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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Nov 28. 2023

그 수술 말고 다른 방법은 없나요

고통을 느끼는 모든 존재는 평등하다.


 길에서 구조한 뽀가 집에 온 지 9개월, 너스는 8개월이 넘었다. 녀석들은 여전히 집사들의 손길을 경계하며 도망 다니지만 가까이에서 간식을 주는 정도는 조금 참아주는 중. 처음 만났을 땐 마주치면 시야 밖으로 멀리 달아나 먹는 모습을 보기도 힘들었으니 발전하긴 한 셈이다.


  소위 말하는 '중성화' 수술은 뽀(여아)가 집에 올 때부터 줄곧 고민 중인 화두다. 너스(남아)는 올 때부터 이미 수술이 되어 있었다. 시골 단독주택에 창호가 두꺼워 울음소리에 민원이 들어오는 환경은 아니지만, 집사들의 수면과 뽀의 스트레스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 함께 지내기 전에는 '고양이가 스트레스를 받는지 안 받는지 어떻게 알아?'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지내보니 증거가 있었다. 발정기의 뽀는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평소와 다른 설사를 연거푸 했다. 확인 가능한 두 증거 외에 확인 불가능한 스트레스들도 있겠지만.


 사실 중성화라는 표현은 해당 수술의 본질을 적확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것 같다. 죽은 소, 돼지, 닭의 살점을 '고기'라고 부르는 것만큼 이상하다. 난소와 자궁 혹은 음낭을 제거하면 중성이라고? 자궁적출술을 받은 사람에게 "당신은 중성이군요." 라고 말하면 듣는 이는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하다.


 신체 장기, 그것도 생식기관을 적출하는 시술은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사건이며 일반적으로 권장되지 않는다. 반려묘에게는 거의 당연시하는 사회 분위기에 상당한 거부감이 든다. 말 못 하는 고양이의 동의 없이 그런 일을 행한다는 건 말 못 하는 사람을 강제로 거세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타고난 신체 일부가 고통을 수반하면서 영구적으로 사라지는데 책임진다는 말로 다 괜찮아질까. 인간이 맘대로 구조하고 치료하는 것부터 야생 고양이에게는 납치에 가까운 불쾌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한겨울에 다쳐서 죽게 생긴 길고양이를 차마 방치하지 못해 데려왔다면, 그게 온전한 잘못이지만은 않도록 힘닿는 대로 사랑하고 아껴주어야 하지 않을까.




 처음부터 수술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이지는 않았다.

 성별이 다른 페르시안(여아)과 샴(남아)을 가정분양받아 키운 적이 있다. 그때는 중성화가 유일한 공생의 길이라 믿고 샴 아이를 처음부터 병원에 데려갔다. 배를 가르는 반대쪽 성별의 수술보다는 땅콩을 제거하는 쪽이 아주 조금은 더 나아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미안해서 많이 울었다. 그런데 수술 후 아이의 성격이 180도 변했다.


 사랑스럽고 온순했던 아이는 수술 당일 내 손등을 깊게 물고 고통에 날뛰었다. 이후로도 성격이 점점 괴팍해졌다. 무서운 기세에 눌린 다른 고양이는 배변 실수를 자주 하기 시작했다. 수술(당)한 아이가 화장실을 쓰지 못하게 하거나 비슷한 종류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땐 몰랐지만 고양이들의 습성상 1 묘당 1 화장실은 필요한 거였다.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는 자책감이 들어서 결국 두 아이를 함께 다른 분께 보내고 말았다.


 그 무렵 아버지가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갑작스러웠던 아버지의 죽음은 그 후로도 자주 떠올린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곰곰히 돌이켜볼수록 속상한 건 다시는 그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정말 용서하기 어려운 건 가족의 병에 대해 최대한 자세히 알아보지 않은 나 자신이었다. 병에 대한 모든 판단을 그저 의사에게 맡겼고 말 잘 들으며 기도하면 좋아질 거라는 착각을 했다. 그러나 간암 환자가 넘어지면 뇌출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주의사항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뇌출혈이 간성혼수(간성뇌증)를 유발한다는 것 또한 가족 중 누구도 몰랐다. 어느 날 집에서 넘어진 아버지는 그다음 날 병원에서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사랑하는 가족이 많이 아플 때, 우리는 병에 대해 의사보다 철저하게 알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판단과 책임은 다른 사람도, 의사도 아닌 우리에게 있다.




 이제는 만성화된 뽀의 발정을 보며 성격이 바뀐 샴 아이와 아버지의 마지막을 번갈아 떠올린다. 집고양이의 발정은 야생고양이와 달리 사계절 내내 지속된다. 격주에서 거의 매주로 바뀌어가는 추이를 보며 짬짬이 알아보고 있지만, 아직 수술에 대한 대안을 찾지 못했다. 얼마 전 한 번 시술로 고양이의 평생 불임을 유도하는 유전자 주사가 개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웠는데 임상 실험에 5년이 걸린다는 기사에 그만 아득해졌다. 5년이나 기다리라고?


 일찌감치 포기하고 수술하라고 조언할 수의사들과 집사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수술 후 모든 상황이 좋아졌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내가 겪었듯이 반대의 경우도 많다. 집사들의 숙면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뽀가 타고난 장기를 잃어야 할 필연성 또한 없다. 저명한 공리주의 철학자 피터 싱어는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종차별주의'의 ‘종’을 ‘인종’으로 바꿔보라고 말한다. 평생의 가족으로 초대한 고양이의 발정 문제에 대해 어려움을 떠안아야 한다면, 그건 뽀가 아니라 맘대로 뽀를 구조하고 데려온 우리여야 하지 않을까.


 1년 동안은 뽀의 발정 주기와 스트레스 정도를 지켜본다는 계획이었는데 앞으로 2개월여밖에 남지 않았다. 글을 쓰면 참신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가늠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덜어주기 위해 조금 더 놀아주고, 간식을 늘리고, 새로운 먹이퍼즐을 만들고, 공간 구성을 자주 바꿔주는 정도밖에. 터치가 불가능하니 특정 부위에 자극을 주는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시킬 수도 없다. 커다란 인간에게 억지로 잡히는 건 고양이에게는 폭력이기에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삼가야 한다. 스스로 걸어와 기댈 때까지는 완전히 신뢰받는다고 하기 어려우니까.


 고양이라는 존재와 그들의 생태에 대해 꾸준히 알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 글을 보신 분들 중 수술하지 않은 상태의 집고양이와 행복하게 동거 중이거나, 비수술적인 대안을 아는 분이 계신다면 부디 귀띔해 주시면 좋겠다. 작은 경험도 누군가, 특히 귀여운 뽀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빛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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