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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엘 Sep 15. 2023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하라

비트겐슈타인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떤 책(아마도 위인들의 삶을 간략하게 정리한)을 본 뒤,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철학자에 폭 빠졌다. 


20세기 3대 천재, 가장 독창적 철학자, 천재 스승(러셀)을 곤란하게 만든 찐천재 등 어마어마한 수식어가 붙지만, 철학은 모르겠고, 나는 그냥 그의 삶 자체가 부러웠다. 


재벌급 가족 유산을 깨끗이 포기하는 똘기. 북유럽 바닷가 절벽 위에 통나무 집을 짓고(내 기억이 맞다면) 홀로 살아가는 저세상급 괴팍함. 


나도 저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싶었다. 어쩌면 비트겐슈타인으로 인해 내 독신주의는 더 강화되었었는지도 모르겠다. 


대학에 들어간 뒤 떨리는 심정으로 비트겐슈타인 철학서를 손에 들었다. ‘논리 철학 논고’. 200페이지도 안 되는 얄팍한 철학서다. 세계대전에 참전한 비트겐슈타인이, 전투가 잠시 소강상태를 벌일 때 틈틈이 쓴 책이다. 


그런데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안 된다. 읽다가 읽다가, 결국엔 흐지부지 손절했다. 책 마지막 문장, 딱 한 문장만 머리에 남았다.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우리는 침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내와 ‘나는 솔로’를 보면서, 광수와 영숙과 그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벼락같이 이 문장이 떠올랐다. 물론 비트겐슈타인은 그런 의미로 쓰지 않았지만 뭐 어때, 내 맘이지. 그런 게 진짜 철학이다. 


입에서 쉽게 나오는 말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 


어차피 어려운 말은 여러 번 생각하고 조심하게 되어 있다. 입에서 줄줄줄 새어나오는 말이 이웃을 찌르고 타인을 찌르고 결국엔 나까지 찌른다. 


그러니,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하자’.


(책 추천 아님. 이 책 읽으면 힘들어집니다.)  인스타그램 joy.joy.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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