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리지

제주 절물

by 조이엘

서양에 ‘그리스 신화’가 있다면 동양에는 ‘산해경’이 있다.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화내고, 속이고, 질투하고, 좌절한다. 우리 인간과 다를 게 없다. 게다가 자유롭게 인간과 교제하고 심지어 결혼까지 한다. 다른 문화권 신들에게선 쉽게 볼 수 없는 모습. 인간을 기준으로 신을 상상해서 그렇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인은 신을 조각할 때 인간스러운 모습을 강조했다.


산해경은 다르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신적인 존재(혹은 괴물)를 다 기록했다.


'기산 남쪽에는 머리 3개와 눈 6개, 날개 3개를 가진 짐승이 있다. 얘를 먹으면 잠이 없어진다.

기산에서 동쪽으로 300리를 가면 청구산이 나오는데, 그곳에는 9개의 꼬리를 가진 여우가 산다. 얘는 어린애처럼 말하는데 사람을 잡아먹는다. 얘를 먹으면 조현병이 낫는다. (맞다, 전설의 고향에서 봤던 구미호다.)'


굉장히 시크한 의사가 쓴 처방전 같다. 산해경은 B.C.4-3세기 경 무당들이 가이드북으로 편집한 책이라 그렇다. 그 점이 상상력을 더 건드리기도 한다.


2000년대 중반 가요계를 휩쓸었던 남성그룹 SG워너비가 2006년, 3집 앨범에 ‘비익조’라는 희한한 새를 소개한다.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는 내용인데, 새 모습이 특이하다.


‘하나의 눈과 반쪽 날개론 날 수도 없는 가슴앓이 새처럼’


범상치 않으면 다 산해경 출신이다. 비익조를 이렇게 설명한다.


'숭오산에 물오리같이 생긴 새가 있는데, 눈과 날개가 하나밖에 없어 상대방과 합쳐야만 날 수 있다. 얘가 나타나면 천하에 큰 홍수가 난다.'


비익조 두 마리가 서로의 날개를 공유해서 날아다니는 모습은 인간으로 하여금, 우리도 저렇게 도우며 살아야지, 마음 맞추어 살아야지, 하는 선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이 땅엔 공포의 쓰나미가 몰려온다. 그래서 비익조는 오랜 시간 길조이면서 흉조로 소비되었다.


비익조가 중국 하늘을 날아다닌 지 천 년쯤 되던 어느 날, 백거이(772-846)라는 유명한 시인이 비익조 운명을 확 바꿔버린다.


하늘에선 비익조가 되어 만나기를.

땅에선 연리지가 되어 만나기를.

하늘과 땅은 끝날 날이 있어도

당신을 잃은 내 한(恨)은 끝나지 않는다.


시인은, 자살한 양귀비를 그리워하는 당나라 황제 현종의 애절함을 비익조에 연결시켜 버린다. 이후 비익조는 ‘흉조 또는 길조’라는 천 년 묵은 논쟁에서 완전히 벗어나, 남녀 간 사랑을 상징하는 훈훈한 새로 진화한다.


시에서 비익조와 세트로 등장한 것이 연리지다. 비익조가 그렇듯 연리지 역시 남녀 간 사랑과는 무관한 캐릭터였다.


‘후한서’란 역사서에 효자 채옹(133-192)이 나온다. 채옹은 천 일 동안 옷 한 번 갈아입지 않고 병든 어머니를 간호했다. (더럽다고 생각하지 말고, 옷 갈아 입을 시간도 아껴 어머니께 집중했다고 이해하자.) 병이 심각해지자 마지막 백 일 동안은 잠도 자지 않고 어머니를 집중 간호했다. 그럼에도 어머니가 죽자, 채옹은 무덤 옆에 초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한다.


비가 안개처럼 대지를 부드럽게 매만진 다음 날, 초막 앞에 싹 두 개가 터서 각자 자라더니 어느 순간 가지가 서로 이어져 하나의 나무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두 나무를 연리지(連理枝)라 불렀고, ‘부모와 자식이 한 몸이 되었다’는 해석을 공유했다. 이렇게 300년가량 효성을 상징하던 연리지는 백거이에 의해 남녀 사랑의 아이콘으로 변신하게 된다.


비익조는 아마, 전생에 나라를 세 번쯤 구하지 않았다면 현실에선 볼 수 없을 터. 연리지는 다르다. 제주도 절물휴양림. 여기서는 볼 수 있다. 더구나 여기는 가족 여행에서 젊은 식구 취향을 따르시느라 힘들었을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고 산책하기 딱 좋은 곳이다. 연리지에서 부부 혹은 연인간 사랑을, 그리고 부모님을 생각하는 기회가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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