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책 기록] 12월

by Yujin

1. 크눌프

2. 동물의 자리

3.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4. 사막과 럭비

5. 등대로




1. 크눌프 - 헤르만 헤세, 이노은 옮김


- 그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모든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을 자신의 친구로 삼았으며, 모든 소녀들과 여인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매일매일을 일요일처럼 살았다. 사람들은 그가 자신이 살아온 방식대로 계속해서 살아가도록 내버려둘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그가 좋지 않은 상황에 빠져 피난처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생길 때, 그를 맞이해 들이는 것은 기쁨이자 영광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집을 즐겁고 밝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오히려 그에게 감사해야 할 정도였다.


- 자네는 가난뱅이일 뿐인데, 마치 백작이나 되는 것처럼 우아하게 하고 다니는 이유가 도대체 뭔가?

크눌프는 조용히 미소지었다.

"보기에 더 좋지 않나, 그리고 내게는 기쁨이 되는 일이기도 하고."


- 그는 시간이 남아 넘치고, 또 삶에 관객으로 참여하는 법을 배운 사람답게 즐거운 인내심을 가지고 엿듣고 있었다. 창문을 통해 처녀의 모습이 비치면 그는 그 모습을 보며 기뻐했다.


- "보아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난 오직 네 모습 그대로의 널 필요로 했었다. 나를 대신하여 넌 방랑하였고, 안주하여 사는 자들에게 늘 자유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씩 일깨워주어야만 했다 .나를 대신하여 너는 어리석은 일을 하였고 조롱받았다. 네 안에서 바로 내가 조롱을 받았고 또 네 안에서 내가 사랑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자녀요, 형제요, 나의 일부이다. 네가 어떤 것을 누리든, 어떤 일로 고통받든 내가 항상 너와 함께 했었다."

"그래요"

크눌프가 말하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사실은 저도 항상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 크눌프를 읽으면서, 내가 '그리스인 조르바'를 몇 번이고 거듭 펼쳐도 다 읽을 수 없었던 까닭을 저절로 알게 되는 듯했다. 동시에 소설을 쓸 수 있는 시간은 완전한 깨달음 안에 계속 거하기 직전까지이겠구나, 하는 생각. 그곳을 넘나드는 자리 혹은 경계에서.




2. 동물의 자리 - 김다은 정윤영 글, 신선영 사진


- 내가 방문한 생추어리들은 마치 고해성사실처럼 고요했다.(중략) 우리에겐 그런 무언의 공간이 필요하다. 잠시라도 인간이 입을 다물고 동물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공간. 동물들이, 우리에게 기회를 주는 공간.


- 이 세상에 완전한 자유가 존재하는 생추어리는 없다. 생추어리는 정답이 아니라 질문이다.(중략) 자연의 언어를 배우지 못한 동물이 야생으로 돌아가 제대로 삶을 영위할 수 없다면, ‘방류’가 폭력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생추어리’는 최선일 것이다.


- 축사에 갇히지 않은 소가 흙을 밟고 네 발로 겅중겅중 뛰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소가 운동장을 달리고 흙바닥에 누워 쉬는 것만으로도 그 ’살아 있음‘이 자랑스러웠다.


- 곰들의 겨울잠은 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이 시기에 뚱뚱해진 곰들에 유별난 관심과 사랑을 보이는 곳도 있다. 미국 알래스카 카트마이 국립공원에서는 불곰 보존기금 마련을 위해 2014년부터 매해 10월경 연어잡이에 나선 2200여 마리의 불곰 가운데 가장 뚱뚱한 곰(사실은 가장 매력적인 곰)을 온라인 투표로 선정하는 ‘뚱뚱한 곰 주간’을 열기도 한다. 생존을 위한 이들의 노고를 기념하는 대회이기도 하다. 이곳 곰들의 주메뉴는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연어다.


- 국제동물권리단체인 페타PETA는 2019년 제주도의 한 도축장에서 말들이 전기충격을 받으며 끌려가 다른 말들이 보는 앞에서 도축되는 장면을 공개했다. 도축된 말들의 나이는 평균 서너살로 '경주마 불용' 판단을 받은 말들이었다.

페타가 공개한 영상에는 경기 도중 부상을 당해 다리에 붕대를 감은 채로 도축장으로 끌려간 말도 있어 공분을 샀다.


- 곶자왈 금악리 중산간 마을에 생추어리 공간을 만드는 데 꼬박 2년이 걸렸다. 수돗물을 얻기 위해 지자체와 싸움도 마다하지 않았고 필요하면 포클레인과 트랙터 모는 법을 배웠다.


- "여기 봐요. 가시덤불만 있던 곳에 쑥이 나오고 산딸기가 나왔어요. 말들이 여기에서 풀을 뜯고 똥을 싸면서 여러 생명이 자라나는 거예요. 말들이 여기에서 풀을 뜯고 똥을 싼다고 나무를 죽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라게 하잖아요."


- 경주마들은 발굽에 편자를 단다. 편자는 말하자면 쇠로 된 신발이다. 경주마들은 발굽이 금방 닳기 때문에 편자를 쓰는데, 이곳에서는 편자를 달 필요가 없다. 발굽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달릴 일이 없으니까.

맥스는 상처를 치료하느라 마장 안에서 혼자 지내는 중이었고 무리와 섞이지 못해 초원을 달리지 못한다. 한 달에 1센티미터 가까이 자라는 발굽이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커다란 스크래처로 발굽을 긁어준다.

올해 여섯 살인 맥스의 털은 회색이다. 태어날 때는 검은색이었다가 다섯 살이 넘으면 백마가 되는 청회마이다.


-끙끙이는 나쁜 버릇을 뜻하는 악벽 중 하나인데, 철제 난간이나 플라스틱 물통을 종일 앞니로 잡아당긴다. 이때 위장 안으로 공기가 들어왔다 나가기 때문에 복통을 앓기도 하고, 이빨이 닳거나 부러져 잇몸만 남기도 한다. (중략) 정형행동은 환경이 바뀌거나 마방에 갇혀 있을 때 생기는 스트레스 때문일 수도 있고 운동이 부족하거나 지루해서 하는 행동일 수도 있으며 잊지 못한 고통이 원인일 수도 있다.


- 한국은 말들이 어릴 때, 최고로 빨리 달릴 수 있을 때 경주를 시키고, 빨리 달릴 수 없거나 다치면 그냥 버리는 거예요. 외국에서는 말이 경기에서 우승하면 그다음 주는 쉬어요. 한국은 연승이 목표죠. 7연승까지도 하는데 그럼 편자를 아무리 끼워도 발이 남아나지 않아요. 마사회 연간 매출이 7조래요. 외국 마사회는 경주할 때마다 우승상금의 3퍼센트를 퇴역 경주마를 위한 복지금으로 적립하거든요. 한국은 그렇지 않죠. 1년에 1400마리가 퇴역을 한다는데, 퇴역 이후의 삶은 자료가 전혀 없어요. 이제 알겠어요. 퇴역하면 승마장에 헐값에 팔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불법 도축장으로 끌려가서 말뼈 엑기스가 되거나 개 간식으로 만들어지거나 그냥 살처분되는 경우도 있고요. 사연 없는 말들이 없어요.


- 불법 도축을 하는 이유는 뻔하다. 합법적으로 도축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병이 들어 죽어가는 말들, 고기로 유통되어서는 안 되는 말들의 뼈와 내장을 누군가 팔고, 누군가 산다.


- 육상 포유류 중에 말의 눈이 가장 크다고 하던데, 정말 크다. 말의 눈은 머리 양쪽에 있어 시야가 아주 넓고, 그래서 바로 코 앞에 있는 것은 잘 보지 못한다. 대신 코의 후각과 수염의 촉각이 뛰어나 가까이 있는 걸 감지할 수 있다. (중략) 허밍과 눈을 마주치고 그의 뺨을 쓰다듬은 30분, 시간이 또 한 번 멈춘다. 이 마주침이 내가 살아온 시간, 내 습관부터 오래 묵은 편견들을 무너뜨릴 거라는 걸 알았다. 이 순간, 그러니까 다른 존재와 마주하면서 내가 살던 세계가 무너지는 걸 확인하는 순간들이 좋았다. 개, 고양이와 한집에 살게 됐을 때,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소와 돼지를 봤을 때, 바퀴벌레를 보고 벌레가 아니라 작은 동물이라고 얘기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랬다.




3.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최은영


- 나는 그때 내가 겨울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겨울은 사람의 숨이 눈으로 보이는 유일한 계절이니까. 언젠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을 참으며 긴 숨을 내쉬던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보일 것처럼 떠올랐다.

그 모습이 흩어지지 않도록 어둠 속에서,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 나는 아직도 그녀가 내게 했던 말을 기억한다.

기억하는 일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영혼을, 자신의 영혼을 증명하는 행동이라는 말을.


- 당신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한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그 누구도 논리로 반박할 수 없는 단단하고 강한 글을. 첫번재 문장이라는 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글을, 그래서 이미 쓴 문장이 앞으로 올 문장의 벽이 될 수 없는 글을,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잠겨 있는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언어로 변화시켜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는 글을.


- 희영이 가진 장점들의 상당수는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었지만, 몇 가지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타인의 상처에 대해 깊이 공감했고, 상처의 조건에 대한 직관을 지니고 있었다. 글쓰기에서는 빛날 수 있으나 삶에서는 쓸모없고 도리어 해가 되는 재능이었다.


- 글쓰기로 자기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다시 글을 써 그 한계를 조금이나마 넘을 수 있다는 행복.




4. 사막과 럭비 - 이경란


: 도서관의 신간코너 사진을 찍은 다음,

챗gpt에게 내게 도움이 될 한 권을 고르게 해서 읽게된 책.

원했던, 나를 흔드는 종류의 책은 아니다. 특정 문장을 이곳에 옮겨놓기에는 어려움을 느낀다.




5. 등대로 - 버지니아 울프


: 꼼꼼하며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문장으로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연말에 쭉쭉 읽어내기 쉽지 않아, 집에서만 조금 읽다가 다음으로 미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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