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와 왕
8살 여자 아이를 성폭행하고 장기(臟器)의 80%를 파열시키면?
죽여야지. 백 번을 고쳐 죽여야지. 그런데 징역 12년. 만취(滿醉) 상태였으니 봐준단다.
여자 기숙사에 침입해 성폭행을 시도하고 상해(傷害)를 입히면?
내 딸이 당했다면 찢어 죽여야지. 하지만 내 딸 아니니 적당히 징역 10년으로 퉁치자. 그런데 집행유예. 이유가 대박이다. 평소 주량보다 많은 소주 4병을 마셔 블랙아웃 상태였으니 봐준단다.
길거리에서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30대 청년이 20대 청년 둘에게 맞아 죽었다. 검찰은 각각 징역 9년, 8년을 구형했다.
판사 결정은 징역 3년.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고 술에 취했다는 이유로. 맞아 죽은 청년도 부모에겐 앞길 구만리인 귀한 아들이었을 텐데.
술에 취했다고 관용을 베푸는 주취감형(酒醉減刑). 가해자인 짐승들만 우대하는 판결. 피해자와 가족들 억울함은 완전히 무시하는 판결. 왜 그럴까?
인문 교양이 부족해서 그렇다.
판사들이야 자타공인(自他共認) 최고 엘리트니 이렇게 말하겠지.
“너희들은 리걸 마인드(legal mind)가 없어서 이해를 못하는 거야.”
“중요한 건 법적 안정성이야.”
그래 그렇다 치자. 그런데.
대다수 국민들이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 계속된다면, 판결을 볼 때마다 무기력을 느낀다면, 피해자 자리에 나를 집어넣는 상상만으로도 소름끼친다면, 그 나라 주인을 국민이라 볼 수 있을까?
주인인 국민들도 이해할 수 없는 판결(判決)이 계속된다면,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왕의 지배 하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16세기 어떤 철학자 말이다.
“범죄보다 더 범죄적인 판결을 나는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맨 정신일 때 우리는 많은 것을 억제하며 산다.
보는 사람이 있으면, 욕을 자제하고 길에 침을 뱉지 않으며 쓰레기는 분리해서 배출한다. 길에서 어깨가 부딪쳐도, 옆집 아이가 우리 개를 놀려도, 당장이라도 상사 얼굴에 사표를 던지고 싶어도, 어지간하면 참는다.
맘에 드는 이성(異性)이 있어도 함부로 집적대지 않고 헤어진 애인에겐 더더구나 문자를 보내지 않는다. 아이가 운다고 폭력으로 입을 막지도 않는다.
술을 마시면, 과도하게 마시면 이 모든 것을 한다.
술은 술이 깨면 후회할 일들을 거리낌 없이 하게 만든다. 술은 ‘나 스스로 나에게 가하는 억제를 벗어나도록 돕는’ 요물(妖物)이다. 그래서 술에 취한 상태를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라 보기도 한다. 동과 서, 고와 금을 막론하고 이런 말들이 진리로 통용된다.
‘술이 들어가면 혀가 나온다.’
‘옳은 말은 술독 바닥에 있다.’
‘술은 재판관보다 더 빨리 분쟁을 해결해준다.’
‘거울에서 모양을 보고 술에선 마음을 본다.’
틀렸다.
술이 고삐를 풀어주는 ‘억제력’은 우리가 건강한 인격체로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다.
성숙한 사람은 ‘단기 욕구(사표를 던지고 싶다)’와 ‘장기 목표(직장이 있어야 가정을 지킬 수 있다)’ 사이의 갈등을 조화롭게 해결하려 노력한다.
술의 역할은 진정한 자아(自我)가 드러나도록 돕는 게 아니라, 장기 목표를 잊고 단기 욕구에 충실하도록 만드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요즘 과학자들은 술을 다르게 본다. ‘알콜 근시’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술이 우리를 정서적 근시, 정신적 근시로 만든다는 것. 무슨 말?
코앞의 것만 보이는 고도 근시처럼 알콜 근시 역시 눈앞의 것만 보이도록 시야(視野)를 축소한다는 말. ‘장기’ 목표는 잊고 ‘단기’ 욕구에만 주목하게 만든다는 말. 내일 중요한 시험이 있어도 지금 당장 술자리 분위기나 게임이 나를 사로잡는다는 말.
음주가 그렇게도 쉽게 폭력, 운전, 성폭력으로 이어지는 것 역시 ‘알콜 근시’ 때문이다. 말초(末梢)를 자극하는 단기 욕구가 안정된 삶이라는 장기 목표를 잊게 만든다.
음주로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푸는 건, 그들로 하여금 단기 욕구를 추구하는 삶을 더 가열차게 살도록 부추기는 행위다. 삶을 망가뜨리도록 유도한다는 말.
가해자 삶도 망가뜨리고 피해자 삶은 더 망가뜨리는 주취감형(酒醉減刑). 식상하지만 안 쓸 수 없는 표현.
주취감형, 누구를 위한 것인가?
독일, 미국, 영국은 주취감형이 없다. 특히 독일 형법의 경우 음주는 책임을 회피하는 이유가 아니라 책임을 인정하는 근거가 된다. 음주가 범죄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으므로. 게다가 음주 상태에서 벌어진 범행은 대개 잔혹(殘酷)하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술에 취한 상태로 성폭력을 저지른 놈이 몇 놈일까?
35,707명이다.
전 세계?
아니, 한국.
한국 형법에 주취감형을 명시적으로 규정한 조문(條文)은 없다.
* 형법 제10조 제1항, 제2항 : 심신장애 상태에서 범행한 경우 감면 내지 감경(減輕)할 수 있다
‘정신 나간 상태’에서 저지른 행위는, 행위자에게 책임이 없다고 보는 것.
음주 성폭력으로 피해자뿐 아니라 가족 모두의 인생을 망가뜨려도, 만취운전으로 아빠를 제외한 전 가족을 다 몰살시켜도, 술을 많이 잡수셔 ‘정신 나간 상태’니 처벌을 낮춰드리겠다는 말.
술에 대한 이해도는 높지만, 인간에 대한 이해도도 그만큼인지는 의문이다.
‘심(心)과 신(身)’의 관계에 대한 논쟁은 철학에서 오랜 주제다.
_ 마음(정신)과 신체는 서로 독립된 실체다.
_ 아니다, 마음이 주인이고 신체는 하수인이다.
_ 아니다, 신체가 주인이고 마음이 하인이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마음.
_ 아니다, 마음과 신체는 하나다. 속성만 다르다.
_ 아니다, 신체는 허상이고 마음만 존재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_ 아니다, 마음은 신체의 생리적 과정에 따라오는 결과일 뿐이다. 즉 마음이란 건 없다.
철학에 정답은 없다. 저런 다양한 논변을 통해 인간 이해가 넓어진다. 인공지능 시대엔 특히 철학이 중요하다. 자율주행차 등 ‘AI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책임 소재를 물어야 하기 때문.
뭐, 그건 구글과 철학자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이 정도로 가자.
_ 정신은 몸뚱이를 놔두고 밖으로 나갔다. (혹은 뇌 깊은 곳 어디에 숨어 있었든지)
_ 그래 인정. 죄를 지은 건 몸뚱이.
_ 그러니 몸뚱이만 감옥으로 보내고 집 나간 정신은 무죄.
정신은 어디로 가야하냐고?
_ 그건 제 사정이지.
_ 외로우면 감옥에 있는 제 몸뚱이로 들어가든가.
_ 아님 다른 몸뚱이를 찾아 합체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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