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킹 클래스를 열다
"한번 열어볼까요?"
오븐 속에 있던 트레이가 갓 태어난 빵들을 싣고 테이블 위에 도착한다. 수강생들은 재빨리 사진을 찍고 장식을 올리며, 맛을 본 다음 각자 포장을 한다. 상기된 얼굴의 사람들이 문 밖으로 사라지면 박수 없는 무대의 커튼콜처럼 다시 베이킹의 막이 오른다. 바로 마지막 단계인 '설거지'!
수강생 1~2인의 실습 분량에도 족히 1시간 30분은 소요되는 그 날의 피날레이자 독무(獨舞)다.
가루와 액체를 골고루 믹싱하고 거품을 내는 베이킹용 볼은 크고 움푹한 것이 많다. 재료를 넉넉히 넣고 마구 돌려 섞어도 바깥으로 잘 튀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두세 개만으로도 웬만한 싱크대를 가득 채울 수 있다.
설거지가 쉬운 편인 버터와 생크림, 크림치즈 등 우유에서 나온 재료들은 충분한 거품과 함께 뜨거운 물로 씻어내려도 배수관 속에 쌓인다. 발효 반죽의 잔여물과 초콜릿은 좀 더 까다로운데, 수세미에 들러붙어 잘 떨어지지 않고 다른 설거지 감에 달라붙기 때문이다. 골칫거리 중 으뜸은 플라워케이크를 만드는 연습용 크림이다. 꽃잎을 한겹 한겹 짜서 만든 꽃송이들로 케이크를 장식하는 플라워케이크는 손의 압력과 미세한 동작에 익숙해지기까지 쇼트닝*으로 만든 크림으로 연습하는데, 이 크림은 아무리 씻어도 볼은 물론 짤주머니와 손에서 계속 끈적였다. 배수구는 꽉 막히고 며칠이 지나면 짤주머니에서 꼬릿한 냄새가 났다.
* 쇼트닝 : 식물성 기름으로 만드는 식품가공원료
당시에 내가 살던 원룸의 개수대는 A4용지를 세로로 두 장 붙인 정도의 크기였다. 그 안에 스테인리스 볼 몇 개와 핸드믹서의 거품 날, 고무 주걱, 계량컵 등이 빈틈없이 채워졌다. 크림으로 막힌 배수구의 물은 내려가지 않고, 플리마켓에 판매할 잼을 끓인 냄비들과 잼병들이 주변에 쌓였다. 분리된 여러 단계의 작업이 필요한 베이킹을 끝냈거나 잼을 몇십 병 끓인 후에는 발 디딜 곳이 없었다.
작업실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잠잘 자리도 거의 사라진 때였다. 요즘처럼 공유 주방이나 대여용 주방이 있으면 좋았겠지만 그때는 큰 싱크대가 딸린 작업실을 찾아 발품을 팔아야 했다. 다행히 예상보다 적은 비용으로 자유롭고 이국적인 분위기의 이태원에 첫 작업실을 구할 수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먹음직스러운 케밥 가게와 <트랜스젠더 바>를 지나 하얗고 신비로운 이슬람 모스크(사원)를 향해 걸어가면, 낡고 커다란 냉장고 여러 개를 바깥에 내놓은 수리점 옆에 눈에 잘 띄지 않는 검은 철제문이 보였다. 그곳의 3층은 요리하는 사람과 향수 만드는 사람, 사진 찍는 사람, 패션 디자이너, 인지과학 연구자가 함께 꾸려가는 공동 작업실이었다. 그리스의 바다를 연상하게 하는 푸른 색과 흰색으로 오래된 벽과 문을 칠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샹들리에가 달린 공간의 첫인상은 바깥의 어수선한 풍경과는 드라마틱한 대비를 이뤘다. 공용 공간을 지나면 내가 사용할 주방이 나왔는데 싱크대가 충분히 넓었다.
주로 회사일을 마친 저녁, 작업실에서 밤늦게까지 베이킹을 하고 완성한 품목을 SNS에 올리면 고맙게도 지인들의 케이크 예약과 베이킹 클래스 문의가 들어왔다. 못할 것도 없겠지 싶으면서도 누군가를 가르치기엔 너무 짧은 경력과 실력이 고민이었다. 혼자서 베이킹을 시작한 지 5년도 아닌 5개월째인데 괜찮을까?강한 바람에 등을 떠밀리듯 클래스 공지글을 블로그에 올리면서도, 미숙한 능력으로 누군가를 가르쳐도 될지 확신이 없었지만 수강 신청은 벌써 들어오고 있었다.
그 무렵 프랑스 요리학교인 르 꼬르동 블루 Le Cordon Bleu - 숙명 아카데미에서 입학 세미나가 열렸다. 개인적으로 가장 친숙한 방식인 책을 통해 베이킹을 독학하는 것도 즐거웠지만, 언젠가는 멋진 스승에게 직접 최고의 요리 기술을 배우고 싶어 세미나에 참석했다. 학교 소개와 입학 안내를 마치고 당시의 제과장이었던 하비에르 메르카도 셰프가 나와 마카롱 시연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프랑스 파리를 혼자 여행하다가 조그만 마카롱을 몇 개 사 먹고 그 맛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런 마카롱은 국내에서 만나기 어렵고, 만들기 쉽지 않다는 것도 알았기에 눈에 불을 켜고 시연에 집중했다. 그런데 그 날 메모한 것 중 가장 유익했던 내용은 마카롱을 만드는 포인트나 요령보다는, 가나슈(초콜릿 크림)에 넣을 액체 캐러멜을 만들면서 셰프가 담담한 표정으로 꺼낸 말이었다.
지금 누군가를 가르치고 있지 않다면 그 일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아는 것을 누군가에게 가르치면 그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를 가르치고, 그렇게 되는 것이 생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셰프의 진지한 표정과 열정을 곱씹으며 집에 오는 길. 좋아하는 고전인 플라톤의 <향연>에 나온 구절이 떠올랐다.
사랑이 하는 일은 아름다운 것 속에서 잉태하게 하는 것이고, 이러한 잉태는 육체적인 것일 수도 있고 정신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 소크라테스에게 하는 디오티마의 말 중에서 -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그 일을 사랑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일인지도 모른다. 또한 그것은 여러 사람들로부터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가르침을 받아온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수행해야 할 일종의 책무일지도 몰랐다. 어떤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지식뿐만 아니라 기쁨과 행복, 슬픔과 좌절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준다면 우리는 더 많은 아이디어를 창조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구나 자신의 지식이나 기술을 전달함으로써 미지의 세계로 한 발짝 더 걸어가려는 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물론 어떤 자격은 숫자나 증서, 명성에 의해 주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이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에 항상 증명이 필요하다면, 얼마나 많은 인류의 잠재력이 사라져버리는 걸까?
첫 베이킹 클래스는 2015년 12월 20일, 나무토막 모양의 프랑스 전통 크리스마스 케이크 <부쉬 드 노엘 Buche de Noel>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했다. 공지글만으로 수강료를 먼저 보낸 사람들을 위해서는 받은 것 이상의 가치를 돌려줄 수 있을 정도의 준비가 필요했다. 긴장과 부담 속에, 혼자 베이킹을 할 때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음을 알아차렸다. 레시피와 용어부터 쉽고 명확하게 다듬고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재료의 특성도 깊게 파악해야 하니까. 수강생과 함께 보기 편한 핸드아웃을 만들면 흩어져 있던 다른 메모들도 정리할 수 있었다.
똑같은 레시피와 설명으로도 수강생들이 만든 결과물에는 크고 작은 차이가 났다. 클래스가 끝난 후엔 일반화해서 적용하기 어려웠던 점이나 중간중간 떠오른 의문에 대해 생각했고, 그 부분을 해결하면서 미흡한 점들을 찬찬히 보완했다. 참여자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지 않고 답할 만큼의 경험치를 쌓기 위해 각종 품목의 작업량도 늘렸다. 베이킹에서의 실력은 경험과 정비례하니까.
1~3명의 소수 인원과 함께한 수업에서 사람들은 주제의 완성을 위한 획기적인 발상을 내기도 하고, 멋진 디자인을 발견하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서로를 응원하고 꽃 피우면서.
물론 클래스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 처음부터 매끄럽게 대응할 수는 없었다. 지인이 참여한 클래스에서 더 긴장한 나머지 중요 재료를 마지막에 섞는 것을 잊고 오븐에 반죽을 넣어버린다든지, 공동 작업실의 다른 이용자와 공간 이용 스케줄이 맞물리면서 집중이 필요한 베이킹 클래스와 쿵쿵대는 분위기의 파티 준비를 함께 진행했던 날도 있었다.
그 파티 사건은 공동 작업실을 떠나 개인 작업실을 구하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됐다. 클래스의 소중한 시간을 예상하기 어려운 일로 방해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혼자 쓰는 작업실에는 그만큼의 책임이 더 따를 테지만, 편하게 몰두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생기면 작업도 더 마음껏 할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것은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