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증오하는 아이

국영수는 핑계고 인생을 배웁니다

by 조이엘

지난 봄, 서울에서 중1 상호(가명)를 만났다.


“너는 어떤 과목이 제일 좋니?”


“수학이 제일 싫어요.”


싫은 과목은 안 물어봤는데...


수학을, 수학 만든 사람을 XX 증오한다는 상호 눈빛에서 열패감과 절망이 보인다.


중1, 1학기가 끝나가는데 연산이 엉망이다. 분배도 엉망, 통분도 엉망, 대체로 엉망진창이다.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연산을 못하니 방정식은 물론 활용과 응용 문제는 하나마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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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정색하고 시키면 어느 정도는 맞추다 보니, 엄마도 방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튼, 그 ‘정색’이 스트레스가 되어 갈수록 수학에서 멀어지는 것은 물론, 정서 상태도 걱정이다. 책이건 과자건, 물건을 곱게 책상에 놓는 법이 없다. 집어던지듯 내려놓는다. 질색팔색인 사람과 강제로 장기 여행 중인 사람의 정서 상태라고 봐도 되겠다.


큰일이다 싶어 차근차근, 진지하게 연산을 설명하니, 표정이 싹 변하면서 머리가 아프다며 책상에 얼굴을 묻어버린다.


난감하고 슬프다. 이미 중1 나이에, 공부에서 절망과 분노를 학습해버린 아이.


일주일에 한 번, 두 달 정도 만나면서 공부보다 관계를 먼저 쌓았다. 식단하느라 자제했던 음식과 간식도 같이 먹었다. 논리도 없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다 받아주고 대꾸도 해줬다. 내 몸 속 어딘가에서 스트레스가 차곡차곡 쌓이는 소리가 들린다.


어쨌든, 빠른 시일 안에 나를 신뢰하게 된 상호는, 도대체 내가 왜 수학을 해야하지, 라고 툴툴거리면서도 조금씩 수학 문제를 푼다.


그렇게 두 달쯤 보내고 여름방학이 되면서 나는 제주로 왔다. 제주 아이들을 마지막으로 집중해서 봐주려고.

상호와 상호 엄마는 나를 따라 제주로 왔다. 에어비앤비로 방을 얻어 놓고, 매일 공부방으로 출근한다. 덕분에 나는, 상호가 공부방에서 퇴근한 뒤 2시간쯤 앓아 눕는다.


상호는 머리가 좋은 아이다. 하지만 (제 기준에선) 과도한 수학 공부와 잔소리 때문에 수학에 진절머리가 났다. 그러니 글씨와 숫자는, 자신도 못 알아볼 정도로 암호 수준이고, 그 꼴을 보고 또 수학이 싫어진다. 며칠 전, 상호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상호야, 네가 수학을 못해도, 공부를 못해도, 샘이 끝까지 봐줄게. 하지만 이 정도 노력은 네가 해줘야겠어.”


첫째, 천천히 풀고, 쓰자. (서둘러 공부를 끝내려고 글씨를 빨리 쓴다)


둘째, 암산은 절대 하지 말자. (간단한 연산은 암산을 하는데, 절반은 틀림)


셋째, 글씨와 숫자를 알아볼 수 있게 예쁘게 쓰자. (제 글씨를 제가 몰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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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일주일쯤 지났다.


상호는 내가 당부한 것을 지키려는 작은 노력을 보여준다. 그것만 해도 감동.


처음엔 3분도 문제에 집중하지 못했는데, 지금도 3분 집중력은 비슷하지만, 조금 진지해졌다.


상호 아빠가 어제 휴가를 받고 제주로 왔다.


그런데 상호 이 녀석, 엄마 아빠 둘이서 놀라면서 아침에 공부방으로 와, 2시가 넘어가는 지금까지 내 앞에 앉아, 형들 옆에 앉아, 수학은 끝냈고, 게임을 하고 있다. 먼저 집에 가라고 해도 형들하고 같이 간단다.


상호의 2학기가 살짝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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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먼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꼴찌들에게도 반드시 방법이 있다. 제대로 물어진 질문에는 반드시 해답이 존재하는 법이니까’ (국영수는 핑계고 인생을 배웁니다.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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