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이라는 함정

선행학습 똑똑한 사용업 (7-5)

by 조이엘

고등학교 2학년이 배우는 ‘경우의 수’ 파트에서 아이들 수학 머리 일부를 엿볼 수 있는 문제들이 있다.


배우지 않아도, 기본 수학 지능으로 풀 수 있는 문제들이다. 몇 개를 프린트해 아이들에게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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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개 물감으로 A,B,C,D,E를 칠하려고 해. 똑같은 물감을 여러 번 사용해도 좋지만, 이웃하는 영역은 서로 다른 색으로 칠해야 영역을 구분할 수 있겠지? 몇 가지 방법으로 칠할 수 있을까? (정답은 마지막에)


지나와 지원은 심각한 표정으로 머리를 굴린다.


세은은 다르다. 선생님, 이거 팩토리얼 쓰는 문제죠. 아닌가. 순열이야 조합이야. 이래저래 말이 많다.


결과는?


지원이 가장 먼저 풀었고 지나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풀어냈다. 하지만 세은은 이리저리 공식을 이용해 풀었다.


세은아, 왜 이렇게 풀었는지 아이들한테 설명 좀 해줄래, 했더니 못하겠단다. 그냥 학원에서 그렇게 풀었단다.


오케이. 다음엔 공식이 통하지 않는 문제를 던졌다. 역시 지나와 지원은 문제에 집중한다. 누구라고 말할 순 없지만 표정이 참 웃기다.


세은은 손도 못 댄다.


너 이거 선행했잖아. 정석에 나오는 문젠데.


셋 다 풀지 못했다. 설명해 주니 두 아이는 알아듣는데, 세은은 집중을 못한다.


세은아, 너 미적분까지 다 뗐다고 했지? 이차함수의 접선에서 무한(無限)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말해 볼래.


무슨 소리예요, 한다.


1 이차함수 위의 (임의의) 두 점을 연결하는 직선을 그리면, 이 직선은 이차함수를 관통한다.


2 왼쪽 점은 고정하고 오른쪽 점을 (이차함수 위에서) 왼쪽으로 조금 이동한다. 두 점을 연결하는 직선을 그린다.


3 오른쪽 점을 왼쪽으로 조금 더 이동해서 직선을 그린다.


4 이런 작업을 계속해서 오른쪽 점을 왼쪽 점 옆에 최대한 붙인다.


5 최대한이 어디일까?


6 왼쪽 점과, 최대한 붙은 오른쪽 점 사이에, 또 다른 점이 들어갈 수 있다. 2와 2.1 사이에 2.01을 넣을 수 있는 것처럼.


7 이 작업은 무한히 계속할 수 있다. 2와 2.01 사이에 2.00001 등


8 왼쪽 점과, 왼쪽 점에 가장 가까이 접근한 (가상의) 오른쪽 점 사이를 이은 게 접선이다. 두 점을 연결했지만 마치 한 점을 지나는 것처럼 보인다.


9 방금 우리는 무한대를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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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이 맞았다. 세은은 그 많은 시간과 노력과 돈을 들여 고등 선행을 한 번 끝냈지만, 개념 형성은 엉성했고 문제풀이는 기계적이었다.


선행을 계속 돌릴수록(학원 계획으로는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 서너 번) 스스로 생각하는 힘은 억제되고, 틀에 맞춰 푸는 기술만 늘어날 테다.


다시 한 번 세은에게 권면(勸勉)했다.


세은아, 고등학교 수학이 너무 어려우면 풀지 마. 네 학년에 맞는 어려운 문제를 많이 풀어도 고등 대비는 돼.


겨울방학 직전, 세은은 나와의 관계를 끊었다. 본인 의지인지 부모님 뜻인지는 알 수 없었다. 예상했던 바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은, 셋 중에 제일 똑똑했던 지원 역시 공부를 그만둔다. 마음속 미풍이 태풍이 되었나 보다.


세은과 지원이 새로운 학원에서 함께 고등선행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지나에게 전해 들었다. (문제 정답은 420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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