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미혼 여성, 우리에겐 롤모델이 없다

프롤로그

by 암사자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지겨워지는 날이 내게도 왔다. 사범대를 졸업한 학생들이 일반적으로 택하는 진로를 박차고 나온 24살부터, 나는 이 질문을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했다. 30대가 되어 20대의 나날들이 내 기억 속에서 상당 부분 희미해졌다. 그러나 프랑스어 공인 시험을 보고 나와 숙명여대 앞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던 친구가 했던 말은 잊히지 않는다.


“저 밖에 애들 봐. 아무나 붙잡고 “요즘 어떠세요?”라고 물으면 전부 다 너 붙잡고 펑펑 울걸.”


식당의 투명 유리창 문 밖에는 여대생들이 쏟아져 나와 걷고 있었다. 아직은 앳된 얼굴을 어린 성인들이, 자신의 크고 작은 책임들을 어깨에 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나와 내 친구도 그랬다. 나는 이름도 모르는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며,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모르는 유일한 사람이 아님에 안도했다.


20대의 가장 큰 고민은 직업 문제이다. 이런저런 시험에도 도전해보고, 기업에 원서도 내보고, 사업을 해볼까 생각도 해보며 자기 의심과 좌절을 번갈아 쌓는 시기. 원하는 직업을 얻는 것에 실패하면 먹고살 길이 막막하게 느껴지면서 괜스레 나이를 꼽아보는 시기. 이 시기엔 직업 문제만 해결되면 다른 것은 자동으로 풀릴 것만 같다. 남들 다 하는 거 나도 하며 살겠지, 하며.


그러나 30대가 되니 20대 때와는 다른 성격의 고민이 펼쳐졌다. 평생 직업까지는 아닐지라도 대부분 “현재의 직장”을 가지고 자기 전문 직종에서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 자아의 크기를 조금씩 줄이면 현실과 잘 타협하면 먹고사는 것이 20대 때 생각하는 것만큼 막막하지는 않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동안 내게 훈수를 두었던 어른들이 대단히 똑똑하지도 않다는 것도, 그들이 말해준 삶의 순리가 더 이상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종종 이 격변하는 사회 속에서 가장 혼란스러워하며 헤매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어른들이라는 것도 목격하게 된다.


이제 여기서 다시 한번 자문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가. 어른들도 모른다. 물론 나야 당연히 모른다.

나 잘 살아가고 있는 건가.


나는 문득 이 의문이 모든 인간을 위한 문제가 아니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각하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치열하게 고민해봄직한 말이지만, 이것이 인류 역사 내내 모든 인간에게 허용된 말이었을까?


우선 노비들에겐 허용되지 않는 말이었을 것이다. 노비가 자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삶이 고달파졌다. 주인이 시키는 일만, 허락한 정도의 사고만 해야지 그 이상을 하며 사람다운 생각을 하면 목숨이 위험해질지도 모른다. 어떤 주인은 위협을 느꼈을 것이고, 어떤 주인은 가축이 자기와 비슷한 소리를 내는 것에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다. 신분제 폐지가 고작 200여 년 전 갑오개혁 때의 일이니, 우리의 믿음보다 인간이 자신의 인생 진로에 대해 고민한 역사는 길지 않다.



정도는 덜했지만 여성들에게도 허락되지 않았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부모가 정해준 내 짝이 내 가치관에 맞는 사람인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 인생은 파멸로 가기 시작했다. 여자가 많이 배우면 팔자가 사나워진다는 말은 여자가 자아를 가지고 생각을 할 줄 알면 사회가 기어코 그녀의 삶을 밟아놓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결혼했는데 자아가 아직 안 죽은 여자의 말로는 허난설헌이었을 것이다. 여자가 아버지나 남편에게 종속된 존재가 아니게 된 것은 신분제 폐지보다 훨씬 후의 일이다. 아직까지 사회에 남아있는 가부장제의 인습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제도적으로 호주제가 폐지된 것도 고작 15년 정도밖에 안 되었다.


여학생들이 1등을 하고 학생회장을 한다며 뉴스에 나온 첫 세대가 우리 세대이다. 10여 년 후 조직에서 여성 임원이, 여성 대사가, 여성 대법관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다면 그들도 우리 세대일 것이다. 때도 지금처럼 여성 고위직의 얼굴과 패션에만 관심이 쏟아지게 둘 것인가? 그때도 “남성과 다른 여성만의 섬세함과 모성애가 돋보이는 방식으로” 일하고 정치하고 판결문을 쓸 것인가?


이제 여자들은 어느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은 채 자신의 삶과 가정, 조직, 그리고 국가를 이끌겠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선언과 동시에 우리는 정글에 내던져진 존재가 된다. 정글에는 보도가 닦여있지 않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이 시기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지, 정말 혼자 살아도 괜찮은 것인지에 대한 선례가 거의 없다. 매체에서는 엄정화나 보아, ABC 조주희 기자처럼 경제적으로 크게 성공하고 매우 아름다운 여자들만 보여준다. 저 정도는 되어야 여자가 혼자 살 자격이 된다는 듯이. 저렇게 여성성까지 유지해야 처량한 ‘선택되지 못한 여자’가 아닐 수 있다는 듯이. 하지만 이 정도로 성공한 사람들은 남자들 중에서도 매우 드물다. 모든 여자가 매체가 주목할 정도로 성공한 사람들을 롤모델로 삼고 살아갈 수는 없다.


결혼이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혼하지 않은 상태의 여자가 모두 결혼을 준비하고 남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시기에 있다거나, 결혼을 포기한 불쌍한 상태에 있다고 여기는 이분법에 반대한다. 어떤 상태에서든, 심지어 결혼한 상태에서도 나는 내 삶을 계획하고 이끌며 꾸려가는 주체적인 존재여야 한다. 내가 너무 일찍 태어나서 결혼 없이, 혹은 결혼 상태임에도 독립적으로 잘 사는 평범한 여자들의 견본이 너무 적다. 나는 그렇게 잘 살아가고 싶은데. 내 인생을 너무 헤매고 고생하고 망했다가 겨우 살아난 예시로 만들고 싶지는 않은데.


우리는 최초로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에 길을 내야 하는 여자들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지금 코딩을 배우지 않아도 10년 후에 땅 치고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지의 여부조차 모른다. 살인적으로 오른 집값이 10년 후면 곤두박질칠지, 더 오를지 부동산 전문가들도 모른다. 결혼 제도가 50년 후에는 존재하기나 할 지에 대한 미래학자들의 예측이 분분하다. 시대가 너무 빠르게 바뀌어서 아무도, 아무것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 안정성을 찾으려고, 내가 정상임을 증명하려고 선배들이 갔던 길을 그대로 따라갈 수는 없다. 우리는 이야기를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 있는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


답답하고 심란해서 책을 읽으려고 서점을 뒤져보았지만 마땅한 책을 찾을 수 없었다. 책이 답을 줄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인 것 같다. 나도 그냥 내 생각을 이야기해 보겠다. 읽으시는 분들의 공감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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