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성, 무정보, 무계획 여행의 시작
‘다음 주에 싱가포르 갈래.’
말을 꺼낸 날 바로 티켓팅을 했다. 싱가포르는 작년부터 몇 가지 유의사항을 확인하고 사전 자료를 준비하면 특별한 자가격리 기간 없이 즐길 수 있는 나라였다. 4월부터는 그마저도 더 축소된다 하니 2년 여 만의 해외여행이 가능해졌다.
준비하라는 서류는 다 준비했지만 그 외엔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았다.
‘돈이랑 신용카드만 있으면 다 되는 거지 뭐!’
현지에서 환전할 심산으로 집에 있던 미국 달러만 챙겼다.
공항에서 신속 항원 검사 예약을 한 덕에 공항에 일찍 도착했다.
아시아나 멤버십 서비스로 공항 라운지 이용권이 있었는데, 코시국을 지나며 결국 사용도 못 해보고 소멸되어 버렸다.
사용하고 있는 신용카드 혜택에 스카이허브 라운지와 마티나 라운지 사용권이 있어 찾아갔건만… 전면 폐쇄다.
면세점 가격은 요즘 환율이 올라, 돌아올 때 세관 신고를 거치면 백화점 가격과 다를 바 없다는 한 명품 주얼리 브랜드 직원분의 솔직한 고백에 면세점에서 살 것도 없어졌다.
그냥 이리저리 돌며 시간을 보냈다.
원래도 계획 없이 혼자 여행하는 걸 좋아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 치고 솔직히 하나도 준비 안 한 티가 나는 대목.
여행 계획은 미리 다운로드하여 둔 싱가포르 관련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보며 구상한다.
다른 건 모르겠고, 호커 센터라는 우리나라 광장시장 같은 푸드 코트가 펼쳐진 곳에 가서 꼭 이것저것 먹어보겠노라는 다짐만 했다.
앞서 말했듯 공항에서 환전할 생각으로 미화만 가져갔는데… 공항 내부에 환전소가 여럿 있고 불이 켜져 있음에도 사람이 없다…
신용카드가 있으니 호텔까지 가는 건 그랩 앱으로 잡으면 별 문제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웬걸~ 공인인증서가 필요했다.
나름 야심 차게 유심까지 한국에서 미리 사 두고 ‘나 이번에 꽤나 계획적이군.’이라 믿었는데… 카드 등록에 공동 인증서 따위를 심지어 새로운 한국 앱까지 받아서 등록해야 한단 걸 나는 몰랐다.
택시는 카드가 되거나 안되거나 복불복이라니 일단 환전은 꼭 해야 했다.
결국 나는… 지나가던 승무원에게 부탁해 돈을 약간 바꿔서 보험을 만든 뒤, 인포메이션 데스크로 향해 절망스럽게 물었다.
“Is there anywhere I can exchange my money, sir?”
환전소를 가리키기에 아무도 없다 하니 같이 열심히 직원을 찾아내 주었다.
연신 감사를 외치고 그랩을 불렀다.
처음 잡힌 그랩 기사는 거스름돈 줄 게 없다며 내 콜을 거절했다…
우여곡절 끝에 다른 그랩 기사와 연결되어 랜딩 한 시간이 넘어서야 차를 타고 숙소에 올 수 있었다.
시원한 생맥주가 간절했지만, 여기서는 밤늦게 술을 팔지 않는 게 한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