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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Jun 01. 2023

지금 우리를 덜 사랑해도 괜찮아

새로운 방식의 사랑을 배우는 중


 함께 지내게 된 뽀와 너스의 관계는 상상을 가볍게 무시하는 속도.. 아니, 속도조차 없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너희들 알던 사이기라도 한 거야?'

 녀석들은 남매라기보다는 연인인가 싶을 정도로 서로 좋아했다. 마주칠 때마다 다정다감하게 뽀뽀하고 지나가기, 틈날 때마다 여기저기를 핥아주기, 밤에는 모든 장난감 및 가구의 배치를 바꾸며 우다다 하기…그런 모습을 보는 게 신기하고 흐뭇했지만 집사들과는 점점 멀어지는 건가 싶어 기분이 착잡할 때도 있었다.


 "얘들아 청소할 거야 청소~(속뜻: 놀라지 마~)"


 퇴근 후 집에 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냥이들 화장실 2개를 치우고 바닥 청소기 돌리기. 다음은 생선과 닭고기 부스러기들이 말라붙은 식기를 씻고, 이곳저곳 붙어있는 털을 실리콘 빗자루로 제거하는 일이다. 푹푹 패인 조그만 발자국들이 선명한 집사들 이불엔 돌돌이 후 편백수를 뿌리고, 간식을 주거나 사냥놀이까지 하면 30-40분이 소요된다. 놀이가 식사보다 중요한 너스는 무슨 장난감을 흔들건 고요하던 눈빛이 돌연 초롱초롱해진다.


 반면 뽀는 언젠가부터 노는 데 흥미가 시들해졌다. 아무래도 너스와 노는 쪽이 훨씬 재미있어서? 심지어 너스가 집사와 놀면 심기 불편한 소리를 내며 데려간다. ‘인간 따위와 놀다니! 나랑 놀아'라고 말하기라도 하듯이. 너스가 오기 전에는 숨숨집 밖에 조금씩 나오곤 했는데 이젠 집사들의 발소리가 들리면 무조건 숨고 보는 편리함을 택한다.


 구조묘와 유기묘인 녀석들의 사람에 대한 경계심은 감히 헤아리기 어려운 수준이다. 겁냥이 둘을 케어해보겠다고 한 번씩 담요로 붙잡아 본 결과는 비극적이었다. 두 녀석 모두 잡히지 않으려고 필사적이어서 흥분한 채 문과 창틀, 천장에까지 매달리는데 공포에 압도당한 눈을 보니 더는 붙잡을 수가 없었다. 직접 담요로 잡는 역할을 한 남편은 약간의 눈물까지 보였다. 그 후로는 녀석들을 병원에 데려갈 생각도, 손톱을 깎이거나 이를 닦이는 것도, 장모종에겐 필수인 빗질도 일단 내려놓고 있다.

 

 노르웨이숲이라는 품종의 믹스로 태어나 길고 멋진 털을 가진 너스를 브러싱 할 수 없는 건 너무 답답하다. 빗지 않는 것만으로도 뭉치지만, 끈적한 액체라도 묻었는지 유독 단단히 엉킨 부분을 발견했을 땐 빗기고 싶은 손을 꾹 눌러야 했다. 뽀를 병원에 데려가지 못하는 것도 걱정스럽다. 까칠한 고양이 셋을 반려 중인 너스의 구조자분은 너스의 3차 예방접종을 모두 해서 보내주셨지만, 초보집사인 우리는 뽀에게 접종을 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집 앞에서 다친 아이를 구조했고 입원해서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이렇게 집사들과 거리 두기를 오래 할 줄 알았더라면 퇴원하기 전에 접종도 마쳤을 텐데.


 한 번씩 잡힌 기억이 있는 둘은 집사들에 대항해 서로 연대(?)하는 모양새다. 뽀가 집에 온 지 4개월이 다 되어가고, 너스가 온 지는 3개월을 바라보는데 한 번이라도 쓰다듬기는커녕 노려봄, 하악질, 침 뱉기, 냥펀치까지 골고루 당하는 날들이었다. 뭐라도 제대로 해보고 그런 반응이라면 조금 덜 억울할 텐데…


 아끼는 마음을 몰라주니 서운하고 화날 때도 있지만, 아직도 우릴 보고 부들부들 떠는 털뭉치들을 보며 그들의 트라우마, 길에서의 생활을 한 번 더 생각한다. 어느 날 포획되어 무서운 곳에서 수술과 치료를 당한 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으면 그러겠어. 얼마나 두려웠으면 저러겠어. 길에서는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허락 없이 데려와 미안하지만 그러지 않기엔 생명이 위험한 상황이었다는 걸 언젠가는 이해해 줄지 모르겠다. 너희들 눈엔 별로 귀엽지 않을 납치범들을 무작정 사랑해 달라고 바랄 순 없지만, 우리가 너희를 계속 사랑하는 것만은 허락해 주기를…!


  




 혼자 지내던 날들을 회상할 때가 있다. 그때 생각한 결혼 제도의 가장 큰 매력은 연애의 복잡한 머리싸움과 계산, 밀당 없이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마음껏 사랑해도 된다는 점이었다(함부로 해도 된다는 게 아닌,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에서다). 누군가를 매일 껴안고 포근하게 잠드는 일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다. 행복만큼 고통도 많은 인생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꼭 끌어안고(혹은 안겨서) 잠들 수 있다면 힘들어도 그런 줄 모르고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아서.


  7년차 결혼 생활에 남편과 나는 서로 많이 익숙해졌다. 남편은 사계절 더위를 타고, 나는 갑갑해서 잘 때 꼭 껴안고 자는 일이 생각보다 적다는 것도 알게 됐다. 다툴 땐 소행성이 충돌하는 듯했던 신혼 초기를 지나 이제는 의견이 달라도 적당히 조율하고 조용히 지나간다. 시소에 앉혀보면 비슷해져가는 몸무게만큼(?) 애정의 무게도 그럴 것 같은 이 평안하고 친밀한 느낌. 그러다 갑자기 고양이들을 기르면서 드는 생각은, 이제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혹은 덜 사랑하는 게 분명한) 존재까지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차례구나 하는 거였다.

 

 간식 부스러기만큼의 손길도 허용하는 법 없는 까칠한 아이들은 의외로 우리에게 처음 겪는 종류의 행복을 안겼다. 외모부터 귀여운 건 어쩔 수 없지만 좋아하는 트릿 한 알 때문에 집사 옆에 갈까 말까 심각히 고뇌하는 모습, 그러면서 자는 척하거나 딴청부리기는 또 어떤가. 예측 불가한 엉뚱한 행동과 감출 수 없는 허당미, 피곤하고 지친 날엔 파핫! 하고 웃게 만드는 능청스럽고 이해 불가한 자세도. 몸을 바짝 낮춰 우릴 노려볼 땐 '요 배은망덕이들!' 싶을 때도 있지만 우리와 다른 행동 방식이 신기하고 멍해져서 긴장이 풀릴 때도 많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각자 할 일 하느라 조용했던 집에 말랑한 온기와 들리지 않는 대화가 흐른다.


 얼마 전 파상풍 예방 접종을 받았다. 항체가 생기면 녀석들에게 좀 더 겁없이 다가갈 수 있을까?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경우 붙잡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때까지는 그들이 원하는 거리를 존중하고,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인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요즘은 간식을 줄 때마다 부드러운 털이 달린 막대로 이마나 턱 주변을 쓰다듬는 것부터 연습중이다. 잠시 가만히 있어주는 기적같은 몇 초도 있긴 하지만, 아직은 고개를 푹 숙이거나 도망가기 일쑤. 그러면 나는 더 촉감 좋은 털이 달린 막대를 찾는다. 아마도 그들이 만족할때까지...


 고양이를 만지자는 목적만 생각하자면 처음 입양할 때부터 철창에 넣고 순화(?)하는 유튜브 영상들이 널려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우리에게 와준 고마운 아이들에게 그러긴 싫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짧지만 생생한 꿈처럼 스쳐가는 매일은 어쩌면 쭉 이어지는 하루일테지만, 누군가 매일로 나누고 시와 분과 초로 나누었다. 그 결과 인간은 모두 시간에 쫓기며 산다. 인간이라는 종이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생산적으로 살도록 권해지는 방식들이 우주적 차원의 해답일 수는 없다. 인간이 고양이를,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가장 다정하게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그들만의 속도와 의지로 찾아보는 것도 의미있지 않을까? 결국은 나도 인간이지만 모든 인간의 깊은 곳에는 신성(神性)이 자리한다고 믿는다.


 퇴근하고 우리 사랑둥이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몸이 간질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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