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테릭한 미친X

100년 전에 만들어진 B사감 캐릭터를 이제 보내주어야 할 때

by 암사자

내가 다닌 고등학교에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 선생님이 두 분 계셨다. 두 분 다 학벌 좋고 잘 가르치시는 베테랑 교사였다. 2년에 한 번 꼴로 두 분도 담임을 맡으셨는데, 일 년간 아이들을 밀착 지도를 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크고 작은 잡음이 없겠는가? 그런데 그 두 선생님 반 아이들에게서 담임 선생님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기만 하면, 교직원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남자 선생님들이 모두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그 선생님이 결혼을 못해서 노처녀 히스테리를 부리는 거야.”


남자 선생님들이 너무 거리낌 없이 한 문장으로 정리를 하셔서, 우리는 결혼을 안 한 나이 든 여자는 당연히 히스테리를 부리는 존재인 줄 알았다. 그러게 저 선생님들은 왜 결혼을 안 해서 이상해진 성격을 우리한테 푸는 거야? 그곳은 한 번 교사로 임용되면 퇴임 때까지 학교 간 전근 없이 다녀야 하는 사립학교였다. 20년 이상 지속되는 집단적인 험담. 과연 그 여선생님들이 이 사실을 모르셨을까?

히스테릭한 노처녀. 우리는 문학 시간에 소설 <B사감과 러브레터>를 배우며 한 번 깔깔 비웃고, 두 선생님들의 “노처녀다운 신경질”을 보고 두 번 비웃었다. 남자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뺨을 때렸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왜? 그 애가 선생님을 얼마나 화나게 했길래?”하며 그 화의 이유를 물었다. 하지만 그 두 선생님의 화는 그저 “히스테리”였다.

한 번은 두 여선생님들 중 한 분이 잘생긴 남자 선생님께 웃으며 인형을 흔들었는데, “그 선생님이 K쌤한테 꼬리 쳤다.”라고 학생들 사이에서 소문이 났다. 스캔들의 상대가 된 K선생님은 유부남이었다. 나는 그때 이 소문이 아주 부당하다고 느꼈다. 유부남에게 “꼬리 쳤다”는 소문은 농담이라는 말로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모욕이었다. 나는 그때 우리 학교에도 B사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B사감의 역할을 맡아 험담의 소재가 되어주어야 하는 마녀가, 매일 똑같은 일과가 반복되는 지루한 고등학교 생활에 필요했던 것이다.


B사감은 학생들이 잠든 새벽에 광인처럼 킥킥거리며 어린 학생들에게 배달되는 러브레터를 훔쳐 읽으며 매일 밤 모노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어느 누구의 선택도 받지 못한 채 늙어버린 여자, 사랑을 맛보려면 남의 러브레터나 훔쳐봐야 하는 여자, 혹은 외로움에 미쳐 유부남한테도 꼬리 칠 수 있는 여자. 여자. 여자. 직장에서 아무리 일을 똑 부러지게 해도 그 두 선생님은 남자 동료들에게, 그리고 제자들에게, 원래도 어딘가 하자가 있어 결혼을 못했고 지금은 남편이 없어서 외로움에 더 이상해진 여자들일뿐이었다.

그 선생님들은 어딘가 고고해 보였다. 편하게 대하기 어렵기도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인형만 흔들어도 불륜녀 소리를 듣는 곳에서 자기의 특이한 면이나 부족한 면을 내보이기 어려우셨을 것 같다. 이 분들을 오랫동안 잊고 살았는데, 얼마 전 유튜브에서 가수 보아의 데뷔 20주년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 그분들이 생각났다.

그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아무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아”였다. 10대 때부터 성공해서 30대 중반이 된 미혼의 여가수. 대기업인 소속사의 이사 직함을 갖고 있는 청담동 땅부자. 결혼 안 함. 그동안 많은 예능에서 그녀가 잘 웃고 사람들에게 다정하게 대하는 것을 봐 온 나였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아”라는 제목을 직관적으로 이해했다. 저런 여자한테 친근하게 다가가기 쉽지 않지.

다큐를 다 본 한참 후에도 저 제목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무엇보다 저 제목을 단번에 이해했다는 사실이 내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왜 성공한 싱글 여성을 보면 외로움이 생각나지? 내가 아는 여자들 중 싱글인 여자들은 다 속정이 깊은데, 오히려 가장 계산적인 친구들이 빨리 결혼을 했는데 왜 이 편견이 내게도 있는 거지?

단번에 이 편견이 최근에 생긴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늦어도 고등학교 때 두 싱글 여선생님들을 알고부터는 내게 분명히 이 편견이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것은 나만의 편견이 아니고, 쉽게 사라질 편견도 아니다. 나는 그러니 얼른 결혼해서 히스테릭하다는 소리를 피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도망쳐버리고 싶지 않았다. 우선 남자 선생님들의 부당한 험담을 들었을 때 그건 아니라고 반론하지 못했던 것, 내심 그 논리를 받아들였던 것에 죄송한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잠시 그분들이 고등학교 시절 내내 학생들에게 주셨던 가르침과 배려에 대해 회고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앞으로도 오래오래 싱글인 여성으로 살고 싶은 나 자신에게 말했다. 사람들이 내게 노처녀라 히스테릭하다고 수군거려도, 그렇게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 않길 바라. 나는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 맞으니까. 누군가가 나의 정당한 깐깐함과 분노와 항의에 대한 이유를 자신의 불찰이 아닌 나의 결혼 여부에서 찾으려 한대도, 움츠러들거나 억울해하는 표정을 보이지 않기를 바라.

나는 내가 굳이 더 친절하려고 노력하지 않기를 무엇보다 바란다. 그 편견에 지쳐 결혼으로 도망가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기도 바란다. 아무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아? 내가 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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