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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Apr 08. 2023

뽀너스 남매의 탄생

고양이 합사와 인생에 정해진 답은 없다


 둘째로 입양하기로 한 샛별이는 구조 후 3차에 걸친 예방접종과 중성화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수술 이후 깔때기처럼 생긴 넥칼라가 많이 갑갑했던지, 털을 스스로 뜯어서 목 주위가 휑하다고 했다. 구조하신 임보자(임시보호자)께서는 혹시 모른다며 병원에 피부병 검사도 의뢰했다고 하셨고 그로 인해 1주 정도 기다림의 시간이 생겼다.


임보자님이 보내주신 사진. 목이 휑~하지만 금방 또 자랄거야!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일주일씩 기다린 적이 언제였는지. 앞으로 더 필요할 모래(화장실용)와 먹거리, 숨숨집 겸 놀이터널, 식기, 방묘문 등을 준비하며 새로운 가족을 기다리는 기분은 묘했다. 피가 섞이지 않은 가족이 갑자기 집에 둘이나 생기다니. 앞으로 모두 잘 지낼 수 있겠지? 얼마나 많은 에피소드가 생길까?


 샛별이 우리 집에 온 건 일요일 밤이었는데 임보자 분께서 적응을 위해 사료와 간식, 캔, 장난감 등을 대부분 새것으로 꼼꼼히 챙겨 가져오셨다. 인연을 맺어준 네이버카페 양식으로 쓴 입양계약서와 함께. 예쁘고 안전하게 보내고 싶어 하시는 정성에서 구조할 때의 마음까지 엿보이는 것만 같다. 한동안 샛별이의 적응 공간이 될 침실에 이동장을 내려놓자, 샛별이는 침대와 벽을 띄워놓은 작은 틈으로 들어가 숨었다.


숨어있는 샛별이, 긴장한 모습;


"안녕? 샛별아. 만나서 반가워."


 처음 만난 샛별이가 놀랄까 봐 천천히 다가가 얼굴을 보여주며 가벼운 인사만 건넸다. 무슨 사정에서인지 길에 버려졌다가 우연히 구조되어 보살핌을 받고, 다시 한번 낯선 곳에 오게 된 이 존재의 기분은 지금 어떨까. 어쩌면 두 번 버림받았다고 여겨 다시는 사람을 믿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 조심스러웠다.


 다음날부터 이틀간은 휴무일이었다. 영역동물인 고양이에게 합사는 매우 민감한 문제여서, 구조해서 반려 중인 뽀와 서로 볼 수 있되 접촉할 수는 없도록 방묘문을 설치하고 위의 빈 공간도 유사한 굵기의 커튼봉으로 꼼꼼히 막았다. 개와 달리 고양이는 점프와 나무 타기 실력이 뛰어나 방묘문 위에 남는 공간이 있으면 손쉽게 넘기도 하기 때문이다.

설치한 방묘문.

 고양이에 따라서는 합사가 아예 불가능한 경우도 있고, 몇 달은 물론 몇 년째 사이가 좋지 않은 채 지내는 경우도 많다고 해서 관련 책과 후기들을 많이 찾아보고 상황에 따른 대처 연습과 각오를 단단히 했다. 집사들과 친해지는 건 고양이끼리 긍정적인 첫인상을 갖고 친해진 다음의 문제니까.


 이틀간은 방묘문과 방문을 모두 닫은 채 집에 온 샛별이를 안정시켰다. 사흘째 되던 날은 두 고양이가 서로를 살짝 볼 수 있도록, 방묘문과 방문 사이에 약간의 틈을 벌려두고 출근을 했다. 만나보고 썩 좋지 않으면 서로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료도 먹고, 화장실도 갈 수 있게 조금만 연 것이었다. 그래도 으르렁거리거나 하악거리면 어떡하지 싶었는데 웬걸!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집사들이 출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궁금했던 두 녀석이 방묘문을 사이에 두고 다정하게 인사하는 장면이 홈캠에 포착된 것이다.


첫 인사의 놀라운 순간.

 

 특히 놀란 건 예민하고 공격적인 반응을 예상했던 뽀가 샛별이에게 무척 호의적이고 적극적이라는 점이었다. 집에 대한 적응도 이제 시작 단계인데다 여느 때처럼 종일 우는 뽀의 울음소리가 낯설고 시끄러울 샛별이는 방묘문 뒤편으로 종종 물러나곤 했다. 그러면 뽀는 종일 방묘문 앞을 기웃거리거나 샛별이가 숨은 쪽을 주시하며 샛별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역시 친구가 필요했던 걸까?

 그날 이후로는 두 냥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과 숨숨집을 바꿔주어 서로의 냄새를 간접적으로 맡게 해 주었다.


방 안의 샛별이가 궁금한 뽀. 그동안 너무 울어서 쉰 목소리.


 다음 날, 다다음 날도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다. 방묘문을 사이에 둔 둘은 평화로워 보였지만 혹시 모를 돌발 상황(싸움 등)을 예방하고 싶어 거실에 고양이 페로몬 훈증기를 설치했다. 고양이들의 얼굴에서 분비되는 친밀감 페로몬을 퍼뜨려준다는, 수의사들도 추천하는 아이템이다. 처음엔 굳이 그런 것까지 필요할까 싶었는데 막상 상황이 닥치니 모든 일이 순조롭기만 바랄 뿐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샛별이 온 지 일주일째 되던 날, 이제는 둘을 직접 만나게 해 줄 차례였다. 사람이 있으면 숨숨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녀석들이라, 방묘문을 활짝 열어둔 채 집사들은 TV방에 숨기로 했다.

 

 몇 시간 동안은 고양이들이 숨은 위치 그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상태로 쭉 가는 건가 싶어 자세를 편히 고쳐 앉아 넷플릭스를 보는데, 갑자기 홈캠에서 움직임이 감지된다. 확인해 보니 이거 진짜인가 싶은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마치 본래부터 알고 지내기라도 한 듯 다정하고 신나게 노니는 두 고양이. 길거리 생활을 했고 겁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외모와 성향이 판이한 두 아이는, 집사들 없는(숨은) 방에서 새벽까지 서로를 탐색하고 반가워하며 자유롭게 놀고 있었다.


너네 혹시 아는 사이니?
남매가 되어가는 중….%

 

 그때까지 들었던 고양이 합사에 대한 온갖 불안과 걱정의 말들은 다 무엇이었을까? 좋아하는 두 녀석의 모습에 행복감이 머리끝까지 차오르던 그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시울이 촉촉해진다. 샛별이에게는 예전 이름(샛별=Venus)의 흔적을 남기면서도 뽀와 함께 부를 때 미소 지을 수 있는, ‘너스(Nus)‘라는 이름을 다시 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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