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는 푸드파이터, 집에서는 입 짧은 아이
내가 바지에 똥을 쌌나?
만 열세 살이 될 무렵 첫 생리를 했다.
첫 생리를 하던 전날 밤, 김치가 너무 먹고 싶어서 몰래 1층 부엌에 살금살금 내려가 냉장고에 있던 김치를 손으로 집어 대여섯 조각을 씹어 먹고 잠이 들었다.
자고 일어났는데 팬티가 까맣게 되어 있었다.
내가 자다가 똥을 지렸나? 나 열세 살인데?
이게 말로만 듣던 ‘월경’이라는 걸까? 근데 생리는 피가 나오는 거라고 하지 않았나? 피라기엔 너무 짙은 밤색인데?
또래에 비해 체구도 작고 마른 편이었던 나는 친구들이 한창 브라를 하던 시기도 생리대를 몰래 주고받던 시기도 늦은 편이었다.
뉴질랜드로 떠나기 전, 엄마가 혹시나 내가 그 사이 생리를 시작할까 봐 어떻게 생리대를 붙이는지 알려 준 기억도 어렴풋이 난다.
남들은 첫 생리를 시작하면 집에서 파티도 해 주고 케이크도 불고 장미꽃도 선물 받는다던데, 나는 이런 걸 축하해 줄 사람이 없었다.
어찌 되었든 한 지붕 밑에 사는 그 언니가 밉든 싫든,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 물었다.
언니는 집에 있던 생리대를 꺼내서 이렇게 팬티에 붙이면 되는 거고, 슈퍼에 가면 이렇게 생긴 봉지에 든 생리대를 사면 된다 했다.
그리고 기대하지 못했던 ‘축하한다’는 말도 했다.
밤에 엄마한테 전화를 해서 이 사실을 알리니 “우리 딸 다 컸네. 같이 있어주지 못해 미안해. 축하해!” 했다.
너는 밥 이 정도면 됐지?
2차 성징도 시작되었고 그 무렵 키가 쑥쑥 자라고 있었다.
하지만 4시 이후 취식 금지라는 그 홈스테이 집의 엄격한 규정도 있었고, 아줌마는 작은 밥공기에 밥을 절반도 안 되게 채워 넣으면서 “너는 많이 안 먹지? 이 정도면 됐지?” 했다.
눈치를 조금 보다가 “네, 괜찮아요.”하고는 밥을 받아 식탁에 올린다.
돼지 같은 저 집 아들은 고봉밥을 먹지만 나는 세 숟갈 남짓한 밥에 김을 올려 먹었다.
친구가 집에 저녁 먹으러 놀러 오래서 갔을 때 친구 어머님이 “밥은 네가 먹고 싶은 양껏 담아 먹어도 돼.”라고 했다.
눈치를 보다 또 세 숟갈도 안 되는 밥을 퍼 담았다. 왜 그것밖에 안 먹냐는 말에 원래 많이 못 먹는 편이라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그런데 친구 어머님 음식 솜씨가 예술이었다. 떡갈비부터 김치찌개와 잡채까지!
그날 나는 밥 두 공기를 순식간에 해치웠고 친구와 어머님은 “네가 못 먹기는! 맛있는 걸 못 먹어 그런 것 아니니?”하며 웃었다.
나는 밖에서는 대식가였는데 집에만 오면 입이 짧은 아이가 되었다.
맥도널드 치즈버거를 좋아해서 그 치즈버거 세트 네 개쯤은 앉은자리에서 쉽게 해치웠다.
맥도널드 점원들과 친구들이 놀라도 상관없다. 나는 지금 먹어야 집에 가서 굶을 수 있으니까.
그래야 집에 가서 밥 세 숟갈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고 말하고 2층 방으로 올라가 침대 아래 숨겨둔 초콜릿을 먹을 수 있으니까.
지금도 나는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햄버거를 꼽는다.
피자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있으면 먹는데, 굳이 찾아 먹지 않는다.
1층에서 나를 빼고 피자를 몰래 먹던 그 홈스테이 가족이 생각나서, 피자 냄새만 나도 사실은 조금 역겨운 기분이 든다.
지금 내 키가 이만큼이나 클 수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