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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Oct 25. 2022

제주여행 D-day

9월 22일, 목포항으로 떠나기까지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휴가를 다녀온 9월 초, 우리는 휴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매장을 열고 1년이 지나면 열흘 정도는 쉬자고 (아마도 내가 말을)했었다. 첫 안식 주간이다.


 우리 매장은 주 5일 연다. 쉬는 날 중 하루는 함께 사는 시모부님을 모시고 병원 또는 마트에 가는 편아며, 다른 날 각자 하고 싶은 걸 한다. 내 경우엔 조금 긴 명상이나 글쓰기, 각종 궁금한 것 파고들기. 남편은 오후 늦게 일어나기, 기타 배우기, 보고 싶은 영화 몰아보기 등등.


 그래도  "많이 바쁘신가 봐요~ 문도 늦게 여시고."라며 은근히 채근하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이 집은 왜 이렇게 많이 쉬어요?"라고 묻는 손님도 있다. 빵을 만들기 위해 오전 8시경 출근해서 저녁 8시경 퇴근하면 최소 주 60시간 이상 일한다는 걸 모르시겠지. 우리나라 성인 근로자의 법정근로시간은 1일 8시간, 주 40시간이지만 요식업 소상공인들은 그보다 훨씬 많이 일한다. 


 1인 혹은 2인 체제의 가게 사장에게 쉼은 아주 중요하다. 대체 인력이 없기도 하지만 컨디션이 받쳐줘야 손님에게 친절할 수 있기 때문. 더구나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그의 에너지가 식재료와 손님에게 직접 영향을 주기에 특히 조심해야 한다. 건강하지 않음,만큼은 우리 가게의 휴무 사유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신 '결혼기념일이어서 쉽니다', '생일이라 일찍 문 닫습니다 ‘라고 써붙이는 일을 망설이지도 않았으면 한다. 물론 이미 그러고 있지만.






 처음에는 스페인에 가려고 했다. 남편이 오래전부터 가고 싶어한 나라. 스페인에 대해 알면 알수록 점점 그 나라의 열정적인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졌다. 하지만 위드 코로나에도 가게가 아직 안정세에 접어들지 않았는데 무리는 아닐까? 믈론 여유가 있어서 여행을 간 적은 없지만. 그러다 문득 가게에 오셨던 한 분의 이야기가 스쳤다.


"와, 평택에 이런 가게가 있었다니. 꼭 제주도 같아요. 어떻게 여기 이런 가게를 여신 거예요?"


 제주도에는 이런 가게 혹은 우리와 결이 비슷한 사람이 많은 걸까? 제주는 많은 사람들이 틈날 때 가고 싶어 하는 여행지다. 제주도로 이사 가는 사람들은 성공했다는 듯한 부러운 시선을 받고, 한 달 살기 순례도 이어진다. 스페인보다 비용도 적게 드니 어른들께 말씀드리기 부담스럽지도 않을 것 같다. 두 여행지를 저울질하다 남편에게 선택권을 넘겼다. 스페인 갈래? 아니면 가볍게 제주도 갈까?


 그는 제주도를 택했다. 제주도 가는 배에 차도 실을 수 있다면서. 당연히 비행기를 생각했는데 차를 가져간다면 조금 더 여유롭고 편하게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그때부터 약 일주일간 숙소와 배편을 열심히 뒤져 예약했다. 출발 며칠 전 문제가 생겨 숙소와 배 날짜를 모두 조정해야 했지만... 요일에 따라 갈 수 있는 곳과 없는 곳이 있다 보니 그나마 있던 동선이 꼬여버렸다. 꼬인 걸 정리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움직이자며 그냥 내려놓았다.


 ' 대충 준비하자, 대충.'

 옷 입고 짐을 싸는 데는 채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최소한의 계획을 세우고 내맡기는 삶이 편하게 느껴진다. 결혼과 동시에 붕괴되기 시작한 에고(ego)의 성은 코로나와 함께 줄곧 무너져 내리고 있다. 다행히도.


 일주일 넘게 물을 주지 못할 식물들에게 저면관수(화분의 아래쪽에 물받이를 두어 물을 공급하는 일)를 하러 매장에 들렀다. 작은 아이들은 괜찮지만 녹보수 화분은 받칠 큰 그릇이 없어 고민하는데, 남편이 번쩍 들어 싱크대에 넣는다. 물을 듬뿍 채우고, 기름도 채우고, 목포항으로 출발-!


 차에서 여러 종류의 무설탕 캔디를 까먹으며 목포항에 도착했다. 오늘 탈 배의 이름은 '퀸 제누비아'호. 라운지와 베이커리, 편의점, 오락실, 영화관, 안마실 등 구경할 것이 많은 크루즈형 호화 여객선이다.



 차를 싣고 에스컬레이터로 배에 올랐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폈는데, 와이파이가 없다. 얼마 전 헤르만 헤세의 소설을 전자책으로 다운받아둔 게 있어 다행이야. 가능하면 글도 써야지.

 

 마주보고 노트북을 편 채 샌드위치와 과자, 기계(?) 라면, 어묵탕과 떡볶이를 먹고 놀다 보니 새벽 1시. 음식이 나왔음을 알리는 쉼 없는 식당 벨소리 속에 공기가 제법 차가워졌다. 서서히 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배에서 먹은 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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