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개편과 휴직 연장
죽어볼까 하는데, 그 프로젝트는 재밌어 보여요.
정확히 6월 21일 월요일부터 나의 무급 휴직이 시작되었다.
최중증 우울증이라는 의사의 소견이 적힌 진단서를 받아 회사에 병가 휴직에 대해 문의했고, 병가 휴직을 줄 수는 없으나 회사에 꽤 오래 재직한 나의 공로와 심신상의 불안감을 고려하여 무급 휴직을 주겠다 했다.
병가 휴직은 50%의 급여를 받을 수 있으나, 무급 휴직은 통장에 찍히는 돈이 0이다.
두어 차례 인사팀과 씨름을 했지만 소득도 없고, 이 씨름을 이어가다 간… 몇 백만 원 돈 받으려다 내 인생이 끝날 것 같아서 포기하고 나의 월급쟁이 생활은 잠정 휴업에 들어갔다.
처음 휴직 기간에 대해 논의할 때, 감사하게도 내가 소속되어 있는 팀의 조직장 들은 얼마든지 내가 쉬고 싶은 만큼 쉬어도 괜찮다고, 일보다 사람이 - 무엇보다 네 건강이 - 우선이니 걱정 말라했다. 대신 꼭 돌아와 주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휴직 더 늘리지, 하셨지만 현실적으로 매 월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에 한 달 치만 펑크가 나도 나를 조여 오는 것들이 많을 것 같아서 그냥 한 달만 쉬고 오겠다고 했다.
일단 휴직은 6월 21일부터 7월 30일까지로 잡고, 그 뒤에는 나의 연차들을 붙여 놓았다.
광복절 직전까지만 일단 아무 생각 않고 쉬기로 하고 부산에 혼자 내려와서 읽고 싶은 만큼의 책을 읽고 쓰고 싶은 만큼 글을 쓰고 있었다.
체크아웃 날짜가 다가오고 서울에 가야 하는 기한이 가까워질수록 내 삶이 끝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얼마 전엔 브런치에 ‘딱 90일만 더 살아볼까’라던지, ‘부산 생활이 끝나면 나도 이 삶을 끝내야겠다’는 다짐을 했었다는 글을 올렸다가 많은 이들에게 머리채를 잡혀 서울로 끌려 올라갈 뻔했다.
정해진 휴직 일이 끝나기 일주일 전, 정식 무급 휴직 기간이 끝나기 일주일 전, 팀장님과 메신저를 나누었다.
팀장님: 요즘은 좀 어때요? 괜찮아요?
나: 네 팀장님.. 그런데 저 혹시 휴직 2주 정도만 더 연장하고 뒤에 제 연차 붙여도 될까요?
팀장님: 알겠어요. 그게 다예요?
나: 네네. 아직은 살아있고요, 뭐 다른 곳 면접 보니 우리 회사만 한 곳이 없겠다 생각하면서도 돌아갈 날이 다가오니까 악몽을 조금 꾸고 있어요. 그래도 더 이상 헤드헌터들과는 연락하지 않고 있고요. 팀장님 힘들까 봐요. 엊그제는 죽어볼까도 생각했다가 조직 개편된 걸 어쩌다 봤는데 신설된 TF 좀 재미있어 보이더라고요? 이 타이밍에 도망가길 잘했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나도 거기 들어가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생각도 했어요.
팀장님에게 바로 전화가 왔다.
뭣 하러 연차를 뒤에 붙이냐고 그냥 8월 말일까지 쭉 쉬란다. 다 바쁘고 힘들고 네가 돌아오길 모두가 기다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 굴러가고 있는 것도 아니니 마음 쓰지 말라고 했다.
본인에게 날짜 이야기해줄 필요도 없고, 온전히 내 마음 가는대로 정해서 인사팀과 협의되면 본인은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있는 지원 없는 지원 다 해 주겠다고 했다.
내가 입사하고 6년 차가 될 때까지 여러 팀장님을 거쳤는데, 나는 퇴사한 나의 롤모델 선배인 J와 현재 팀장인 L과 일할 때가 가장 좋았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내 편을 들어줄 때 마음속 깊이.. 속된 말로 ‘뽕’이 차올랐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차주 월요일에 인사팀에 연락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무급 휴직 기간 중 입금된 이상한 돈
7월 25일. 무급 휴직이니 처음으로 급여가 들어오지 않는 날이었다.
나는 19살 수능이 끝난 이후 끊임없이 돈을 생산하는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생산 없이 소비만 한 적이 없었다.
돈 쓰는 재미는 쏠쏠했다. 이래서 ‘금융 치료’라는 말이 나왔나 보다.
사실 휴직이 시작되기 바로 전 주 금요일, 회사 계정이 막히기 전 잽싸게 재직증명서와 원천징수를 떼서 처음으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다. 모아둔 돈이 하나도 없는 건 아니지만, 온전히 날 위한 휴식시간을 갖는 중에 돈 떨어질까 전전긍긍하는 찰나를 허락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하튼, 25일마다 찾아오는 행복이 2021년 7월에는 없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7월 23일 금요일 오전에 떠 있는 ‘입금 알림’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런데 액수가 영 이상하다.
분명 입금처는 우리 회사인데 급여의 50%도, 그렇다고 0원도 아닌 애매한 금액. 몇 만 원이 들어왔다. 대체 이 금액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6월 휴직에 들어가기 전 야근을 한 적이 있었던가? 5월 말쯤 우울증 고백을 한 뒤로 최대한 팀원들의 배려를 받아 야근을 하지 않고 인수인계를 준비하다 왔는데…
위로금 치고는 너무 짠 이 애매한 몇만 원 입금 내역을 보면서 아리송한 기분이 들었다.
인사팀 담당자에게 연락해 무급휴직 연장에 대해 물었고 이내 그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정하고 나긋나긋한 말투와 목소리를 가진 여성분이었는데, 이 분은 입사한 지 3개월 만에 우울증으로 병가휴직을 달라는 첫 사례를 들이민 나 같은 복병을 만나 꽤나 고생하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의 목소리에는 나를 걱정하는 진심이 듬뿍 담겨있어 일이 되든 안되든 그분께는 특별히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결론적으로는 일단 무급 휴직을 연장하는 데에 이견이 없으며, 회사에서 제공하는 심리상담도 무상으로 제공해 줄 수 있으니 필요하다면 본인에게 이야기해 달라, 편히 쉬다 오라는 따뜻한 말과 함께 몇 가지 현실적인 이야기도 나눴다.
재택근무 기간 중 휴직을 하느라 노트북을 반납하지 않고 내가 가지고 있었는데, 휴직자도 꼭 노트북을 자산관리 팀에 반납해 주어야 하니 퀵으로 보내달라는 것이 있었고, 다른 한 가지는 입금된 이상한 돈의 정체에 대한 것이었다.
“원래는 7월 31일부터 복직 예정이 있으셔서요… 31일 하루치 급여가 이번에 입금되었어요. 이 부분은 복직하시면 9월 급여에서 공제될 예정이라 참고 부탁드려요.”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민망한 말이다.
그래서 어쩐지 이 돈이 뭔지 궁금했다며 함께 웃었다.
혹시 더 궁금한 점이 없냐는 말에 문득 며칠 전 만난 회사 동료가 말해준 조직개편이 생각났다.
제 병가 휴직, 다시 재가받아주실 수 있을까요?
“저.. H님, 그럼 저 혹시. 그냥 오프 더 레코드로. 한 가지만 여쭤보아도 될까요?”
무엇이든 흔쾌히 물어봐달라는 말에 나의 검은 속내를 밝혔다.
“이번 조직 개편 관련해서 이야길 들은 게 있는데요. 그.. 인사지원실 쪽 헤드가 변경되었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래서 말인데요, 제 병가 휴직, 다시 한번 위에다 언질 주실 수 없을까요?”
그전 헤드는 깐깐하며 워라밸을 역행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어서, 혹시나 나의 병가휴직 반려가 그분 때문이라면 지금은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어서 넌지시 물어봤다.
그 말을 듣자 그 담당자도 지금은 조금 수월할 수도 있겠다고 한번 더 말을 해보겠다며, 서울에 와서 진단서를 한번 더 끊을 수 있다면 그걸로 같이 재도전해보자 했다.
다만 장담하기는 아주 어렵긴 하지만, 상황이 달라진 것도 사실이니 같이 잘 이야기해 보자며 적극적으로 나섰다.
너무 고마워서 또 눈물이 줄줄 났다. 복직하면 내가 꼭 밥 한번 사겠다고도 덧붙였다.
인사팀의 H님은 전혀 그런 내색을 비추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이 사람 참 질기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나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나는 결국 그 돈으로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