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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ero Jun 27. 2021

친구가 자살했다

추모와 죄책감에 대하여

N이 죽었어.


 그날은 어쩐지 이상한 날이었다.

새로 차를 사고 처음으로 차 뒷문을 긁은 날이었다. 항상 다니던 길이었는데, 긁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는데 크게도 긁었다.

저녁엔 E와 말다툼까지 했다. 평소 다투는 일이 없는데 그날은 그랬다. 다투고 있었다.


 그때, 연락을 안 한 지 꽤나 오래된 친구 S에게 갑자기 페이스북 메신저가 왔다. N을 통해 알게 된 친구였는데 연락을 안 한 지 오래된 탓에 그도 내 전화번호를 몰랐다. 나는 페이스북 메신저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뜬금없이 본인의 휴대전화 번호와 함께 “잠시 통화 가능해?”라는 메시지가 온 것이다. 안 그래도 기분도 안 좋고 E랑도 싸우는 중인데.

“나 지금은 어려운데. 무슨 일 있어?” S로부터 기다렸다는 듯 바로 답장이 왔다.


“응. N이 죽었어”


 S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어 이게 장난이 아니라는 걸 확인한 순간, 그대로 무너져 바닥을 치고 가슴을 붙잡고 울었다.

그 이후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여하튼 ‘타다’ 택시를 불러서 병원으로 향하는 길 내내 숨 죽이고 울었다.

손님에게 말을 걸지 않던 타다 서비스가 그토록 고마웠던 적이 없었다.



잘 들어가고 또 보자, 사랑하는 내 친구


 N은 특별한 친구였다.

내 친구들 중 가장 예뻤고 가장 똑똑하고 유쾌했다. 나의 자랑거리 같은 친구였다. 그래서 내 주변 친구들도 N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우리 엄마도 N을 예뻐했다. N을 만나러 나가는 날이면 엄마는 나더러 화장 더 하라 했다. N이 너무 예쁘다고.


 한 번은 신촌의 한 술집에서 갑자기 ‘섹시 댄스 대회’가 벌어졌다. 그는 부끄러워 쭈뼛거리며 몸을 흔들던 여자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섹시 댄스를 펼쳐 보이고는 양주 한 병을 공짜로 얻어왔다. 그 술병을 들고 신나서 뛰어오던 모습이 너무 선해서, 지금도 그 모습을 떠올리면 웃음이 터진다.

N은 어디서나 주목을 받았다. 술집을 가든, 카페에 가든 항상 모두의 시선을 받았고,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사랑했다.


 나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취업이 늦은 편이었다. 서류 통과도 어려웠지만 도대체 회사에서 무얼 하길래 나에게 소금물의 양과 기차의 속도를 구하라고 하는지! 문과 출신의 나에게 수학은 쇼핑할 때 할인 가격 계산할 때나 쓰는 것이었는데… 하소연을 듣던 N은 “시간 날 때 우리 학교 앞으로 와.”라고 했다. 그의 학교 앞에 도착해 카페에 자리를 잡고 전화를 했더니, 실습하던 가운 바람 그대로 뛰어나왔다. 그러더니 내 공책에 온갖 수학 공식들을 다 적어주고 갔다.


 N은 친구들끼리의 애정표현에도 아낌이 없었다. 처음 시험에 합격하던 날, N은 나에게 응원해줘서 고맙다고, 너무 보고 싶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술을 마시고 있다가 N에게 전화를 걸면 무작정 달려왔다. 그가 직장에서 많이 바빠지기 전까지 말이다.


 만났다 하면 소주를 궤짝으로 들고 오라고 소리치던 우리였는데, 둘 다 직장 생활로 바빠지면서 커피만 마시고 헤어진 날이 있었다.

“이게 말이 되니? 우리가 소주가 아니라 커피라니… 일단 오늘은 잘 들어가고 또 보자, 사랑하는 내 친구!”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전화 한 통 할 걸. 미안해.


 추석에 본가에 갔다가 집에 가는 길에 차가 너무 막혔다. 답답하기도 하고, 심심하기도 해서 생각나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 졌다.

가장 먼저 생각난 건 N이었는데, 당시 나는 직장과 학업을 함께 하고 있던 상황이라 N의 성격 상 당장 만나자고 성화를 부릴 것이 빤해서 ‘이번 시험만 끝나고 전화해야겠다’ 생각했다.


 N이 떠나고 나는 한동안 대답 없는 카톡 메시지와 인스타 댓글을 남겼다.

“생일 축하해 사랑하는 내 친구. 선물은 뭐가 좋을까?”

 “네가 좋아하는 핼러윈데이야. 야, 거기서는 진짜 핼러윈이겠다 ㅋㅋ 재밌게 파티해야겠네!”

“오늘 첫눈이 왔어. 너무 예쁘다”


 그리고 3개월 즈음 지났을까, 그의 카톡은 “알 수 없음”으로 바뀌고 프로필 사진에 등록되어 있던 몇 장의 예쁜 N의 사진은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그게 그렇게 죄책감으로 남아 나는 매 년 가을 무렵이 되면 스스로를 수렁에 빠뜨리고 있었다.

추석, 일산에서 서울 집까지 강변북로가 꽉 막혀 두 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왜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너에게 한 번도 전화하지 않았을까.


 자꾸 내 인스타그램의 사진에서 그의 댓글을 찾고, 함께한 흔적을 찾는 나에게 질려서 내 인스타그램 사진도 다 밀어 버렸다.



킹크랩 사준다더니 육개장을 먹이네


 떠난 N의 장례식장은 두꺼운 적막이 짓눌렀다. 나를 포함한 N의 정말 친한 친구들 몇 명을 제외하고는 이 부고를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 많은 사람들이 오지는 않았다. 나는 N이 차려준 마지막 밥상을 S, D와 함께 세 끼를 먹었다. 밥을 먹다가도 고개를 처박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 셋은 간간히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웃음도 터뜨렸다.


 “얘 자기 돈 잘 벌면 킹크랩 사준다더니 결국 사준 게 육개장이야?”

 “그러니까. 아니 얘 지금 서른 되기 싫어서 늙기 싫어서 그런 거 아니야? 진짜 N답다.”


 월요일, 우리 셋은 N의 친지와 가족들이 탄 영구차 대신 S의 차를 타고 N의 새 보금자리로 향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장소를 잘못 안 바람에 우리는 N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다. 대신, 너무 일찍 장지에 도착한 바람에 셋이 돼지곱창을 먹었다.


 이윽고 영구차가 들어왔고 우리는 무거운 대리석 아래로 들어가는 작은 도자기에 담긴 N에게 마지막으로 인사했다.


 잘 들어가고 또 보자, 사랑하는 내 친구.



언니가 그의 선택을 되돌릴 수는 없었을 거야


 나는 그 후로 강박적으로 밤이 되면 그의 목소리를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잠들기 전 N의 목소리를 스스로 상기시켰다. 2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그렇다.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말했다. “사람들 저마다 추모의 방식이 다르지요. 하지만 그렇게까지 강박적으로 생각하는 건 스스로에게 독이 될 뿐이에요. 이를테면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해도 보통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웃을 수 있게 되고, 그 형태가 또렷하진 않아도 분위기를 안고 가요. 잊는다는 게 잘못하는 건 아니에요. 좀 잊으면 어때요.”


N과 함께 알고 지낸 나의 절친한 여자 친구들 셋이 있는데, 그중 막내인 P는 나에게 말했다.


 “언니, 그렇게 죄책감 안고 가지 말아요. 언니가 그때 전화를 했다 해도 N의 선택이 바뀌진 않았을 거예요. 생각보다 그렇게 선택의 결과를 바꿀 만큼 언니의 전화 한 통이 N에게는 큰일이 아니었을 수 있어요.”


 알고 있다. 나는 추모를 가장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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