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귀가에 머리카락이 잘릴 뻔한 날
언니, 여기 뉴욕 같아요
스무 살, 대학교 1학년으로 입학하고 3월, 지금도 내가 존경하고 따르는 같은 과 선배 언니가 금요일 저녁에 약속이 있느냐고 물었다.
"네, 있어요! 언니랑 약속이요!"
언니가 그럼 금요일 저녁 6시에 압구정 로데오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는 학창 시절을 외국과 시골에서 보낸 덕에 강남이나 압구정 로데오 같은 곳들은 내게 아주 낯선 곳이었다. 그 시절 압구정 로데오에 간다는 것은 내가 성인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3호선을 타고 압구정역에 내려서 내리막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맞은편에는 갤러리아 백화점이 빛나고 있었고, MP3에서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OST인 <Suddenly I See>가 흘러나왔다. 주변에는 멋진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과 패션을 뽐내며 걷고 있었고, 뭔지는 몰라도 좋아 보이는 스포츠카들이 도로를 지나고 있었다.
"언니, 여기 뉴욕 같아요!"
나는 MP3에서 나오는 팝송들에 취해 뉴욕에 가본 적도 없으면서 여기가 뉴욕 같다고 외쳤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달콤한 맛이 나는 술을 마셨다.
도대체 어른들은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를 쓰디쓴 소주와 배가 부르고 화장실만 계속 가게 만드는 맥주가 아닌 준벅, 피나콜라다, 피치 크러쉬 같은 지금의 나라면 손도 대지 않을 칵테일들이 그때는 그렇게 맛있었다.
결국 마지막으로 마신 롱아일랜드 아이스티가 사건의 전말이 되었다.
진, 보드카, 럼, 테킬라와 콜라를 넣은 '칵테일'이라는 귀여운 이름 뒤에 숨겨진 이 '폭탄주' 때문에 제대로 취해서 화장실로 직행해 먹은 것을 다 게워냈다.
그런데 술에 취해 토를 했다는 사실이 들통나면 더 이상 내게 술을 권하지 않을 것 같아서 달달한 칵테일을 더 마시려고 멀쩡한 척했다.
너 앞으로 핸드폰 압수야!
어느덧 밤 12시가 넘었고, 일산으로 돌아갈 수 있는 3호선 열차가 끊겼다.
압구정엘 처음 왔으니 택시비가 얼마나 나올지도 가늠이 되지 않고, 시급 3,480원을 받으며 신촌의 화장품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나에게 택시로 이 소중한 돈을 길에 뿌린다는 건 너무 끔찍한 일이었다.
되는대로 나와서 최대한 집 방향으로 가까이 가는 버스를 잡아탔다.
그 버스는 강북을 돌고 돌아 구파발역까지 가는 버스였고, 가는 내내 엄마가 "도대체 언제 오니?"하고 문자가 왔다. 내 마음은 타들어가지만 지나치는 모든 신호등들이 파란 버스를 빨갛게 멈추어 세웠다.
구파발에서 택시를 타고 집에 들어가니 새벽 2시가 되어버렸다.
문을 열자 집 안 불이 다 꺼져있길래 모두 자는 줄 알고 살금살금 신발을 벗는 순간, 현관의 센서등이 탁 켜졌고... 소파에서 화가 잔뜩 난 채 앉아있는 아빠와 눈이 마주쳤다.
아빠는 엄마에게 소리쳤다.
"당장 가위 가져와! 이 가시나 머리카락을 다 잘라버리게!"
원래도 말 한마디를 안 지는 딸인 데다가 알코올 버프까지 받으니 무서울 게 없었다.
"잘라! 모자 쓰고 가발 사고 다니면 돼!"
아빠는 기가 차서 내 머리를 자르려던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너, 앞으로 핸드폰 압수야. 밤 10시 전까지 무조건 집에 와."
내가 졌다, 졌어!
나는 다음 날 신이 나서 수업에 갔다.
그리고 자취하고 있던 친구에게 "나 며칠만 너네 집에 좀 있어도 돼?" 했더니 흔쾌히 오케이 했다.
핸드폰이 없으니 집에서 연락이 안 온다. 아니, 안 하는 건 아니고 못 하는 거지. 빨리 집에 오라고 할 아빠의 목소리와 엄마의 메시지가 없으니 잔뜩 신나서 며칠 동안 술을 잔뜩 먹고 노래방도 가고 친구 자취방에서 늘어져 잤다.
이내 동생이 내 싸이월드에 댓글을 남겼다.
<누나, 아빠가 집에 좀 오래. 화 안 낸대.>
내가 좀 너무했나? 싶어서 그 길로 집에 갔더니 아빠가 핸드폰을 돌려주며 말했다.
"내가 졌다. 너 마음대로 해. 대신 어디에 간다, 누구랑 있다 정도는 연락해."
그날 이후 우리 집에 (적어도 나에게는) 통금 시간이라는 것이 사라졌다.
약속의 대가로 나는 클럽에 가면 클럽에 간다, 강남에서 술을 먹으면 그렇게 한다, 누구네 집에서 자면 잔다 메시지는 솔직하게 다 했다.
딸바보가 되고 싶은 아빠에게 나 같은 딸은 너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