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적인 내가 현실에 타협하다
딱 한 번 진급하고 퇴사하겠네
어렵게 회사에 입사하고 반년 정도 지났을 무렵 압구정에 유명한 도사님께 신점을 보러 갔다.
연애 쪽에서 유명한 도사님이라고 하셔서 친구와 번호를 수소문해서 알아냈고, 예약을 잡고 그 도사님을 찾아갔다. 무서운 얼굴을 한 보살님이 계실 줄 알았는데, 담배를 끊임없이 태우는 아저씨가 그 유명한 도사님이라고 하셨다.
20대 중반이었던 우리에게 초미의 관심사란 단연 ‘연애’나 ‘결혼’ 같은 키워드였는데, 나는 당시 추위에 떨며 영업을 다니는 게 너무 힘들어서 도대체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할지가 가장 궁금했다.
“아가씨는 강남에서 엄청 돌아다니네. 매니저야?”
강남구를 담당하는 영업 매니저로서 놀랄 수밖에 없는 질문이었다. 아니, 영업해? 이것도 아니고 회사에서 불리는 ‘영업 매니저’라는 직함을 어떻게 알고? 내 얼굴에 쓰여 있나?
맞다고 대답하고 이 회사에 내가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지 물었다.
“아직은 더 다녀. 근데 그 회사에서는 딱 한 번 진급하고 퇴사하겠네. 공부나 예술 같은 걸 해 봐도 좋겠는데. 인복이 있고 식복이 있어서 뭘 해도 굶어 죽진 않겠어. 돈은 계속 따를 거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해. 어차피 남의 말 듣고 그런 사람 아니잖아?”
지나가는 사회 초년생 아무나 붙잡아도 할 수 있는 말인 걸 지금은 알고 있지만, 그땐 그게 그렇게 심금을 울렸다.
그래, 한 번만 진급하면 내 회사 생활도 안녕이다 이거지? 버텨본다.
그리고… 일단 진급 한 번은 했고, 내년에 진급을 할 수 있네 마네 하는 시기가 도래해 버렸다.
나 진짜 올해엔 퇴사할 거야
내가 입사하던 날에 동시에 입사한 사람은 나를 포함해 총 6명이 있었다.
다른 입사 동기들에 비해 우리 여섯 명은 꽤 활발히 소통하는 편이었고, 또 매 년 입사 기념일에는 다 같이 밥을 먹었다. 나와 같은 팀이었던 동기 D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여러 부서와 직무에 포진되어 열심히 지내고 있었다.
사실 동기 S가 가장 먼저 퇴사했는데, 약 1년 후 그는 다른 직무로 재입사했다. 그래서 여섯 이서 항상 ‘올해의 목표는 퇴사다’라며, 네가 먼저 나가네, 내가 먼저 나가네를 외쳤다. 그러다가 4주년이 지나고 청일점이었던 D가 가장 먼저 퇴사를 했다. 그는 마케터에서 개발자로 직무 전환을 할 거라고, 그래서 개발자가 되어 이 회사에 다시 재입사할 테니 기다리고 있으라며 회사를 나갔다.
그렇게 한 명 빠진 다섯 명이 오늘로 입사 5주년을 맞았다.
회사에서는 5년이나 버틴 데 대한 감사의 선물을 택배로 보내주었다.
5년 사이 우리 모두 처음 입사했던 팀과는 다른 팀으로 전배를 하거나 직무가 변경되었고, 육아휴직을 다녀온 사람도 있었다.
결혼을 하기도 하고, 아이가 생기기도 했고, 막 말을 하고 걷던 아들이 초등학생으로 훌쩍 커 버렸다.
2016년 7월 16일에 쭈뼛거리며 인사를 나누고 첫 점심 식사를 함께 했던 20대의 동기들은 이제 모두 30대가 되었지만 아직도 우리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회사에서 겪은 짜증을 토로하며 나눈다.
이렇게 오래 다니게 될 줄은 몰랐어
나는 충동적인 사람이다. 이 회사에 입사하기 전 일을 충동적으로 그만뒀고, 이 회사에도 충동적으로 입사했다.
20대에는 해보지 않은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학교를 다니며 영어 과외를 5개씩 하는 건 기본이었고, 주말이면 카페, 도넛 가게, 화장품 가게, 홍대의 한 바까지 점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했고 통역, 번역일도 간간히 받아서 하고, 판촉 행사에 아는 치어리더 언니를 따라 나풀거리는 테니스 스커트를 입고 흔들어대기도 했다. 심지어 공장에서 오후조로 근무하며 천장에서 쏟아지는 닭을 집어 포장하는 일도 해 봤다.
19살 수능이 끝나자마자 부모님께 ‘이제 나도 성인이니 저 알아서 살아 볼게요’ 하고 큰 소리를 쳤던 탓도 있었고, 그냥 무얼 하면 내가 재밌게 평생 할 수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에 이것저것 다 해봤다. 근속연수? 연수라고 할 것도 없다. 1년 넘게 꾸준히 한 건 영어 과외와 프리랜서로 했던 통번역 작업밖에 없었다. 나는 일할 때엔 싹싹하고 밝고 열심히 일 하는 직원이었지만 오래 일하는 직원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썩 좋은 아르바이트생은 아니었다.
덕분에 학점도 바닥을 쳤고 과 동기와 후배들까지 다 대기업에 취업했을 때, 나는 학교에서 한참 어린 학번의 후배들과 함께 재수강을 했다. 그리고 졸업을 했으니 콧대 높은 대기업에서 일개 비상경 여자, 그것도 학고까지 맞은 경력(?)이 있는 내가 눈에 들 리가 없었다. 그래서 또 충동적으로 집 근처 영어 학원에서 강사로 일했다. 그리고 그 마저도 재미가 없어서 또 1년 만에 그만두었다.
이렇다 보니 내가 이 회사에 5년이나 다녔다는 건 스스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회사에 다니기 싫다며 이직이나 전직을 꿈꾼다 말 하지만 사실 이 회사가 그냥 나 같은 사람에게 딱인 회사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아니면 나이가 서른을 넘기기 시작하고 책임져야 할 것들이 하나 둘 쌓이고 - 이를테면 집 전세대출 이자 같은 - 나니 나의 충동적인 성향을 이성이 누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우리 아빠 세대들은 어떻게 한 직장에서 정년까지 다닐 수 있었을까?
비슷한 의미에서 공무원들도 정말 대단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