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막이 오르듯, 한 해가 열리면
낯선 공간에서 계획이나 목표를 세우곤 했다.
왜 그러고 싶었을까?
어쩌면 그렇게 해왔으니까.
일상에서 한 발짝 떨어진 장소에서는
정신이 맑고 또렷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올해는 계획도,
어딘가에서 계획을 세우겠다는
그 틀도 없애보기로 했다.
대신 오후의 카페에서
읽고 싶었던 책을 천천히 읽고,
고기 만찬이 예정된 가족의 저녁 식사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나는 그저 내가 될 수 있을 뿐
다른 누구도, 역할도, 이미지도 아니므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생각해 보면,
결말을 정하지 않고 촬영 중인 영화 속에서
배우가 자기만의 계획을 세우는 일만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진실한 나의 얼굴과 마주할 때
가슴은 저절로 펴지고
어깨는 내려가고
걸음은 무중력에 가깝게 가벼워진다.
다만
삶이라는 큰 흐름의 안내에 따라
무엇을 하다
또 다른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인식이 찾아올 때
거리낌 없이 파도에 올라타기를,
한 번도 그친 적 없는 물결 속에서
변하지 않는 숨을 느낄 수 있기를.
모든 대상에서 나(신)를 보고
그들과 한데 뭉뚱그려지기를
바람 없이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