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의 기억과 서른다섯 살의 기억
오토바이가 누나를 이렇게 치고 갔어!
내가 일곱 살 무렵, 외할머니 댁에서 동생과 함께 여름을 즐기던 어느 날이었다.
두 살 터울 나는 동생을 데리고 동네 시장에서 떡볶이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언덕길을 내려가 오른쪽으로 돌면 바로 집이 있었다. 동생 손을 잡고 그 언덕길을 내려가는데 무엇인가 내 발목 뒤를 밟았고 곧이어 뒤통수가 어딘가에 탕! 부딪히며 부웅 날아 언덕을 데굴데굴 굴렀다. 나는 그게 무슨 상황인지 몰랐는데 동생이 "누나!"하고 소리를 치면서 나에게 달려왔다. 동생은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구르다 눈물을 흘리며 집 방향으로 뛰어갔고 곧이어 놀란 아빠가 달려와 나를 둘러업었다.
"오토바이가 이렇게 누나를 붕 치고 저 밑으로 갔어!"
아빠는 나를 업은 채로 병원까지 내달렸고,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드문드문 나긴 하지만 여하튼 내 기억에 나는 엑스레이 테이블 위에 누워 있었다.
오토바이 뺑소니를 당했는데 내 동생은 아직 한글을 떼지 못했고, 골목길 어귀에는 사람이 없어 그 도주범을 잡을 수 있을까. 그 와중에 그런 생각이 잠깐 들었다.
내 동생은 말을 떼는 게 조금 늦기도 했고, 한글을 겨우 조금씩 읽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동생은 유난히 "ㅇ"을 좋아해서 그나마 ㅇ이 들어간 단어들은 조금 읽을 수 있었는데, 예를 들면 차를 타고 지나가다 간판에서 '양', '응', '오' 같은 단어를 발견하면 간판명 전체는 아니더라도 몇몇 글자들을 큰 소리로 읽곤 했다.
아빠가 동생에게 어떤 오토바이였는지 기억이 나냐고 물었다.
"파란색이었어. 뒤에 파란색 박스가 있었어. 하얀색 글씨가 세 개 있었는데, "용, 우"라고 적혀 있었어. 맨 뒤에는 몰라."
우리에겐 다행이고 뺑소니범에게는 불행하게도 그 오토바이는 "용우*"이라는 우동집 오토바이였다. 범인 검거 대작전에 동생의 역할이 실로 아주 컸다고 볼 수 있다.
병원에서 가벼운 뇌진탕 외에는 다행히 별 이상이 없다는 소견을 받고 발목 뒤에 반창고를 붙이고 나왔다. 걸을 수 있었으면서 그냥 귀찮아서 아빠한테 계속 업어달라고 했다.
아빠는 칭얼대는 나를 업고 당장에 우동집으로 향했다.
왜 단무지만 주고 우동은 안 줄까?
파란 간판의 우동집 문을 열자 "팅팅팅" 풍경 울리는 소리가 났고, 작은 우동집 구석의 부엌에서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나왔다.
아빠는 문 바로 앞에 있는 테이블에 나와 나란히 앉아 "사장님 되세요?"라고 물었다.
사장님은 물과 단무지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네, 맞아요."
"여기 오토바이 배달원이 저희 아이를 치고 도망갔어요."
아빠와 사장님 간에 무거운 대화가 오가는 동안 일곱 살 나의 온 신경은 단무지 한 접시에 가 있었다.
2인용의 작은 흰 테이블 두 개를 붙여 놓은 그 사이 틈 정 가운데 놓여있던 반달 모양 단무지.
아빠 얼굴은 심각한데 나는 그때 "왜 우동이 안 나오지?" 한참을 생각했다.
그러니까 나는 떡볶이를 사서 돌아오던 길이었고.. 즉, 배가 고팠다는 말이다.
우동 한 그릇 달라고 말해볼까 생각도 했는데, 그런 말 할 타이밍이 아니라는 것쯤은 일곱 살인 나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때 "팅팅팅" 한번 더 풍경이 울렸고 열린 문틈으로 앳된 남학생이 한쪽 팔에 헬멧을 끼운 채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사색이 되었고 - 사장님과 한 번, 우리 아빠와 한 번 눈을 맞춘 후 자동반사처럼 우리 테이블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잘못했습니다!"
무얼 잘못했느냐고, 당신이 우리 딸을 치고 도망쳤냐고 묻기도 전에 그는 우리가 앉아있는 까닭을 이미 잘 알고 있다는 듯 속죄하기 시작했다.
본인은 고등학생이며, 아이를 치고 나서 너무 무서워서 그냥 줄행랑을 쳤다고 고백했다. 연신 "죄송합니다!"를 외쳐서 나는 이 가게에 지금 아무도 없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든 이 가게에 있었다면 이 흥미진진한 광경을 보며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오지랖을 부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빠는 그 배달원을 좋게 타이르고 주의를 주고 일어났다.
그때까지도 나는 우동을 못 먹은 게 더 서운했다.
아빠, 그 후로 어떻게 했어?
가끔 이렇게 어릴 적 추억을 쓰다 보면 내 기억이 틀렸거나, 모자라는 퍼즐의 조각들을 맞추기 위해 엄마, 아빠에게 그 시절 이야기를 묻는다.
가족 단톡방에 뜬금없이 이 이야길 꺼내니 엄마는 "갑자기 왜?"라고 되물었고, 아빠는 "글쎄, 그냥 주의 주고 끝났던 것 같아." 했다.
얼마 전, 내가 태어난 고향인 진해에 혼자 다녀왔다.
부모님께 진해에서 우리가 살던 집 주소가 기억나느냐고 물었는데 두 분 다 기억이 나지 않고, 다만 철길과는 거리가 있었고, "진해 문화의 집" 부근이었으며, 100m 근방에 "장미 아파트"가 있었는데 거기에 아빠 동기가 살아서 자주 걸어갔었다고 했다.
대략 이쯤인 것 같다는 엄마 말에 네비를 찍고 도착해서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해 보냈다. 하나도 바뀌지 않은 듯 많이 변한 것 같아서 우리가 살던 집이 기억나지 않는다 했다.
날이 너무 더웠고 오래 걸었던 탓에 힘들어서 가족 단톡방에 올렸다.
"내 고향 투어는 부모님의 흐려진 기억 때문에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내 일곱 살의 기억만큼 아빠, 엄마의 30대 기억이 이제 환갑에 다다르며 흐릿하게 저물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