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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엘 Mar 20. 2024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책

새로운 고전

학부 때 내 모든 학문 역량과 관심은 서양을 향했다.


‘하나만 아는 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자’라는 말에 격하게 공감한 후, 중국과 인도에도 관심을 조금 배분했다.


그래서 수강한 ‘논어’ 수업.


철학과 수업을 듣고 싶었지만 시간이 꼬여 중어중문학과 수업에 들어갔다.


낭패였다. 내가 원한 건 사상이었는데, 언어학에 방점이 찍힌 수업이었다.


시험도 참 심플하다. 중간고사는 논어 상편 다 외우기, 기말고사는 논어 하편 다 외우기.


원래 외우는 게 약하기도 하지만, 논어 외우다가 토할 뻔 했다.


대학입시를 그렇게 준비했으면 수석할 뻔 했다.


그러고도 B를 받았으니, 젠장.


그때 시험지가 어쩌다 책갈피처럼 살아남아 이렇게 소개한다.



논어는 두말할 나위 없는 고전이다. 그런데, 고전은 다 좋은가?


고전에도 오류가 많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은 명성과 달리 알맹이가 거의 없다. 플라톤의 ‘국가’와 공자의 ‘논어’ 역시 비슷하다.


굳이 요즘 세상에 이런 책을.


그럼에도 이 책들이 고전인 이유는, 오류마저도 전문가들에 의해 ‘지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의 흐름에 떠내려가지 않고 오랜 세월을 견뎠다.


전문가와 ‘함께’, 분명한 지향점을 가지고 읽는다면 괜찮다.


나도 아주 예전엔 아이들에게 이런 책을 읽혔다.


요즘은?


안 읽힌다. 왜 그럴까?


대략 2000년 이후 미국과 일본에서 ‘지적 괴물’들이 많이 등장해 엄청난 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다시는 이전 시각과 생각과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혁명 같은, 참신한 책을 말이다.


참고로 참신(斬新)할 때 참은 칼로 자른다는 뜻이다.


여튼, 그런 책들만 읽고, 읽히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책이 많다. 감탄을 넘어 전율까지 주는 책도 많다. 상식을 산산히 깨버리고 지적 충격을 주는 책도 많다.


정말 많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10년쯤을 주기로 논어에 열광하고, 니체와 쇼펜하우어를 단편으로만 소비하는 것은, 참신하고 좋은 책을 일반인들에게 소개하지 못하고 있는 지식인들의 지적 게으름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지난 주, 최고의 책을 만났다. ‘긍정의 배신’ 이후 오랜만에 느끼는 지적 충격이다.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마이클 셸런버거,노정태역,부키).



환경 이슈에 갖고 있던 내 생각이 완전히 업그레이되었다. 그동안의 지적 게으름에 부끄럽기도 했다. 


환경 문제에 관심있는 사람은 읽어보면 좋고, 활동가들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 다만, 논란이 있는 부분도 있으니 '기후변화의 심리학'과 같이 읽으면 좋겠다. 


MIT 교수가 쓴 추천문을 소개한다.


‘기후 변화 완화에 가장 큰 장애물이 우파의 속임수에서 좌파의 잘못된 정보로 대체되고 있음을 입증해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이다.


'환경 운동의 역사에는 반복되는 수수께끼가 있다. 환경 운동가들은 왜 인간뿐 아니라 환경에도 해로운 정책을 계속 추진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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