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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Feb 08. 2023

뜻밖의 도움을 받은 날

기부 천사를 만나다


 새로 옮겨온 병원에서 치료가 시작되었다.


 동물구호단체의 지원 심사에는 2주 이상이 소요되고, 미리 치료비를 결제하면 안 된다는 조항이 있어 선생님께 양해를 구했다. 부탁이나 아쉬운 소리를 잘 못하는 편인데 제출할 서류 목록(병원 사업자등록증, 병원 통장사본, 청구서, 치료 사진 etc.) 하나하나를 설명드리는 일은 사실 여간 면구스럽지 않았다. 원장님과 간호사님 두 분이 모든 진료를 보셨기에 전화를 받기 어려울 만큼 바쁜 날도 많았고, 서류를 수정할 일이라도 생기면 죄송스러워서 몇 번씩 휴대폰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전원 당시, 이전 병원에서 상상 이상의 치료비를 결제한 이야기를 들으셨던 원장님은 첫날만 입원비를 받고 나머지는 호텔링 비용만 받겠다고 하셨다. 입원비도 비싸지 않았는데 호텔링은 더 저렴했고, 보내주신 청구서에 적힌 최소한의 검사와 치료 항목에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후 병원에서 거무스레하게 괴사된 조직이 모두 떨어지고 촉촉한 새 살이 돋은 뽀 사진을 보내왔다. 수술날짜가 잡혔다고. 봉합해 보고 안되면 이식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서 긴장한 가운데 이틀 후 수술이 이루어졌다. 다음날 뽀를 보러 갔더니 녀석은 한껏 예민해져서 기분이 나쁜 듯한 앓는 소리를 냈다. 수술은 잘 되었지만 실밥을 풀 때까지는 일주일을 더 기다려야 한다.


 그때까지 집은 뽀를 보살필 만반의 태세를 갖췄다. 고양이 화장실, 모래, 자동 급식기, 사료와 간식, 홈캠, 장난감, 이동장, 스크래처 등을 고르고 집안의 가구 배치도 바꾸어가면서. 퇴원 준비를 해야 하나 싶어 봉합사를 풀기 전날 카톡으로 뽀의 상태를 여쭤보았는데, 몇 시간 후 원장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아까 카톡으로 사진 한 장 보냈는데 혹시 보셨나요?"

"사진이요? 앗, 지금 볼게요.(잠시 후)

 으아..! 벌어졌어..."


 봉합 부위를 양쪽에서 당기는 장력 때문에 가장 넓은 곳이 벌어지고 말았다. 구조한 지 거의 3주가 다 된 때라 내심 퇴원까지 기대했는데. 재수술까지 다시 일주일은 기다려야 하고, 아물기까지 추가로 일주일은 더 걸릴 것이다. 이식까지 말씀하지는 않으신 게 그나마 다행일까. 한 번 더 수술을 받아야 할 뽀와 치료비가 걱정스러웠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오랜 기다림과 무력한 우울감으로 며칠을 보내는 사이 뜻밖의 사건이 일어났다.




 매장 오픈 시각인 정오를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처음 보는 분이 오셔서 비건빵과 디저트를 이것저것 고르셨다. 뽀의 안부를 물으시기에 인스타그램에 올린 구조 소식을 보셨구나 싶어 한숨 쉬며 상황을 말씀드리니, 모금도 하지 않던데 치료비가 부담되지 않느냐고 하시며 이렇게 덧붙이는 것이 아닌가.


"제가 도네이션을 좀 해도 될까요?"

"네...? “

“얼마 안 되지만 기부를 좀 하고 싶은데요.”

“헉... 그래주시면 저희야 정말 감사하죠!"


작은 도움이라도 마다할 처지가 아니었기에 냉큼 계좌번호를 적어드렸는데, 잠시 후 손님이 말씀하셨다.


"50만 원 보냈습니다."

"네...? 농담이시죠?"

"아닌데요..."

 

갑자기 당황스러웠다.


"만원이라도 저희는 너무 감사한데... 정말 고맙습니다."


 확인해 보니 그만큼의 금액이 들어와 있다. 세상에는 내 소견으로는 가늠하지 못할 만큼 멋진 사람과 일이 많다는 걸 왜 잊고 있었을까. 도와달라고 하지 않아도 돕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왔으며 어떤 뇌구조를 가지고 있는건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어떠한 이기심도 없는 사랑을 실천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다친 길고양이를 구조하면서 한 생명을 구한 벅찬 행복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전의 삶과 비교할 수 없는데, 눈앞의 상황에 사로잡힌 사이 또 한 번 선물을 받았다. 머릿속 먹구름이 고양이 발바닥 젤리 같은 연핑크색으로 돌변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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