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치료를 도우려다 알코올 의존증까지 얻었다
너는 친구도 많고 밝잖아. 네가 우울증이라니, 말도 안 돼!
내가 "나 우울증에 걸렸어."라고 말했을 때 사람들이 놀라거나 농담으로 치부하는 것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나는 주변에 소문난 마당발이기도 했고, 생일이면 약속이 넘치고 현관 앞에는 친구들과 지인들로부터 받은 선물들이 가득 쌓였다. 절친한 친구들마저 나에게 괴리감을 느낄 정도로 참 너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늘 부지런히 살았다. 부지런보다는 분주함에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누가 "요즘 뭐 하고 지내?"라고 하면 꼭 무언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심심해서 뜬금없는 자격증을 따고 있다던지, 갑자기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던지, 새로운 운동을 시작했다던지, 혼자 여행을 한다던지 등.
그래서 사람들은 나에게 "내 우울증이 시작된 이유"를 찾으려 했다. 뭐, 굳이 특별히 이유를 대자고 한다면 "회사 일이 너무 많아서 거의 쉬지 못하고 잠도 잘 못 자서요."라고 했지만 그냥 내 삶이 이렇고 내 몸이 이런데 왜 이유까지 알아야 할까 생각도 했다. 아마 그들은 자신들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분야라면 적극적으로 도와줄 생각을 하는 고마운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뭐야, 술이나 먹자!
그런 의미에서 앞선 글에서 밝혔듯 "우울증은 감기 같은 거야. 누구나 흔히 걸릴 수 있지."라는 말은 마땅히 찾을 말은 없고, 상대를 위로하고 싶을 때 자주 쓰이는 말인 것 같다. 다만, 어떻게 보면 누가 감기 환자한테 "왜 감기에 걸렸어? 술이나 먹자! 술 마시면서 이야기하면 나아질 거야."라고 이야기 한단 말인가? 보통은 "밥 잘 먹고, 꼭 병원 가봐. 약 먹고 주사 맞고 쉬면 나아질 거야."라고 하지 않았던가?
내가 우울하다고 하면 "왜 우울해?"라는 대답이 돌아왔고, 내가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하면 이내 "술이나 먹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럴 때면 나는 내 걱정을 해 주고 내 마음을 들어주려고 하는구나 싶어 바로 약속을 잡고 술을 마셨다.
이내 상황이 더 악화되고 말았다. 나는 중증 우울증에 알코올 의존증까지 더해졌다는 진단을 받고 만 것이다. 우울증 약을 먹으면서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말은 의사에게서도 약사에게서도 들었다. 그래도 나는 '내 감정은 내가 더 잘 알아. 나는 오늘 이 친구들을 만나서 술을 마시면 괜찮아질 거야'라는 안일한 감상을 품은 탓이었다. 회사 친한 동료 B와 K를 불러 집에서 한바탕 잭다니엘을 각자 한 병 씩 마신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주당으로 꽤나 유명했다) 다음 날,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눈물과 함께 과호흡이 찾아온 것이다. 내 담당 의사 선생님은 제발 술 좀 끊어보라고 당부했다. 누가 한 번 술을 마실 때 위스키나 와인을 그 자리에서 한 병 이상을 다 비우냐고, 그리고 어떻게 매 번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을 그렇게 마시냐고 크게 혼이 났다. 그래서 함께 술을 곧잘 하던 친구들에게 선언했다. "나 알코올 의존증이래. 술 마시면 안 된대."
네가 알코올 의존증이면 나는 벌써 알코올 중독으로 입원했다!
우리 사회는 술에 관대하다. 나는 어린 시절과 20대 초반을 외국에서 보냈는데, 내가 살던 나라들에서는 빠르면 10시 즈음 - 늦어도 2시 즈음이 되면 술집들이 문을 닫았고, 심지어 어떤 나라에서는 밤늦게 술병을 들고 다니거나 밖에서 술을 마시는 것도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외국 드라마에서도 보면 알코올 중독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아내 몰래 남편이 와인병을 모두 숨기거나 없애지 않던가.
우리는 술로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오늘은 회사에서 상사에게 기분 나쁘게 혼이 났으니 술을 마셔야 하고, 또 어떤 날은 프로젝트 프레젠테이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으니 술을 마셔야 했다. 나 역시 술을 좋아하는 편이라 술자리에 절대 빠지지 않는 1인이었다. 비가 오면 삼겹살에 소주, 날이 좋으면 밖에서 치킨에 맥주를 마셨다. 음식이 맛있으면 마치 페어링은 필수인 것처럼 술을 마셨고, 분위기를 잡고 싶으면 혼자 근사한 바에서 싱글몰트 위스키를 즐겼다. 성인이 된 후로는 도대체 내가 미성년자 때엔 친구들과 무얼 하고 놀았나 싶을 정도로 "약속 = 술 마시는 날"의 공식같이 되어 버렸다.
"나더러 알코올 의존증이라네. 당분간 술을 끊어볼게." 나의 다짐도 그런 맥락에서 우습게 여겨졌다.
"야, 네가 알코올 의존증이면 나는 벌써 알코올 중독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해. 당장 나와."
다행히 나는 성격 상 소심해서 누가 당부한 일을 어기는 스타일이 아니었고 - 이를 테면 학생 때 선생님 말씀이라면 무조건 복종하는 - 하여, 더 강하게 말했다. "아니, 나 정말로. 당분간은 쉴게."
그런데 정말 술을 마시지 않으니 뭔가 재미도 없는 것 같고, 심심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 김에 32년 만에 "복근 한 번 만들어 볼까?"에 닿았고, 그 길로 피트니스 클럽을 등록했다.
*표지 배경 이미지는 Pixabay로부터 입수된 Seo Seungwon 님의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