는 가지처럼
빵을 좋아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이 여정의 끝은 어디일까.
베이킹 공방을 열고, 요리학원을 다니고, 여행을 하다 비건에 눈을 떠 비건베이커가 되었다. 평택으로 와서는 자연과 명상에 새롭게 눈을 떴다. 서울과 평택에서의 매장 운영 기간만 합하면 약 7년간 빵을 굽고 있다.
베이킹은 언제나 확실한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빵을 굽고 난 이후의 시간들은 어떻게 채워야 매 순간 행복할 수 있을까?
오후는 주로 손님을 응대하는 시간이다. 구도심의 조용한 학원가 안쪽에 꼭꼭 숨은 우리 가게. 우연히 오는 사람은 드물, 아니 그런 법이 없다. 하나의 경험은 삶에서 내가 배워야 할 과제나 보상으로 온다.
빵이 잘 판매되지 않는 것은 문제지만 너무 많이 팔려도 체력과 정신의 부침을 겪는다. 계획한 빵이 단숨에 다 팔려버린 날에는, 계속해서 반죽을 이어가는 중노동을 할 때도 있다.
가게를 운영하며 결코 하고 싶지 않은 공지가 있다면 '몸이 좋지 않아' 쉰다는 말이 아닐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으로 체력을 관리해야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할 수 있다. 하루 11시간의 업무시간 중 절반 이하로만 빵을 굽기로 정했다. 나머지 시간에는 손님과 대화를 나누고, 스스로의 내면을 가꾸며 주변 존재들로부터 배우고 단련하기로.
올해 초, 처음으로 광양 매화축제를 찾아갔다. 기후 변화로 매화는 거의 피지 않아 아쉬움이 컸다. 가까운 순천에 있는 순천만국가정원이라도 한 번 들러볼까? 순천만습지와 헷갈려하며 도착한 그곳은 월요일이라서인지 주차장에 차가 없었다. 매화축제와 마찬가지로 볼 게 없을지도 모르겠다며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입장했다.
들어가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놀라웠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거대한 정원이 있었다니. 사방이 탁 트인 부지에서 나라별 전통을 담은 정원들을 걷는 체험은 세계일주를 방불케 하듯 흥미진진했고, 사람이 거의 없어 고요히 거닐기에 최적이었다. 꽃잎 한 장 없는 가지가 바람에 흔들릴 때, 내 안의 빈자리도 반갑게 흔들렸다. 잔잔한 음악과 함께 꿈꾸는 듯한 한때를 보내고 돌아왔다.
그때부터 정원에 마음이 열려 2025 서울국제정원박람회(올해 10월 20일까지 진행한다)도 구경하러 갔다. 순천만국가정원과는 달리 입구부터 아기자기한 마이크로 정원을 많아 탄성을 질렀던 기억이 난다. 기업과 지자체를 연계해서 꾸민 작은 정원들, 공모전 수상 작품들과 메타몽 가든, 처음 보는 디지털 정원까지.
꽤 걸었다 싶었을 때 푸드트럭 존과 멀지 않은 공간에 사람들이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음악무대 근처에 넓게 꾸며진 곳의 이름은 <생태정원>. 의자와 탁자가 많고 우거진 나무그늘 아래로 조명들이 늘어뜨려져 있다. 곳곳에 통째로 배치된 나무토막과 뿌리들은, 여러 동식물이 살아갈 수 있는 미세 서식공간을 만들어준다고 한다.
걷다 지친 사람은 혼자 가만히 음악을 듣고, 누군가와 함께인 사람은 본격적인 수다를 떨기도 하는 곳. 피크닉을 나온 듯 돗자리와 도시락을 펼친 가족들도 보였다. 그날 본 모든 풍경 중에서 유독 마음에 드는 공간이었다. 자연과 어우러진 모습 속에서 사람조차 각자의 잎과 열매를 가진 존재처럼 보였다.
특정 형태를 구상해 인위적으로 조성한 정원들은 보기에는 깜찍해도, 프랜차이즈 식당의 음식맛처럼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반면에 최소한의 손길 속에 인간이 함께 호흡하는 장소에서는 가정식을 먹는 듯 미소가 떠올랐다. 기하학적 모양의 꽃꽂이같은 일방적 착취가 아닌, 서로의 본성이 어우러진 조화로운 광경이었다.
언제부턴가 모두가 구성원이 되어 서로에게 숨을 불어넣는 공간을 그린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각자의 믿음이나 가치관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명상할 수 있는 곳. 보이는 정원과 보이지 않는 정원을 모두 포함해서.
일정 기간 수련에만 집중하거나, 하루 이틀의 깊은 침묵을 얻기에도 유용한 자연을 닮은 공간을 만들고 싶다.
육체는 영혼을 실은 자동차에 비유할 수 있다. 자동차를 잘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야말로 생의 본질이다. 죽지 않는 영혼의 행복을 추구하는 일은 현생을 넘어서도 계속된다.
내가 이곳에 온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누구일까.
하기 싫은 일을 먼저 정리하다 보면 하고 싶은 일이 또렷해지는 것처럼, 나답지 않은 면을 하나씩 발견하는 행위로도 점점 나다움에 가까워질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언어를 초월해 영혼으로 직접 대화할 수 있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개와 돼지, 꽃과 나무들처럼 생김새가 다른 모든 생명들과 경계 없이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내면의 울림을 키워 전해야 할 메시지가 있기에 매일같이 영혼에 흙과 거름을 준다. 글 쓰고 명상하며 비건빵을 굽다 보면, 언젠가 깊이 뿌리를 내리고 넓혀 원하는 차원에 닿을 것을 믿는다.
이 작은 식탁이 정원으로 확장되면, 그 뜰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에도 당신을 초대하고 싶다.
"나의 정원에는 테마를 정해서 계획적으로 만든 꽃밭은 없습니다.
어느 꽃밭에서건 사계절에 따른 변화와 리듬을 즐길 수 있도록 개화시기가 서로 다른 식물을 섞어서 심지요.
- 타샤 튜더, 나의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