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가출 (2) 열아홉 살, 탈출을 감행하다

고등학교 3학년, 기숙사 탈출기

by Enero
라면을 먹다 벌점을 받고 뺨을 맞았다


고3 수능을 마치고 얼마 후였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산과 강을 끼고 있는 기숙사 학교로, 학생 전원이 기숙사에 살고 있었다.


공부를 많이 시키는 학교였으니 만큼, 규율도 꽤 엄격한 편이었다.

벌점이 10점을 넘기면 기숙사를 퇴소해서 기차를 타고 등하교를 해야 했다. 그래서 8점 정도가 되면 학생 주임 선생님께 찾아가서 벌점 내역을 고백하고 매일 쓰레기 분리수거 담당을 하거나 청소를 하는 등 교내 봉사를 해서 벌점을 깎아야 했다.


일단 작게는 오전에 등교한 후 사감 선생님들이 방을 돌며 청결 상태를 확인했고, 방이 잘 정돈되어 있지 않으면 방 전원이 ‘벌점 1점’을 받았다.

기숙사 내에서는 취식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밤늦게 몰래 동네에 딱 하나 있는 김밥천국에서 떡볶이를 시켜 먹거나, 봉지 라면에 뜨거운 물을 받아 일명 ‘뽀글이’를 몰래 해 먹는 게 그렇게 맛있었다. 물론, 그러다 걸리면 벌점이 3점이다.


가장 큰 벌점을 받는 항목은 ‘풍기문란’과 ‘기숙사 무단이탈’ 두 가지였다.


‘풍기문란’이라고 하면 굉장히 거창해 보이는데, 사실 그냥 연애 금지령이다.

기숙사 학교지만 남녀 공학이라 남자 기숙사와 여자 기숙사가 분리되어 있었는데, 수업 시간에 마음에 드는 친구가 있으면 슬쩍 쪽지를 건넸다.

“이따가 첫 번째 자습시간 중간 쉬는 시간에 조회대 앞에서 보자.” 휴대전화 반입도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유일한 소통 수단은 수줍게 적은 쪽지 한 개다. 쪽지를 받고 운동장에 나간다 하면 바지는 체육복 바지를 그대로 입을지언정, 티셔츠는 가장 아끼는 걸 입고 나간다. 그리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운동장 주변을 따라 돈다.


이때 여기서 숨어 있던 사감 선생님이 튀어나오면?

선생님의 플래시 빛이 켜지는 순간 홍해가 갈라지듯 서로 모른 척 세 걸음 정도 후다닥 떨어져 걸어 겨우 위기를 모면했다. 하지만 그 찰나를 피하지 못해 손이라도 잡고 있는 걸 걸렸다가는 벌점 10점을 한 번에 받고 부모님 소환령이 떨어졌다.

우린 이렇게 저녁에 운동장을 함께 걷는 걸 은어로 ‘JP’라고 불렀다. ‘존* 풍기문란’의 줄임말이다.


나는 이 즈음 밤마다 라면이나 떡볶이를 먹다 걸려서 벌점이 8점 정도 있었다. 입학 1년 만에 바지 사이즈가 24에서 32로 불었으니 말 다했다.

교무실에 찾아가 학생 주임 선생님께 이 사실을 고백하고 태어나서 난생처음으로 눈앞에 별이 번쩍 빛날 정도로 뺨을 맞았다. 나는 남학생과 운동장 한 번을 돈 적이 없는데 라면 좀 몰래 먹었기로서니 말 그대로 별안간 귀싸대기를 맞은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꾸준히 교내 봉사활동을 하며 겨우 벌점을 2점 정도로 맞췄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동생과 통화를 하다 벌점 10점과 퇴소를 감행하고서라도 ‘기숙사 무단이탈’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누나, 나 너무 힘들어


기숙사 무단이탈은 솔직히 말하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 전에도 방 친구들과 몰래 야밤에 각자 호신하겠다며 커터칼, 30cm 자, 과도, 프라이팬 따위를 챙겨서 기숙사 건물 2층에서 뛰어내리다시피 해서 나간 적이 있었다. 이유는 별 건 아니었고, ‘배고파서’ 그랬다. 시내까지 걸어서 20분이 걸렸는데 편의점도 없는 그 시골에 딱 한 군데, 24시간 설렁탕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 길에서 다른 사람을 마주쳤다면 우리보다 그 사람들이 더 놀라서 자빠졌을 것이다.


고3 수능이 끝나고 할 게 없어서 방 친구들과 매일 영화만 봤다. 수능이 끝났기 때문에 어느 정도 사감 선생님들도 감시를 삼엄하게 하지 않았고, 자연히 휴대전화를 들고 들어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도 모토로라 레이저폰을 들고 기숙사에 들어왔다.


어느 날 밤,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엉엉 울고 있었다.

“누나, 나 너무 힘들어.”

나와 세 살 터울이 나는 동생이 한 번도 나에게 이런 식으로 이야길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걱정스레 왜 그러느냐고 되물었다.


사실 아빠가 아파. 우리 집에선 다 알고 있어. 누나만 몰라. 밖에 있고, 고3이니까. 근데 옆에서 보는 내가 너무 힘들어.”


아빠의 파킨슨 병 판정을 우리 온 가족이 다 알고 있었으면서 나에게만 비밀로 했다.

아빠 스스로도 충격에 빠져 예민해졌고 엄마도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보니 결국 고스란히 그 감정을 중학생인 내 동생이 고스란히 다 받고 있었던 것이다. 1년 여를 참던 동생이 결국 터져버려 나에게 전화를 했다.


무너지는 슬픔과 함께 배신감도 찾아왔다. 나는 이 이야기를 동생의 입이 아닌 우리 엄마, 아빠의 입으로 직접 들어야 했다.

그래서 기숙사 생활 꼭 3년 만에 탈출을 감행했다.



선생님, 저 꼭 오늘 안에 올게요


자습 시간에 선생님이 감시를 돌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숙사 1층에 있는 내 독서실 책상에 쪽지 하나를 남겼다.

나는 지금 일탈을 위한 탈출이 아니라 정말 꼭 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잠시 탈출을 감행하는 것이라는 걸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쪽지에 “선생님, 저 잠시 나갔다 올게요. 다른 데 가는 거 아니고, 집에 잠시요. 오늘 안에 꼭 올 거예요”라고 남겼다.


내가 학교에서 서울로 갈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뿐이었다.

한 가지는 하루에 두 번 있는 기차를 타는 것이다. 이 기차는 오전 8시와 오후 6시 두 번 밖에 없었기 때문에 일단 이 기차는 탈 수 없었다.

다른 방법은 시내까지 20분을 걸어간 뒤 청량리로 가는 버스를 타는 것이다. 버스를 타게 되면 집까지는 시간이 기차보다 훨씬 많이 걸렸지만 그때엔 이 방법밖에 없었다. 택시를 탈 돈은 없었기 때문이다.


청량리에서 또 전철을 타고 신촌역에 도착했다. 가면서 엄마에게 나 학교에 다시 돌아가야 하니 연대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엄마는 한달음에 차를 몰고 달려왔다. 일단 나를 태웠고, 다시 학교를 향해 운전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그날 딱히 하고 싶은 말을 하지도, 듣고 싶은 말을 듣지도 못했다.

눈물만 났고 밉다고 말했다. 10시쯤이 되어서야 엄마에게 기숙사 사감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엄마는 아이를 잘 데리고 있고, 지금 학교로 다시 돌아가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19살에 한 잠깐의 가출, 아니 탈출은 그렇게 또 반나절도 못가 허무하게 끝났다.

차 안에 대충 훔쳐낸 엄마와 나의 눈물과 콧물이 범벅된 휴지만 남았다.


그리고 한 가지 다행이라면 그날 나는 학교에서 혼이 나지도, 벌점을 받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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