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학습 똑똑한 사용업 (7-1)
목동에서 초등학생에게 독서와 논술을 가르치는 선생님 몇 분이 팀을 짜서 인문학 강의(講義)를 요청한다. 그중 한 분이 지나 엄마였다.
매주 한 번씩, 두 달 넘게 강의했을 무렵, 나를 크게 신뢰(信賴)하게 된 지나 엄마가 딸 아이 독서수업을 부탁한다.
“초등학생은 말이 안 통해서 안 합니다.”
노키즈존 느낌이라 미안하지만 진짜다. 진리(眞理)를 깨달은 자는 아이는 물론 동식물과도 소통할 수 있지만 내 한계는 중학생이다.
“아무 것도 안 해주셔도 좋으니, 그냥 선생님 책 읽으실 때 옆에서 같이 책 읽게만 해주세요.”
뒷말은 이랬던 것 같다. 선생님 기(氣) 좀 받게요.
이 엄마, 보통이 아니다. 더 이상 거절하면 안 될 것 같다. 그렇게 초등학교 5학년 지나와 지원, 6학년 승희가 매주 한 번씩 내게로 왔다.
수업은 대체로 난장판이었는데 이 아이들, 은근히 재밌다. 나를 투명인간이라 생각했는지 친구들 뒷담화부터 선생님들 품평(品評)까지 못하는 말이 없다. 그래도 마지막은 희한하게 자아 비판, 집단 성찰로 수렴한다.
“우리 너무 나간 거 아냐? 우리가 틀릴 수도 있잖아.”
셋 다 평균보다는 똑똑했지만 우와 소리 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지나는 독서량이 상당했다. 엄마 직업이 직업인지라 어릴 때부터 관리한 티가 났다. 강제도 아니었다. 지나는 ‘내가 골라준 어려운’ 책 읽는 걸 진심으로 좋아했다. 유전자와 양육이 가장 좋게 결합한 예다.
몇 달 후,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승희에게 수학도 가르쳐 달라고 승희 엄마가 요청한다. 완곡히 거절했다. 다른 수업이 꽉차서이기도 하지만, 중1 수학은 자잘해서 재미가 없다. 선생이나 학생이나. 게다가 나는 공부에 큰 문제가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치료하는 게 보람있고 좋다. 그렇게 승희와의 인연(因緣)은 몇 개월로 끝난다.
1년 후,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지나와 지원 엄마 역시 학과수업을 요청한다. 똑같은 이유로 여러 번 고사(固辭)하는데 지나 엄마가 물러설 기색이 없다.
“선생님이 하라시는 대로 할게요.”
2000년대 초반, 나름 잘 나가는 과외 강사고 수학문제은행도 창업한 관계로, 여기저기 공부법 강연을 많이 다녔다. 서울이든 대전이든 부산이든, 강연 후 질문 시간에 엄마들 궁금점은 비슷하다.
“어떻게 하면 공부 잘 할 수 있어요?”
“서울대 가는 비법이 뭐예요?”
“어떤 책을 읽혀야 할까요?”
디테일은 강연 때 했으니 됐고, 딱 하나만 추가했다.
“텔레비전을 버리세요. 아이가 공부로 성공할 확률이 확 올라갑니다.”
유튜브 없고, 스마트폰도 없고, 웹툰이나 웹소설도 그닥 힘이 없던 시절이었다. 텔레비전과 게임만이 아이들 정신을 사로잡던, 어찌보면 적(敵)의 정체가 명확하고 단순해 지금보다 훨씬 평화로운 시대였다.
2003년 한 해에만 30군데 이상에서 공부법 강연을 했고, 3천 명 정도 엄마들을 만났다. 텔레비전을 버리면 내가 직접 가정을 방문해 아이 상태를 점검해주고 도움도 주겠다고 했다. 엄마들은 텔레비전을 버렸을까?
그중 딱 한 명만 텔레비전을 버렸다. (텔레비전을 버렸지만 내게 연락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고 믿고 싶다.)
지나가 중학교에 들어가던 2000년대 말에도 텔레비전은 여전히 요물(妖物)이었다. 지나 엄마는 집에서 텔레비전을 없애겠다고 했다. 지원 엄마는 거실에 장군처럼 버티고 서 있던 텔레비전을 안방으로 옮기겠다고 한다.
그렇게 나는 지나와 지원을 가르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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