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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Mar 03. 2023

코타츠 바깥으로 나온 고양이

길고양이에서 가족이 되는 시간


 뽀는 코타츠를 아지트 삼아 밖으로 전혀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출근하면, 밥을 먹거나 화장실을 가고 거실을 정찰하다가 우리가 오는 소리에 바로 코타츠로 돌아갔다. 운이 좋은 날은 잠결에 코타츠 밖으로 삐져나온 다리와 꼬리 정도를 볼 수 있었지만 그뿐. 캠으로 관찰하며 아직 모든 게 두려워서 그러겠지 생각해 봐도 일주일이 넘게 실물을 보지 못하니 슬슬 서운하기도 했다.


무심결에 나온 듯한 꼬리와 발을 본 것만으로도 반가웠던 날.

 

 한 번은 놀라운 일이 있었다. 쉬는 날 오후 코타츠 모서리에 뽀의 등이 둥그렇게 말려있는 것이 드러나보여 장난감 털로 살살 쓰다듬었는데 의외로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코타츠에 덮인 이마와 귀, 목덜미와 등을  조금씩 쓸어주다가 손가락으로 바꿔 쓰다듬었는데 예민한 반응이 없기에 척추와 얼굴(로 추정되는 곳)도 조물조물 마사지해 주었다. 부드러운 코타츠의 촉감 덕분인지, 녀석의 몸이 점점 손 쪽으로 와서 속으로 많이 놀랐다.


'갑자기 이렇게 빨리 만질 수 있게 된다고?'


쓰다듬기 두 번째 도전 영상.


 손 쪽으로 조금씩 다가온 줄무늬 등이 급기야 코타츠 밖으로 밀려 나왔다. 장난감 털로 등을 쓰다듬다가 슬쩍 손가락으로 바꾸니 놀라서 후다닥 자세를 바꾼다. 그러고 나서 더 쓰다듬으려 하니 속셈을 눈치챘다는 듯 손가락을 가볍게 앙, 하고 물기에 그만두었다. 그 후로 몇 번 더 코타츠 위로 쓰다듬기를 시도했지만 처음처럼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다.


 집에 온 지 8일째 되던 날 우리는 모종의 결심을 했다. 혹시 코타츠 안에 실수는 하지 않았는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 답답함이 한껏 쌓였기 때문이다. 스스로 나오기를 기다릴 수도 있겠지만 이대로라면 예방 접종을 맞히러 가는 데도 몇 달은 걸릴 분위기다. 고양이들의 놀이터인 캣타워를 설치했음에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녀석이라니... 지친 남편과 나는 굳은 결심으로 코타츠 양쪽에 섰다.

좋아하는 공간을 뺏고 싶진 않지만 너는 더 이상 길고양이가 아니라 가족이야.


"내가 이쪽을 걷어올릴 테니까 오빠는 그쪽을 걷어올려. 같이 올리자. 하나 둘, 셋!"


 코타츠의 양쪽 이불자락이 걷히자 당황한 듯 그 자리에 우두커니 앉은 뽀.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도망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움직인다. 에라 모르겠다~! 나머지 두 모서리도 걷어올렸다. 녀석은 더욱 웅크렸고 우리는 녀석과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살금살금 자리를 비켰다. 무슨 일 있어? 우리는 모르는 일이야.

 녀석은 그 자리에서 한참 고민하다가 거실 구석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만족스럽지 않은 듯 눈치를 보며 이곳저곳에 몸을 감춰보더니 캣타워 아래 숨숨집으로 들어간다. 숨숨집에는 두 개의 구멍이 뚫려 있어서 잠시 얼굴 정도는 볼 수 있으니 나쁘지 않다.


 코타츠만큼은 아니겠지만 아늑하라고 방석을 하나 사다 넣어주었더니, 깔고 앉아야 할 방석 아래 기어들어가 몸을 가리는 신기술이라니. 그러고 나서 약 하루 동안은 화가 난 건지 놀란 건지, 낮에도 전혀 놀지 않고 그 안에서 울기만 했다. 종일 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은 어찌나 복잡해지는지.


그 다음 날은 출근길에 침실 문을 열고 나가면서 옷장을 닫지 않았는데, 침구 사이로 파고든 녀석이 나오려고 하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침구를 다 빼서 나오게 해야 했다.


옷장 안, 자세히 보면 가운데 고양이 꼬리가 보인다.

 

 첫날부터 조금씩 적응하며 잦아든다 싶던 울음소리가 다시 심해지기 시작한 건 그날부터였을까? 숨어있는걸 자꾸 꺼내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프로꿀잠러인 나도 매일 밤 여러 번 잠을 깰 수밖에 없도록 크게 울었는데, 아파트 아닌 단독주택인 것이 다행이었다. 덕분에 2주 넘게 잠을 설친 남편과 나는 면역력 저하로 비염과 감기가 들락날락했다.

 




뽀의 울음소리. 너~ 다 녹음했어~

 

 걷다가도 울고, 먹다가도 울고. 때로는 호루라기처럼, 때로는 개가 짖듯이 우는 뽀를 달래기 위해 매일밤 직접 먹이 퍼즐도 만들고 장난감도 많이 샀다. 뿐인가? 뽀의 숨숨집 앞 거실 바닥에서 한 명씩 돌아가며 잠을 자기도 했다. 자고 있으면 고양이가 경계심을 풀고 나오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였는데 큰 효과는 없었고, 우리는 더 피곤해졌다. 집이라는 공간이 낯설다면 함께 놀아주고 싶은데 숨어서 나오지 않으면 방법이 있을 리가.


 고양이를 안정시키는 다양한 음악을 찾아 틀어놓기도 하고, 간식과 밥을 집안 곳곳에 최대한 분산시켜 놓음으로써 공간에 대한 인식을 좋게 하려고 애썼다. 고양이 그릇 설거지가 넘쳐나는 단점이 있었지만 나름대로 효과가 있는지, 울음소리가 조금 잦아들 때도 있었다. 퇴근하면 고양이들이 골골거리는 소리를 재생시킨 다음 기다란 스푼에 츄르를 짜서 주며 교감을 시도했는데 경계심이 강한 녀석은 전혀 먹지 않고 하악대기만 했다. 다음은 장난감 놀이 시간이었는데, 뽀는 놀이에 무관심했다. 경계심과 두려움이 그보다 훨씬 큰 것 같았다.


숨숨집 안에서 놀이에는 관심없다는 표정의 뽀. 그러지 마 인간도 상처받는다 너...


 3주 차에 접어들자, 숨숨집에서 침만 꼴깍꼴깍 소리내어 삼키던 녀석이 한참만에 방석 밑에서 나와 츄르를 먹고 들어간다. 눈앞에서 찹찹찹 놀리는 그 혓바닥이 얼마나 예쁘고, 소리는 어찌나 경쾌하게 들리는지!



  하지만 잦아든다 싶던 울음은 다시 시작되었다. 우다다 뛰어다니며 놀다가도 울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다가 목놓아 우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병원에서 퇴원할 때 건강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으니, 혼자라서 외로운 게 아닐까 추측할 뿐.


 만약 내가 고양이인데 어느 날 크게 다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커다란 인간들에게 잡혀 입원한 채 한참을 시달리다(물론 치료받은 거지만 생각하기 나름이니) 낯선 곳에 왔다면? 주위에는 처음 보는 기이한 사물들 뿐인데 탈출할 수 없고, 고양이라고는 오직 나뿐이라면...? 이렇게 바꾸어 생각하니 이 조그맣고 어린 녀석이 울지 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기껏해야 태어난 지 7-8개월인 아기인데.

 

 인간 둘에 고양이 하나, 그래 이것만으로도 너무 불공평하잖아.

 우리가 집에 없어도 녀석과 놀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 하나는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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