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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Feb 19. 2023

퇴원, 그리고 첫 일주일

경계심으로 가득한 가족 구성원의 등장

 

  재수술이 끝나고 마침내 봉합사를 제거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루밍(고양이가 털에 묻은 이물질을 제거하는 행동)을 지켜보고 괜찮으면 퇴원해도 될 것 같다고. 동물보호단체의 치료지원금도 병원으로 입금되어서 정말 끝이 보이는 듯했다.


기분 풀라고 캣닙을 뿌려주셨지만 스트레스가 많았던 뽀의 모습;


 퇴원은 구조해서 처음 입원한 날로부터 38일째, 5주 반만이었다. 기본 3주에 400만 원 이상 들 것이라고 했던 첫 병원에 머물렀다면 최소 700만 원은 나왔을 기간. 하지만 옮겨온 병원에서 34일간 입원하며 치료한 예상 비용은 700만 원의 1/3~1/4 수준이었다(다친 길냥이에 대한 원장님의 무언의 배려가 포함된 금액이다). 한 생명의 은인이자 두 사람의 경제적 은인께 드릴 비건빵과 쿠키, 와인을 가지고 퇴근 후 뽀를 데리러 갔다.


  폴짝폴짝 뛰어오는 터키쉬 앙고라와 순한 페르시안, 검은 복면을 쓴 듯한 아이 등 병원에서 키우는 고양이들이 6마리쯤 나와있었다. 다들 예뻐서 하나둘 쓰다듬으려니 뽀를 데려올 때 가져온 포획틀과 함께 원장님이 나타나셨다. 감싸 안은 담요를 바닥에 내려놓자 자세를 바짝 낮춘 녀석이 포획틀로 쏜살같이 달려들어간다.

 

 치료 내내 손을 타지 않고 하악거렸다는 '지조 있는'(사실 지조 때문은 아닌데) 뽀가 앞으로 어떻게 집에 적응할지 걱정된다고 하시는 원장님. 신용카드를 드리려는데 갑자기 재수술 이전까지의 입원치료비만 받겠다고 하시는 게 아닌가. 이미 많이 배려해 주셨는데 다시 말도 안 되는 금액을 말씀하셔서 남편과 나는 펄쩍 뛰었다.


"원장님 그러시면 안돼요. 더 받으셔야죠, 입원한 기간이 얼만데... "


그러자 그는 짓궂게  말씀하신다.


"호호 그래요? 다 받으면 엄청 많이 나올 텐데."


우리는 잠시 눈알을 굴리며 침묵했고, 원장님은 웃으며 그럼 딱 재수술비까지만 받겠다고 하신다. 기쁜 마음으로 치료비를 정산하고 조만간 다시 오겠다며(예방접종을 위해) 병원을 나섰다. 






 고양이는 영역 변화에 무척 민감한 동물이다. 특히 뽀는 최근에 급격한 공간 변화를 여러 번 겪었고, 두 번의 수술 및 치료를 하며 입원실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조심히 집에 내려놓고 케이지를 열어줘도 나오려 하지 않았다. 조금만 다가가도 부들부들 떨었기 때문에 억지로 꺼내려는 시도 없이, 철창 안쪽에 몸을 바싹 붙인 녀석 앞에서 최대한 평소처럼 행동했다. 잠들 때까지도 녀석은 얼음처럼 굳은 채 같은 자세로 있었다.


  다음날 아침, 거실에 나와보니 케이지가 텅 비어있었다. 어디로 갔지? 설치해 둔 홈캠에 찍힌 녀석을 보니 새벽 1시 20분쯤 매우 조심스럽게 걸어 나와 거실 구석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고양이 전용 화장실에서  벤토나이트 모래를 한참 파고 배설물을 꼼꼼히 감추는 장면도. 궁금한 게 많았는지 선반에 뛰어오르다 떨어지기도 하고,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위까지 걸으며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들이 어찌나 기특한지. 그 영상을 본 후 싱크대 위의 물건은 모두 치워야 했지만.


 그날 퇴근하고 오니 녀석은 구석에 있던 보냉 쇼핑백안에 죽은 듯이 숨어있었다. 저러다 제대로 숨도 못 쉬는 게 아닌가 걱정한 남편이 쇼핑백째 끌어내니 “하악!" 위협하는 소리를 내며 나와 다시 구석으로 뛰어가 숨는다.


"아이고 모르겠다. 그럼 거기 계속 있어~"


 길냥이를 집에 데려왔다면 당분간 신경 쓰지 말고, 신경 쓰이게도 하지 말고 가만히 두라는 글을 많이 보았기에 일상적인 일들을 하기로 했다. 조금 일찍 집에 온 날이라 옷을 갈아입고 저녁을 먹은 후, 평소처럼 거실 테이블에 노트북을 펼 때까지 고양이는 계속 같은 자리에 있었다. 집중도를 높여 한창 키보드를 투닥거리는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졸졸졸졸... 마치 샘물이 흐르는 듯한 이 소리는...

설마...?


 뽀가 앉은자리에서 다량의 맑은 오줌을 싸고 있었다. 어쩔 줄 몰라 당혹스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무서워서 마련해 둔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참다못해 그 자리에 해결해 버린 것이다. 너무 미안했다. 오자마자 이런 수모를 겪게 하려던 건 아닌데!

 일단 자리에서 비켜줘야 치울 텐데 녀석은 구석의 작은 오븐 뒤로 고개를 처박고 나오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남편이 담요를 여러 겹 말아 억지로 끌어내니 살짝 열린 욕실문 틈으로 쏜살같이 도망친다. 일단 그 자리를 정리한 다음 욕실에 숨은 녀석을 다시 나오게 하느라 진땀을 뺐다.


욕실에 숨어버린 뽀. 숨어있던 공간을 넓혀 나오게 했다

 

 구석에서 나오기 두려워 화장실까지 참을 줄 알았으면 진작 자리를 피해줄 걸. 거실 테이블에 있던 노트북과 공부거리들을 모두 싸들고 침실로 갔다.


 "나 쫓겨났네."


 잠자고 옷만 갈아입는 작은 침실에서 남편과 뒹굴거리며 집사들만의 토크를 나눴다. 이제 뽀 대신 우리가 숨어 지내야 한다고. 뽀가 주인이고 우린 그냥 얹혀사는 거라고.


 그 후로 화장실을 치우거나 밥을 줄 때를 제외하고 우리는 정말 숨어 지내듯 했다. 방문을 꼭꼭 닫고 볼일을 보거나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주인이 안심하고 밥을 먹거나 화장실에 가니까. 그렇게까지 해도 경계를 풀기는커녕, 거실에 있던 코타츠 테이블 아래 완전히 자리를 잡고 나오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가끔 나와서 활동하는 모습은 낮에 촬영된 홈캠 영상으로만 겨우 볼 수 있을 뿐. 따뜻하고, 어둡고, 널찍한 코타츠 아래는 녀석이 몸을 숨기고 활동하기에 너무나 완벽했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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