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시리즈
현재 20억 명, 즉 지구인 4명 중 1명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8만 명이나 된다. 먹기는커녕 냄새라도 묻을까 몸서리를 친다. 혐오한다는 말이다.
이들은 돼지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초코파이도 먹지 않는다. 초코파이를 모르니까 안 먹겠지. 맞다. 하지만 알게 되도 먹지 않는다. ‘돼지’껍데기에서 추출한 성분이 초코파이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숨은 돼지고기다. 그래서 한국 과자 대부분이 20억 명에겐 금지 식품이다. 롯데제과 ‘빼빼로’, 오리온 ‘오 감자’, 크라운 ‘콘칩’, 해태제과 ‘아이비’ 정도만 먹는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돼지고기를 담았던 그릇, 돼지고기를 건드렸던 조리 기구도 돼지고기와 동급으로 취급한다.
왜 그럴까?
한반도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서히 신라로 통합되어가던 서기 7세기, 사우디아라비아에선 새로운 신(神)이 탄생하는데 그 열기가 BTS급이다. 100년 만에 스페인, 북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 인도 언저리를 죄다 팬덤으로 채우는 괴력을 발휘한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신도 20억 명을 거느린 신 ‘알라’다. 그가 신도들에게 돼지고기를 금했다. 한 번이 아니라 서너 번 반복해서 금지했다.
“돼지의 피와 살을 먹지 마라.”
사실은 표절이다. 원조는 유대교 신 야훼다.
“돼지는 너희에게 부정하니 먹지 말고 사체를 만지지도 마라.”
이렇게 과학이나 다른 배경 없이, 종교적 이유로 무언가를 금지하는 것을 터부(taboo)라 한다. 폴리네시아 단어 ‘타부(tabu)’에서 유래했다. 하와이에선 카푸(kapu), 동아프리카에선 타후(thahu)가 비슷한 개념이다.
그런데 돼지고기, 20억 무슬림과 1천 만 유대인들에게 외면당하기엔 억울한 점이 많다.
_ 돼지고기 속 비타민 B1은 쇠고기의 8~10배다.
_ 돼지고기에 함유된 풍부한 철은 체내 흡수율이 높아 철 결핍성 빈혈을 예방해 준다.
_ 찐 돼지고기는 구운 것보다 지방 함량이 40% 정도 낮다.
_ 지방(6%)보다 단백질(21%)이 3배 이상 많아 고단백 저지방 음식이다.
이 좋은 음식을 야훼와 알라는 왜 금지했을까?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 있었느냐?”
신의 뜻을 한낱 인간이 어찌 알겠느냐는, X무시. 그런데 묘하게 설득력 있다. 알라는 아예 겁박이다.
“믿지 아니하고 나의 증거를 거짓으로 여기는 자는 불에 넣어질 것이다.”
신자들에게 생각의 교과서를 제공해 범람하는 생각을 막아주는 게 종교 장점 중 하나다. 하지만 양날 칼이다. 생각의 교과서는 다람쥐 쳇바퀴처럼 생각의 틀 안에서만 생각이 돌도록 하기도 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 대부분은 알라나 야훼와 개인적 친분이 없을 테니, 불에 던져질 걱정 말고, 신들 속마음을 추리해 보자. 야훼와 알라는 왜 돼지고기를, 그 좋은 음식을 강력하게 금지했을까?
1 중동 유목민(즉, 초기 유대인과 무슬림)이 즐겨 키우는 소, 양, 염소는 반찬 투정이 없다. 365일 풀떼기만 줘도 행복 지수 만점이다. 돼지는 다르다. 잡식동물이긴 하지만 주식이 곡물이다. 사람과 먹이 경쟁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2 소, 양, 염소는 풀만 먹고도 우유와 치즈를 쑥쑥 생산하는, 구글과 애플도 따라할 수 없는 효율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돼지는 그럴 능력이 없다.
3 소, 양, 염소는 가죽과 옷감을 제공하고 농사를 도울 수도 있다. 돼지는 못한다. 하나도 못한다.
4. 소, 양, 염소 똥은 비료로 사용할 수 있다. 난방 연료로 사용하기도 한다. 돼지 똥은 아무 기능이 없다. 환경만 더럽힌다.
5 돼지는 다른 가축과 달리 체내 체온조절기가 허접하다. 땀을 안 흘린다고 보면 얼추 맞다. 외부에서 받은 열을 몸속에 차곡차곡 쌓아두는 스타일. 외부 온도가 섭씨 40도 근처에서 며칠 머물면, 돼지는 폭발한다. 열 받아 죽든 화병에 걸려 죽든. 그래서 돼지는 진흙 속을 뒹굴어 체온을 떨어뜨려야 한다. 진흙이 없으면 자기 배설물에서라도 뒹굴어야 한다.
한 마디로, 돼지 키울 노력이면 다른 가축 몇 마리를 더 키울 수 있다. 그래서 야훼와 알라, 행여나 사랑하는 신도들이 삼겹살의 마력에 빠져 돼지를 키우는 생고생을 할까 걱정돼, ‘돼지는 먹지 말라’고 강하게 명령했다. 신의 명령도 어기는 게 인간의 본성임을 알고 아예 ‘혐오’하도록 했다.
비슷한 시기 동아시아 사람들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저 귀한 쌀과 보리. 내가 먹을 것인가? 돼지에게 먹일 것인가?”
중동과 달리 동아시아 신들은 돼지에 관해 침묵했다. 그래서 나온 인간들의 고육책, 혹은 신박한 솔루션.
“쌀과 보리는 인간이 먹고, 똥을 돼지에게 먹이면 어떨까?”
설마, 했는데 먹는다. 맛나게 먹는다. 이렇게 해서 돼지 사료 문제는 해결. 동아시아는 중동보다 햇빛이 약하니 그늘막이 필요 없다. 진흙이나 물을 쉽게 구할 수 있으니 체온 배출도 노 프라블럼.
남은 문제는 돼지가 싼 똥을 처리하는 것인데, 혹시나 하고 풀이나 볏짚을 돼지우리에 깔았더니 똥오줌을 깔끔하게 흡수한다. 게다가 돼지가 쉴 새 없이 밟아주니 금방 삭아서 훌륭한 비료로 변한다. 사람 똥은 돼지가 먹고, 돼지 똥은 비료가 되는 완벽한 업사이클링 시스템. 이렇게 신의 도움 없이, 인간 노력만으로 탄생한 것이 ‘돼지 화장실’이다.
돼지 화장실 시스템은 공자님과 맹자님이 활동하던 춘추전국시대, 즉 2,500년 전 중국 황하강 유역에서 처음 출현한 것으로 추정한다. 중국 전역으로 퍼진 뒤 만주, 네팔, 오키나와, 필리핀, 그리고 우리나라까지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각 나라에서 자생적으로 생겼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경상남도 일대(거창, 산청, 함양, 의령 등 지리산 자락)가 많지만 전라남도, 강원도, 함경북도 등에도 돼지 화장실이 있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돼지 화장실의 꽃은 제주도다. 왜 그럴까?
제주 밭은 육지보다 자갈이 많고 토양은 적어, 과장해 말하면, 자갈밭이다. 토양이 풍부한 육지 밭엔 사람 똥을 액체 거름으로 만들어 뿌리지만 제주에선 할 수 없다. 토양이 적어 액체 거름이 토양에 머물지 못하고 금방 밑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게 고체 거름인데, 인분을 먹은 돼지가 그 고체 거름을 생산해준다.
제주에선 돼지 화장실을 통시이나 돗통이라 부르고, 통시에서 만들어진 거름을 돗거름이라 한다. 돼지 한 마리는 인간 500명이 ‘싼’ 똥에 해당하는 거름을 생산할 수 있다. 척박한 제주 땅을 살아내야 하는 제주인들에게 구세주라는 말. 야훼나 알라와 달리, 동아시아 신들이 돼지에 침묵한 이유라면 오버일까.
요즘 흑돼지는 제주에나 와야 실물을 영접할 수 있고, 심호흡을 두 번은 해야 주문할 수 있는 값비싼 고기지만, 옛날 우리나라 돼지는 대부분 흑돼지였다. 일제 강점기 때 외국 돼지가 도입되었고 이들과의 교배로 흑돼지는 씨가 말라버린다. 육지 흑돼지와는 품종이 살짝 달랐던 제주 흑돼지 역시 1960년대 성이시돌 목장에서 도입한 수입종이 제주 농가에 분양되면서 거의 전멸한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던 제주 축산진흥원이 1986년부터 나섰다. 제주를 샅샅이 뒤져 토종 흑돼지 5마리를 찾아냈고, 이를 기반으로 순수 혈통 제주흑돼지를 늘려가는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축산진흥원에서 400마리 내외를 관리하고 있다. 제주 흑돼지는 똑똑하고 동작이 빠르다. 성격이 온순하고 사람도 잘 알아본다. 척박한 제주 기후와 토양을 잘 극복하고 살아온 강단 있는 가축이다.
씨가 말라버리기 일보 직전이던 제주 흑돼지는 2015년 천연기념물 제550호로 지정되었다. 그럼 최근에 제주도로 와 흑돼지를 먹은 사람은, 흑돼지 구이든 흑돼지 김밥이든, 다 범죄자인가? 다행스럽게도, 천연기념물 진돗개가 그러하듯 국가에서 관리하는 400마리 정도만 천연기념물이다. 우리가 먹은 흑돼지는 민간에서 사육한 흑돼지로, 엄연한 의미에서의 레알 흑돼지는 아니다. 100여 개 제주 농가에서 기르는 10만 마리 이상의 개량종 흑돼지가 최종적으로 우리 밥상에 올라온다.
가정(家庭), 가족(家族) 등 생각만하면 가슴 한 구석이 따뜻해지는 ‘집’을 뜻하는 한자 ‘家(가)’는 ‘宀(면)’과 ‘豕(시)’를 합친 글자다. ‘면’은 건물로서의 집을 가리키고 ‘시’는 돼지다. 집 안에서 돼지 몇 마리는 키워줘야 집안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고 환경도 보호할 수 있다는 고대인의 지혜, 라고 해석하면 오버일까.
#국영수는핑계고인생을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